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보리암 관음보살은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

[여행]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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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저물어간다. 올해는 뒤돌아보지 않으련다. 아쉬움도 없고, 서운함도 없다. 어서 새해가 오기만 바란다. 내년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마는, 이 징글징글했던 경자년과는 서둘러 연을 끊고 싶다. 다들 마찬가지일 테다.


2020년을 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마음이라도 편해질까 싶어 나만의 송년회를 작정했다. 고민 끝에 남해 금산을 찾았다. 이 사연 많은 산을 오른 건 보리암 때문이다. 보리암 관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여 정성껏 기도하고 진심으로 소원했다. ‘내년에는 거리에서 웃는 얼굴을 보게 해주세요.’



왕이 내린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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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 따로 있다. 산보다 동네를 먼저 불러줘야 한다. 남해 금산. 경남 남해에 있는 건 알겠는데, 왜 남해를 먼저 부를까. 남해 사람도 연유는 모른다고 했다. 사람 이름 앞에 성(姓)을 붙여 부르는 것처럼 금산은 꼭 남해를 앞세워 호명한다. 입에 붙어서 그런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이름의 내력도 범상치 않다. 금산(錦山)이란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지었다. 금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린 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 과업을 이룬 보답으로 이성계가 산에 비단을 내리려 했다. 하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수 없어 이름에 비단을 내려줬다. 사실이든 전설이든, 임금이 이름을 하사했다는 산은 남해 금산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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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681m이다. 681m인데 높다는 게 아니라 681m이어서 높다. 해발은 해수면이 기준이다. 섬 산은 대부분 해발 0m에서 시작한다. 금산은 가파르기도 하다. 자동차가 중턱까지 올라가지만, 원래 산행 코스는 2시간쯤 걸린다. 돌계단 이어진 탐방로가 고약하다. 경사가 심해 무릎이 고생한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 공원이다.


금산은 큰 산이다. 차 타고 올라가 보리암만 들어갔다 나오면 작은 산이다. 하나 금산에는 무려 38경(景)이 전해 내려온다. 관동 지방의 명승 8곳을 일러 ‘관동팔경’이라 하듯이, 금산 자락에는 38개나 되는 명승이 있다. 명승마다 전설이 서려 있고, 역사가 배어 있다. 중국 진시황의 전설이 내려오는 터도 있고, 신라 불교의 양대 산맥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참선했다는 자리도 있다. 비둘기(천구암), 두꺼비(천마암), 닭(천계암), 용(용굴), 돼지(저두암), 사자(사자암), 거북이(요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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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의 기암괴석 중 단연 돋보이는 건 상사암이다. 금산 오른쪽 자락 비쭉 돋은 자리에 솟아 있다. 상사암에서 남해 금산이 가장 잘 드러난다. 보리암을 가운데 품고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듯한 산세가 장쾌하다. 풍수를 몰라도 천하 명당 금산이 보인다. 상사암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루지 못한 사랑 얘기다. 그 전설이 이성복의 절창 ‘남해 금산’을 낳았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남해 금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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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암 옆 ‘금산산장’은 시방 젊은 연인으로 활기차다. 금산산장에서 컵라면 먹는 인증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면서 젊은 연인이 부쩍 늘었다. 금산산장은 남해 금산이 국립공원이 아니었을 때부터 상사암 옆을 지킨 쉼터다. 옛날에는 손수 담근 막걸리도 팔았는데, 요즘엔 컵라면과 부침개만 판다. 남해군청이 최근 금산 구석구석을 잇는 ‘금산바래길’을 조성했다. 2㎞ 거리에 불과하지만, 다 걸으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안내판이 없어 전용 앱 ‘남해바래길’을 켜야 한다.



세상의 모든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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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은 흔히 ‘3대 관음 성지’로 통한다.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 중에서 내력이 깊고 유명한 세 곳을 이른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과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남해 금산 보리암. 각 동해와 서해, 남해의 관음 도량을 대표한다.


‘백천만 억 중생이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폭풍이 불어 나찰(악귀)에 잡혔을 때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나찰의 난을 벗어나게 되나니.’


『법화경』에서 인용했다. 관음보살은 곤경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쉽게 말해, 소원을 빌어주는 보살이다. 『법화경』에 관음보살에 관한 두 가지 단서가 담겨 있다. 하나가 바다다. 관음보살은 바다와 인연이 깊다. 하여 관음 도량 대부분이 바다를 끼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관음보살도 바닷가에 있다. 바다에 계신 관음보살상이라 하여 ‘해수관음상’이라 한다. 보리암 관음상도 해수관음상이다.


다른 하나는 ‘이름을 부른다’는 구절이다. 관음보살을 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한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 보살이다. 하여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경(經)의 한 대목 ‘나무관세음보살’은 꼭 소리를 내어 읊어야 한다. 그래야 관음보살이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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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이다. 관음상 앞에 삼층 석탑이 서 있는데, 이 자리가 제일 기가 세다고 한다. 서재심(56)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석탑에 나침반을 갖다 대니 바늘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석탑 안에 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얘기도 있고, 석탑을 이루는 바위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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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과 보리암은 경계가 모호하다. 걸어서 산을 오르다 보면 커다란 동굴 두 개와 맞닥뜨린다. 왼쪽 동굴을 통과해 조금 오르면 보리암에 들어선다. 쌍홍문(雙虹門)이라 불리는 이 동굴이 보리암의 일주문 역할을 한다. 사찰 일주문의 나한상이 험상궂은 것처럼, 보리암 쌍홍문도 해골바가지처럼 무섭게 생겼다. 금산이 보리암이고, 보리암이 금산이다.


남해 금산은 불교 성지일까. 보리암 전각 중에 간성각(看星閣)이 있다. 별을 보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별 중에서도 남극노인성을 보는 곳이다. 남극노인성은 도교에서 신성히 여기는 별이다. 도교에서는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믿는다. 관음 도량 안의 도교 건물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보리암 아래 벼랑에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다는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이 있는데, 여기서 이성계는 보리암 관음보살을 섬기지 않았다. 남해 금산 산신령을 찾았다. 남해 금산 정상 어귀에는 단군을 모시는 신전도 있다. 남해 금산에는 우리네 모든 믿음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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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을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관음보살이든, 산신령이든 소원을 빌 때도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해야 한다. 고개를 숙여 절을 하는 건, 나를 낮추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나를 내려놓는 의식이다. 보리암 관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고 앞서 적었다. 다만 조건이 따른다. 나를 위한 소원이 아니라 남을 위한 소원이어야 한다. 이번에도 나는 내려놔야 한다. 하여 소원을 다시 빌었다. 물론 소리 내 빌었다. ‘내년에는 사람들이 웃는 제 얼굴을 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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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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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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