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 "50살 쯤 뜰것 같다" 14년전 예언대로 전성기 찾아왔다

[연예]by 중앙일보

[민경원의 심스틸러]

시간여행 비밀 품고 온 고형석 형사

친구처럼, 아버지 같이 주원 곁 지켜

‘킹덤’ 주지훈과 선보인 케미 이어가

“50살쯤 뜰 것 같다” 예고된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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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에서 서울 남부서 형사 2팀 고형석 팀장 역을 맡은 배우 김상호(50) 얘기다. 12회에서 그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박진겸(주원) 경위의 삶은 송두리째 변해버렸다. 10년 전 어머니 박선영(김희선)이 살해된 후 홀로 남은 그를 거둬준 고형석 팀장은 단순히 아버지 같은 존재를 넘어 자신의 등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제 손으로 범행 증거 영상이 담긴 USB를 파기할 만큼 끝까지 믿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박진겸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도플갱어 같은 두 사람이 만나면서 서로의 기억과 감정이 뒤섞이는 ‘양자얽힘현상’으로 인해 주위 사람을 공격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다.


시간여행은 이 드라마를 이루는 큰 축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간여행은 생각보다 더 큰 문제를 유발한다.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복수를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그곳에 불법 체류하며 예정된 운명을 바꿔놓기도 하는 탓이다. 2050년에서 아내를 잃고 슬퍼하던 중 앨리스 본부장으로부터 사람을 처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2010년으로 오게 된 고형석은 이 모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하여 누구보다도 시간여행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폐해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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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련만 그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슬퍼하는 진겸을 향해 “나 이제 좀 쉬자. 인생 두 번 사니까 지겹다”며 담담히 이별을 고한다. “여기 오면 잘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더라. 내 옆에서 외롭게 살다가 죽어간 그 사람이” “그러니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소중한 건 지금이야.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참회와 함께 “그래도 만나서 행복했다. 집사람을 잘 돌봐달라”는 말을 남긴다. 10년 전 이 세계로 처음 넘어왔을 때 그곳에 살고 있던 고형석 역시 마지막 순간에 같은 부탁을 했던 터였다. 또 다른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고 제 손으로 시신까지 땅에 묻었으니 그야말로 ‘2회차 인생’을 산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남다른 무게감을 지닌다. 10년을 가족처럼 지낸 진겸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속일 만큼 의문 투성이었지만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꼭 내 손으로 범인을 잡아주겠다”는 말이나 “사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내가 이것저것 가르쳐 줘야 되는데”라는 말 역시 그의 진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박진겸 곁을 지켜온 유일한 친구 김도연 역을 맡은 이다인 역시 “고 형사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 ‘행복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명장면으로 꼽았다. 굳이 어른 행세를 하며 설교를 늘어놓지 않아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 해도, 커다란 잔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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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체하지 않으면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것은 김상호의 특기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에서 무영 역을 맡은 그는 세자 이창(주지훈)의 곁을 지켰다. 비록 임신한 아내를 보살피기 위해 세자의 동선을 적에게 알리는 등 배신을 택했지만 이창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둘 때까지 고된 길을 함께 걸어왔다. 아버지는 얼굴조차 볼 수 없고 사방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이 깔린 이창에게 믿고 의지할 만한 어른이 되어준 것. 만삭인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떠난 아내 입장에서 좋은 남편은 아니었을지언정 이창에게는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 역시 무영을 떠나 보내고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1994년 연극 ‘종로고양이’로 데뷔한 김상호가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곁을 내어준’ 사람들 덕분이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경주에서 고등학교 1학년만 두 차례 다니다 그만둔 그는 무작정 상경해 극단 문을 두드렸다. “살다 간 흔적을 남기고자” 이름이 남는 배우를 꿈꾸게 된 그는 포스트 붙이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신문 배달과 라면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이제는 정말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때 손을 잡아준 극단 청우와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얼굴을 알릴 수 있게 해 준 최동훈 감독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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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씨네21 인터뷰에서 “얼굴을 딱 보면 나오는 견적은 이장, 산적, 도둑놈 정도”라고 자평했지만, 학교 울타리 안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연기를 배운 그는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뒤로 날카로운 이빨을 숨길 줄 알았고, 핏대 세우며 욕설을 날리다가도 슬며시 다가가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전형성을 거부하고 항상 새로운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과거에 연연하는 성격이었다면 실패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좋아하는 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하다”는 마음가짐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무려 14년 전 인터뷰에서 “50살쯤 되면 내가 뜰 것 같다”고 예언한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소일거리로 한다는 농사처럼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다 보면 언젠가 수확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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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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