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면 차 미끄러져"…금오도 추락, 남편 살해혐의 벗었다

[이슈]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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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가 탄 차를 바다로 추락시켰다는 의혹을 받은 ‘금오도 차량 추락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살인죄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4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자동차매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52)씨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금고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오도 비탈진 선착장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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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건 2018년 12월 마지막 날이다. 혼인신고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은 전남 여수시 금오도로 여행을 갔다. 비탈진 선착장 근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시간을 보내던 부부에게 사고가 난 건 남편 박씨가 혼자 차에서 내린 직후다. 박씨가 차를 후진하다 차량 뒤쪽이 추락 방지용 난간에 부딪혔고, 박씨가 이를 확인하려 내린 사이 갑자기 차가 비탈진 선착장 쪽으로 굴러가 바다에 빠졌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박씨가 일부러 차량 기어를 중립 상태에 둔 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은 채 뒤에서 차를 밀어 승용차를 바다에 빠뜨렸다고 의심했다. 박씨는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 됐다.


1심은 박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뒤에서 차를 밀지 않고서는 차량이 비탈진 길로 밀려 내려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차량이 멈춰있지 않았다면 박씨가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차가 멈춘 상태에서 박씨가 내렸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박씨가 내리며 문을 닫았을 때의 충격이나 안에 있던 아내의 움직임, 바깥바람의 영향 등의 요인으로 차가 비탈길로 밀려 내려가기에는 그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또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박씨가 사고 직전 아내에게 사망보험 여러 개를 들도록 권유했고, 수익자로 본인으로 바꾼 점, 세 딸을 부양하며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박씨의 사정 등을 볼 때 보험금을 노린 살인의 동기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1심 무기징역→2심 금고3년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살인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의 사건은 박씨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일 뿐 의도적인 살인으로 단정 짓기에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다. 2심 법원이 1심과 판단을 달리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장 검증 결과다. 사고 당시 장소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운전자가 내렸을 때는 정차한 상태지만, 조수석에 탄 사람이 움직임에 따라 차가 비탈길로 미끄러져 가는 경우가 발생했다. 1심에서 인정한 “박씨가 차를 밀지 않고서는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할 리 없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또 비탈진 선착장에서 차량을 어느 위치에 세우느냐에 따라 사건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데 박씨가 사건을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꼽았다. 덧붙여 항소심은 보험금 수령이라는 목적이 범행의 주된 동기라는 1심 판단도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가 매우 절박한 경제적 곤란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심스러운 사정은 있다”면서도 박씨의 살인죄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먼저 박씨가 아내만 타고 있던 승용차를 뒤에서 밀었다고 인정할만한 아무런 직접 증거가 없었다. 박씨가 사망 시 지급되는 보험금 액수를 높인 것도 반드시 살인의 동기가 목적이 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평소 박씨의 보험 가입 행태나, 박씨와 아내가 주고받은 문자 내역 등을 살폈을 때 보험금 수익자를 바꾼 것도 아내의 요구에 따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사망이 박씨의 고의적인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박씨의 금고 3년 형을 확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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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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