[단독]디지털교도소 캡처는 가짜였다…억울한 교수의 반격

[이슈]by 중앙일보

n번방 가해자 몰린 채정호 교수, 경찰 수사로 결백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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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된 허위 게시물로 고초를 겪었던 채정호 카톨릭대 의대 교수의 모습. [채정호 교수]

평범한 일상이 지옥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6월 29일 월요일 아침, 채정호(59) 가톨릭대 의대 교수의 핸드폰에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방송국 카메라도 병원 앞에 진을 쳤다.


소속이 다른 기자들은 모두 똑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채 교수님,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되셨어요. 성착취영상 구매하려 하신 것이 맞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채 교수는 "네? 그런 사실 없습니다"라고 서둘러 전화를 끊은 뒤 인터넷을 찾아봤다. 그가 처음 '디지털교도소'란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기자들의 말대로 성범죄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엔 자신의 신상과 휴대폰 번호, 자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성착취 동영상을 구매하려 시도한 텔레그램 대화 캡처 화면이 게시돼 있었다. 모두 최근 경찰 수사로 허위사실이라 판명 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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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 겪어"


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실제 교도소에 갇혀있는 것 같은 두 달이었다"고 토로했다. 유명 정신의학과 교수인 그는 "저는 자살을 막는 정신과 의사라 버텼다"며 "다른 사람이었다면 억울함을 풀려 죽음을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한 명문대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사망한 사건을 두고 채 교수는 "그 학생의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디지털교도소에 피해를 입어 경찰 수사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 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대구지방경찰청은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추적하고 있다.



수백건의 욕설 문자와 전화 쏟아져


채 교수의 신상과 전화번호, 그로 추정되는 인물의 성착취 구매 시도 텔레그램 대화 캡처본은 6월 26일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됐다. 이후 채 교수의 휴대폰엔 각종 욕설이 담긴 카톡과 메시지가 쏟아졌다. 새벽마다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에 휴대폰이 울려댔다. 많을 땐 수백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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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상이 디지털교도소에 올라간 사실은 그의 가족은 물론 친구와 직장 동료, 그가 장로로 있는 교회 목사와 신자들에게도 알려졌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믿어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채 교수가 경찰 수사를 택한 이유다.



휴대폰 삭제 없이 스스로 제출해


그는 불명의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스스로 경찰에 제출해 포렌식을 받았다. 7월 28일에 제출했고 8월 11일에 돌려받았으니 2주가 걸렸다. 경찰이 분석한 채 교수의 메시지는 총 9만9962건, 브라우저 기록은 5만3979건, 멀티미디어 사용 내역은 8720건이었다.


채 교수는 "제 신상과 전화번호가 공개된 뒤에도 일부러 휴대폰을 바꾸지 않았다. 어떤 자료도 삭제하지 않은 채 경찰에 있는 그대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8월 25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장에게 '고소인 채정호 고소사건에 대한 의견 회신' 공문을 보냈다. 거기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 대구지방경찰청 공문 '분석결과 및 의견' 中


1) 고소인의 휴대전화에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것과 같은 내용의 대화내용이 존재하지 않음.


가) 삭제 데이터 복원 후 검색결과 고소인이 고의로 삭제한 것으로 보이는 메신저(텔레그램, 카카오톡, 문자 등) 대화내용 및 사진, 영상 등이 발견되지 않음.


나) 고소인이 성착취물을 구매하려는 것으로 의심할 만한 대화, 사진, 영상 등이 발견되지 않음.


다) 고소인은 대부분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며 텔레그램은 특정 모임에서만 이용 중


2)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채정호 교수 작성 글에서 발견된 특정 단어의 맞춤법이나 말줄임 등 문자 작성 습관과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메시지 99,962건 중 채정호 교수가 발송한 내역을 상호 비교한 바 서로 일관되게 달라 디지털교도소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자는 채정호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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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 흔적과 허위 밝혀낸 증거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채 교수의 '텔레그램 대화'가 가짜라는 사실은 변호인과 그의 지인의 도움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텔레그램 대화의 '포토샵 흔적'이 확인됐다. 채 교수는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는데, 해당 텔레그램 대화는 아이폰을 통해 이뤄진 증거도 발견됐다.


채 교수는 "6월엔 이미 n번방이 사회의 중심 이슈로 떠올랐던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왜 신분을 공개하며 성착취영상을 구매하려 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증거들은 경찰이 채 교수와 관련한 디지털교도소의 텔레그램 대화가 허위라고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채 교수의 디지털교도소 홈페이지 게시물엔 자신을 채 교수라고 주장하는 인물, 채 교수의 전공의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댓글을 포함해 1029개의 댓글이 달린 상태다. 채 교수는 "저와 저의 전공의들 중 거기에 댓글을 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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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호 "이런 사적 복수는 중단해야"


채 교수는 수사 과정에서 "내가 왜 디지털교도소에 타깃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여러 차례 찾아왔다고 했다. 채 교수는 "인격적 살인을 당했다"며 "이와 같이 사법 체계를 무시한 사적 복수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 현상이란 것엔 공감한다"면서도 "이런 방식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 일문일답


Q :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사실은 어떻게 알게됐나


A : 지난 6월 28일(일요일) 모르는 번호로 내 신상이 공개됐단 문자를 처음 받았다(채 교수의 신상은 6월 26일 공개). 사기인 줄 알고 답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인 29일 월요일부터 기자들의 전화가 쏟아져 알게됐다. 디지털교도소가 아니라 정말 교도소에서 사는 것 같았다.


Q : 경찰 수사로 허위사실이 판명된 뒤의 심정은


A :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저를 믿어준 제 가족과 제 친구,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Q : 경찰에 제출하지 않은 휴대폰이 있다고 의심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A : 전 이 휴대폰만 써왔다. 제 이름으로 개통된 휴대폰은 경찰에 제출한 갤럭시노트9 뿐이다. 통신사 조사하면 경찰이 모두 알 수 있다. 전 사건이 발생한 뒤 일부러 휴대폰을 바꾸지도, 휴대폰의 있는 메시지를 삭제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제출했다. 2주간 휴대폰 없이 살면서 포렌식을 받았다.


Q : 최근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명문대생이 사망했다


A : 그분의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한번 신상이 공개되면 알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전화와 문자로 욕설을 쏟아낸다. '니가 사람 새끼냐 죽어라''죽어버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세상사람들이 나를 다 아는 것 같다. 사망한 그 학생의 심정은 알 것 같다. 매일 심장이 뛰고 각성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게 괴로웠다.


Q : 하루에 전화나 메시지가 몇통이나 왔나


A : 조금 과장하면 수백통. 최소 100통씩은 왔던 것 같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들이 괴로웠다. 휴대폰을 끄고 잘 수밖에 없었다.


Q : 주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


A : 내 가족과 지인은 물론 내 직장 동료, 내가 속한 학회와 내가 속하지 않은 학회에도 알려졌다. SNS의 전파력이 정말 무서웠다. 내가 장로로 있는 교회의 목사님도 걱정을 하셨고 아는 신자분들도 계셨다. 내가 치료를 했던 환자들로부터 "교수님을 믿었는데 이젠 정말 살기 싫다"는 문자도 받았다. 제가 가장 괴로웠던 부분이다.


Q : 왜 교수님을 타깃으로 삼았을까


A : 나도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수사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한다. 나 말고도 디지털교도소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수사를 요청한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Q :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생각은


A :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엔 공감한다. 법원의 형량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교도소와 같은 사적 복수의 방식은 사법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저처럼 이렇게 억울한 사람이 나오면 안되지 않나. 법 체계 안에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전체대화 중 일부 압축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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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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