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2시간 쪽잠자며 18년 버텼다, 치료제 나오면 은퇴"

[비즈]by 중앙일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단독 인터뷰

"18년간 쪽잠 2시간씩 세번 자며 버텄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마치면 은퇴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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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이후 단 하루도 편안했던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세 번 쪽잠을 자며 18년을 버텼어요. 올해 연말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마무리되면 회장 자리를 내려 놓을 겁니다.”


서정진(63) 셀트리온 회장에게는 ‘자수성가’ ‘흙수저’ ‘바이오 신화’라는 말이 늘 따라 다닌다. 그는 국내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다음가는 주식 부호다(4월 포브스 선정). 45세 나이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한 벤처를 20년 만에 시가총액 60조원(11월 20일 기준)짜리 기업으로 키웠다. 그런 그가 한창(?)나이에 ‘회장’ 타이틀을 스스로 떼고 은퇴한다.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기지도 않는단다. 국내 대기업사(史)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마지막 ‘현역의 시간’을 바삐 보내고 있는 서 회장을 지난 20일 만났다.


Q : 왜 은퇴를 결심했나.


A : “회장으로서 가장 일을 잘할 때까지 하는 것, 나는 그게 65세(한국 나이)라고 생각했다. 10년 전부터 임직원들에게 말해 왔다. 내 유·불리에 따라 약속을 뒤집을 수 없다. 그게 신뢰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 이사회 의장만 맡길 생각이다.”


Q : 은퇴해도 셀트리온 대주주나 공정거래법상 기업 총수의 지위는 그대로다.


A : “이사회에서 물러나고 최대주주로, 명예회장으로만 남는 것이다. 하지만 회장실도 빼고, 회장 자리도 없앨 것이다. 후계자는 없다. 내년엔 3개 회사(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가 합병해 하나가 된다. 각자 대표이사들이 협력해서 잘해 나갈 것이다.”


현역에서 물러난다는 서 회장의 생각은 확고해 보였다. 하지만 시장에선 ‘서정진 없는 셀트리온’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런 인식이 우리 회사의 최대 리스크”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명예회장으로서 결정적일 때 소방수 역할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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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


A : “이달 안에 임상 2상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효능과 안전성이 있다고 확정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조건부 사용 승인 신청을 할 것이다. 승인은 정부의 몫이지만 이미 충분한 데이터를 제공했다. 국가적으로 시급한 사안이라 리스크를 안고 뛰어들었다. 연내 개발이라는 약속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전 직원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Q : 코로나19 치료제 가격이나 생산능력은.


A : “구체적인 가격을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는 원가에 팔 것이다. 외국에서도 경쟁사보다 낮게 판매할 생각이다. 식약처에서 허가가 나면 다른 제품의 생산을 줄여서라도 우리가 가진 최대 생산능력을 이용해 코로나19 치료제를 생산할 것이다.”


Q :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이 코로나 청정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A : “나의 희망 사항을 전달한 것이다.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진단키트와 항체치료제를 자급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 대한민국뿐이다. 물론 정부가 결정할 일이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대량 진단을 하고, 확진자를 조기 치료하면 코로나 청정국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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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셀트리온 계열 3사의 매출 컨센서스(추정치)는 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 1조8700억원, 셀트리온헬스케어 1조7600억원, 셀트리온 제약 2100억원이다. 전년 대비 60%가량 증가한 수치다. 합산 영업이익 예상치도 1조원을 훌쩍 넘는다.


Q : 셀트리온의 향후 목표는.


A : “내년에 순이익 2조원으로 전 세계 제약·바이오업계 20위, 2025년에는 7조원으로 10위권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일각에선 코로나 특수 때문에 급성장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로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약품 수요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가면역 항체치료제 생산으로 이렇게 성장을 해내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Q : 개발 중인 신약 독감치료제(CT-P27) 개발 현황은.


A : “우리는 거의 모든 독감 바이러스를 커버할 수 있는 신약 치료제를 2상까지 개발했다. 아직 완성을 못 한 이유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 안 왔기 때문이다. 환자가 생겨야 3상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처럼 독감 팬데믹이 오면 바로 개발할 수 있다. 이런 준비가 돼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 셀트리온과 로슈가 인수한 제넨테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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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회장은 늘 품고 다닌다는 글로벌 제약 순위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화이자가 1등으로 표시된 A3 크기 순위표의 30위 자리에 셀트리온이 초록색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었다. 올해 순위다. 서 회장은 지난 1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송도에 제3공장 투자 계획도 밝혔다. 그는 “2030년까지 송도에 20만L 규모의 4공장과 복합 바이오타운도 건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Q : 바이오 붐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국내 증시에선 거품론도 만만치 않다.


A : “바이오 붐은 세계적 추세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도 스타트업 중 60%가 바이오다. 우리도 그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다. 다만, 우리 바이오산업도 실적이 나오고 다른 산업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때문에 5년 이상 실적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기업공개(IPO)를 해서는 안 된다. 선의의 피해자(투자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오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사업가와 사기꾼의 차이는 단 하나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사기꾼, 이익을 주면 사업가다. 바이오 기업도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Q :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공부 모임(경국지모)에 참석해 ‘상속세 합리화’를 주장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A : “대주주 할증이 붙으면 기업 상속세율이 60%다. 상속세를 내려면 주식을 팔아 현금화해야 한다. 여기에 양도세도 붙는다. 내가 지금 죽으면 가족들 지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주인 없는 기업이 된다. 상속세율을 낮출 수 없다면, 상장주식으로 상속세를 납부하고 향후에 재매입할 수 있는 제도 등도 검토해 줬으면 한다. 이제 한국도 상속세를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제도를 바꾸고 위법·변칙 상속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응분의 조치로 엄단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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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힘든 일이 많았겠다.


A : “나는 창업 초기 이름도 모를 '유령기업'에서 중소·중견을 거쳐 대기업 총수까지 온 사람이다. 그간 셀트리온의 선장 역할을 하면서 모든 단계에서 고충이 있었다. 쉴 만하면 큰 파도가 오더라. 최근 얘기만 하자면, 작년에는 일본이 핵심 부품 수출을 거부하면서 고생 좀 했다. 수입처를 다변화해 겨우 해결했다. 그러고 나니 코로나가 왔다. 유럽은 헝가리 법인을 통해 수출하는데, 국경이 막히면서 물류를 뚫느라 전쟁을 치렀다. 그래도 차질 없이 해냈다.”


Q : 이제 좀 편해지는 건가.


A : “그저 잠 편히 자는 게 소원이다. 창업 이후 편안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나는 하루에 쪽잠을 세 번 잔다. 저녁 8시에 두 시간 자고 일어나 유럽 시간에 맞춰 일하고, 또 두 시간 눈 붙인 후 일어나 미국 사업 챙겨야 한다(셀트리온은 전 세계 75개국에 지사가 있다). 이후 다시 눈을 붙였다가 아침에 한국 일을 본다. 이런 생활을 20년 했다. 최고경영자로 제일 중요한 게 전 세계 직원들 영업을 챙기는 것이다. 영업은 ‘올 오아낫씽(all or nothing)’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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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회장은 연말 은퇴하지만,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은퇴 후 또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원격 진료로 피 검사를 하는 스타트업을 만들 생각이다. 서 회장은 "당뇨를 진단하듯 집에서 간단하게 피 뽑아서 데이터를 전송하면, 다양한 질병을 원격으로 진단하고, e-커머스로 약을 환자에게 주는 시대가 내가 그리는 그림"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중에 사기로 밝혀지긴 했지만 미국 테라노스가 그런 꿈을 꿨다"며 "은퇴하면 감옥에 있는 테라노스 창업자를 찾아가 '넌 정말 어디까지 한거냐’고 물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서 회장은 "남들은 나에게 성공한 기업가라고 하지만 아직 실패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실패하지 않으려고 끝없이 노력하고 혁신하는 기업만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현역의 시간'은 멈출 것 같지 않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김태윤 기자 joonho@joongang.co.kr


■ 서정진


1957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했다. 제물포고와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삼성전기와 한국생산성본부를 거쳐 1991년 34살 나이에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직접 영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우그룹 해체 후 2000년 대우차 출신 10명과 함께 넥솔(현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현재는 셀트리온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이다. 올 1월에는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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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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