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보고 회 먹고 시장 둘러보고… 겨울 포구가 더 재밌네

[여행]by 중앙일보


울산 방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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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고 바닷바람이 거셌지만, 울산 방어진항은 활기가 넘쳤다. 새벽 바다로 나간 고깃배들이 제철 맞은 가자미를 가득 싣고 포구로 돌아왔다. 덩달아 어시장과 횟집 골목에서도 먹음직스러운 갯내가 진동했다. 좀 더 가까이, 더 빨리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이들은 성지 순례하듯 인근 대왕암공원과 슬도에서 일출을 맞았다. 겨울 포구는 풍요로웠다.



동해안 길목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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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방어진항은 동해안의 길목이었다. 조선 시대까지는 한적한 어촌이었지만, 100여 년 전 일제가 어업 전진 기지로 활용하면서 동네가 갑자기 커졌다. 1920년대엔 70만원을 들여 방파제를 세웠다. 약 20만 명이 투입된 대공사였다. 일본인을 위한 거주지와 유흥가를 따로 둘 정도로 흥청거리던 시절이다. 방어진 활어 시장 뒤쪽으로 100년 된 목욕탕을 비롯한 적산가옥이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흩어져 있다. 고래잡이가 활발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울산 최고 부자 동네로 통했다.


방어진항은 현재보다 과거가 더 빛나는 장소였다. 낙후한 어항이 근래 재단장하면서 변화를 맞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2015년부터 4년간 진행한 ‘방어진항 이용고도화사업’이 지난해 5월 마무리된 게다. 배를 대는 부두도, 사람이 다니는 방파제도 리모델링을 마쳐 여행이 훨씬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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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를 걸었다. 허보경 울산 문화관광해설사는 “걷는 게 방어진항의 근대 100년 역사를 훑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방어진항은 지도를 놓고 보면 방파제 두 개가 두 팔로 항구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서쪽 방어진 등대에서 출발해 동쪽 끝 슬도까지(2.5㎞) 걷는 동안 방어진 방파제 축조비, 적산가옥 거리, 횟집 골목, 방어진 어시장, 성끝벽화마을 등을 거쳤다.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닮았다’고 하는 무인도 ‘슬도(瑟島)’는 육지와 방파제로 연결돼 있었다. 슬도 등대에서 방어진항의 너른 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곶보다 대왕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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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항에서 북쪽으로 1㎞ 거리 해안에 대왕암공원(옛 울기공원)이 있다. 경주 감포와 함께 신라 문무대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장소다. 새벽부터 서둘러 대왕암공원을 찾은 건, 애오라지 해돋이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간절곶이 멀지 않지만, 일출 풍경만 놓고 보면 첫손에 꼽아도 부족함이 없는 명소다. 오전 7시 20분. 바다 위 육중한 대왕바위와 그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함께 담을 수 있었다. 요맘때부터 1월 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송구영신을 위해 대왕암공원을 찾을 테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대왕암공원 절벽 끝자락엔 1906년 세워진 울기등대도 있다. 일제가 군사용으로 세운 것이나, 동해안에 맨 처음 세워진 등대로서의 의미가 남다르다. 등대가 있는 절벽 아래에선 해녀들이 직접 캔 해산물을 내다 팔고 있었다. 허 해설사는 “겨울에도 물질을 쉬지 않는 베테랑”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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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은 방어진항도 분주히 하루를 열고 있었다. 고깃배가 물건을 내려놓기 무섭게, 경매가 이뤄졌다. 주인공은 가자미였다. 가자미는 사철 잡히나 살을 잔뜩 찌우는 겨울이 제철로 꼽힌단다. 전국 가자미 물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 방어진항에서 난다. 하루 많게는 40t 가까이 팔려나간다.


식당 20곳이 줄지어 있는 횟집 골목에서도 요즘은 가자미가 가장 흔하다. 얼큰하게 끓여내는 생가자미 찌개가 제일 많고, 미역국·물회에도 가자미가 들어간다. 골목 초입 식당에 들러 가자미 물회를 시켰다. 싱싱한 가자미 살이 혀에 착착 감겼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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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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