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꼼수, 그 묘한 카타르시스

[컬처]by 중앙일보

1918년 푸치니가 발표한 ‘잔니 스키키’는 13세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1막 오페라입니다. 역시 피렌체 출신 작가인 단테의『신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묘사한 3부작을 작곡했는데, 그중 하나랍니다.


이 작품에는 자본의 노예, 황금만능 시대의 캐릭터가 많이 나온답니다. 모두 돈에 환장해 유산을 탐내는 낯뜨거운 물질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지요. 망자의 유족은 한 푼이라도 더 값나가는 유산을 챙기려고 혈안이 되면서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아요. 그래서인지 잔꾀 부리는 사기꾼 잔니 스키키에게 오히려 관객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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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부자인 부오소는 사망했고 친척들이 모여 고인을 애도하는데, 얼굴에는 슬픔보단 왠지 긴장의 기운이 맴돌고 있답니다. 자신들에게 배분될 유산을 알려줄 유언장 내용이 궁금한 거지요. 유족 중 한 사람이 전 재산이 수도원에 기부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이에 모두 놀라 유언장을 찾고자 집안 곳곳을 뒤지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네요.


유언장을 발견한 청년 리누치오에게 모두 몰려드는데, 그는 연인인 라우레타와 결혼을 승낙해 주어야 유언장을 넘기겠다고 합니다. 고모인 치타는 “그것만 내놓으면 악마의 딸과 결혼해도 좋다”고 건성으로 허락하고 유언장을 채가지요.


유언장을 보니 정말 모든 유산은 수도원으로 기부되겠네요. 친척들은 모두 실망하며 수도원은 좋겠다며 비아냥거리고 욕하다가 유언장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누가 할까요?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네요.


이때 리누치오가 법을 잘 아는 잔니 스키키에게 맡기자고 합니다. 어른들이 외지 사람인 잔니 스키키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자, 리누치오는 능력 있으면 되지 시골 출신이면 어떠냐며 유명한 아리아 ‘피렌체는 꽃피는 나무와 같아’를 부른답니다. 피렌체 칭송가인데, 모두에게 열려있는 꿈의 도시 피렌체는 많은 외지 사람이 발전시킨 도시라는 거지요.


잔니 스키키가 불려 오고, 리누치오와 사람들이 나서서 유언장 위조를 도와달라고 간청을 해도 피렌체법상 불법이라며 이를 거부하는 잔니 스키키. 이때 그의 딸 라우레타가 나서서 리누치오를 도와달라며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부르지요. 이 아리아는 아름다운 선율이 정말 유명하지요. 허나 가사를 보면 사랑에 빠져 아빠를 협박하는 철없는 딸의 노래랍니다. 가사를 볼까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를 좋아해요. 그는 정말 잘 생겼지요.


나는 결혼반지를 사러 가고 싶어요. 예, 그래요


만약 그를 사랑하는 것이 헛되어진다면(결혼하지 못한다면)


베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강에 몸을 던지겠어요.


고통스러워요. 오, 주여! 저는 죽을거에요.


아~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로 간청하는데, 거부할 수 있는 아빠가 있을까요? 결국 유족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유언장을 본 잔니 스키키. 좋은 계책이 떠오른 그는 딸에게는 불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라우페타를 심부름 보냅니다. 그는 부오소가 죽지 않은 듯 대신 흉내 내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기 위해 공증인을 호출합니다.


그러자, 유족들은 잔니 스키키에게 자신이 원하는 유산을 주장합니다. 제일 값나가는 저택과 방앗간, 노새는 각자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서로 우기네요. 다투다가 결국 결정은 잔니 스키키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각각 그에게 다가와 원하는 유산을 주면 많은 대가를 주겠다고 흥정까지 하지요. 망자에겐 관심 없이 유산을 탐내고, 게다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뇌물성 흥정까지! 참, 탐욕이 대단하지요.


잔니 스키키는 유언장의 위조범과 공범은 모두 손목을 자른 뒤 추방한다는 피렌체법이 있음을 유족들에게 상기시키고, 공증인이 오자 잔니 스키키는 유언장을 다시 작성합니다. 부오소의 땅과 밭, 목장과 집을 골고루 나누어 주자 유족들은 뜻대로 되고 있다며 모두 기뻐하지요. 이제 세 가지 핵심 유산 차례. 모두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대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립니다.


기대와 달리 잔니 스키키는 하나씩 하나씩 결국 모두를 ‘나의 친구 잔니 스키키’에 준다고 공증하도록 하니, 모두 놀라면서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때마다 잔니 스키키는 손목 절단을 시늉하며 법의 처벌을 상기시킴으로써 유족들을 꼼짝 못 하게 하지요. 유언을 마친 잔니 스키키는 공증인과 증인에게도 두둑한 금화를 주어 뒷마무리도 확실히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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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증인이 돌아간 뒤 항의하는 유족을 잔니 스키키는 냉정하게 내쫓아 버립니다. 소동이 가라앉은 뒤 발코니엔 라우레타 커플이 나타나 피렌체와 사랑을 찬미하며 노래하고, 잔니 스키키는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자, 여러분! 더 좋은 유산처리 방법이 있을까요? 유족은 몰라도 관객들께서 재미있으셨다면 위대한 단테 선생도 저를 용서해 주실 겁니다”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우리는 이따금 폐지 할아버지나 김밥 할머니의 감동적인 사연을 듣곤 하지요. 안 입고, 안 먹고 평생을 아껴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소식 말이에요. 이 같은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조금 아련하답니다. 물론 기부는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래도 평생을 어렵게 번 돈, 아끼고 아껴 모아 기부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맛난 것 드시고 예쁜 옷도 입으시고 행복하게 사시다가 가실 때 남은 것만 이웃에게 베푸신다면, 기부 소식에 가슴이 먹먹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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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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