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년 세월이 빚은 비밀…한탄강 얼어도 ‘혀’ 녹이는 그 맛

[푸드]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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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은 대한민국 최북단이 멀지 않은 곳이다. 요즘처럼 추울 때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이맘때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예사다. 호수와 강물은 얼고, 협곡을 타고 삭풍이 몰아친다. 그런데도 포천행을 감행했다. 한탄강 줄기를 따라 다양한 이야기와 음식 문화가 흐르고 있어서다. 바람이 찼지만, 배는 따뜻했다. 한탄강 자연산 민물고기를 맛보고, 포천 암반수로 빚은 막걸리를 음미하며 이동갈비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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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에서 길어 올린 맛


50만 년 세월이 빚었다는 한탄강.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엔 화산 폭발이 빚은 자연의 걸작이 즐비하다. 겸재 정선이 재현한 화강암 바위 ‘화적연’을 비롯해 아우라지 베개용암, 비둘기낭폭포, 멍우리협곡, 주상절리 등등 절경으로 빼곡하다. 어디 절경만 품었을까. 물 밑에선 쏘가리‧메기‧모래무지‧어름치‧꺽지 등 민물고기가 헤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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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강을 낀 고장이 모두 그렇듯, 이곳의 대표 음식 역시 매운탕이다. 한탄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은 엄격하게 규제를 받고 있는데, 포천과 철원의 어업 허가자를 다 합쳐봐야 10명 남짓이다. 냉정저수지 앞 ‘샘물매운탕’, 화적연 인근의 ‘샛청가든’, 산정호수의 ‘바비분 식당’ 같은 식당이 한탄강의 베테랑 어부가 직접 운영하는 매운탕 집이다. 겉은 허름해 봬도, 저마다 단골이 두텁다. 어부에겐 겨울이 따로 없다. 한탄강이 꽝꽝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손님이 찾으면 강물을 깨 고기를 건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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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탕 차림은 대부분 비슷하다. 메기‧빠가사리 외에 그때그때 잡아 올린 잡어를 가득 넣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풀어 얼큰하게 끓여낸다. 바비분식당의 매운탕(4만5000원)에는 메기‧빠가사리 외에 참게‧갈겨니‧모래무지 등이 담겨 나왔다. 특별한 양념도 하지 않았고, 쑥갓‧미나리 따위의 야채는 넣지 않았다. 그래도 맛이 깊었다. 김철수(67) 사장이 “한탄강 민물고기만 있으면 된다. 워낙 맛이 좋고 살도 차지다”고 자랑했다.



소갈비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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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먹거리 가운데 지명을 딴 것이 여럿 있다. 소갈비는 ‘포천이동갈비’와 ‘수원왕갈비’가 양대 산맥으로 통한다. 포천이동갈비는 달짝지근한 간장 양념, 수원왕갈비는 담백한 소금 양념이 기본이라 둘의 비교가 크게 어렵지는 않다. “군부대가 많은 이동면에 1960년대 이후 군인과 면회객을 상대하는 고깃집이 하나둘 자리 잡으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김영일(59) 이동갈비협회장은 설명했다.


이동갈비촌으로 불리는 이동면 장암리 일대에 대략 20개 갈빗집이 줄지어 있다. 과장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 고기 굽는 냄새가 배어 있다. 애초에는 갈빗대를 잘게 썰어 쪽갈비 형태로 내는 집이 많았으나, 지금은 갈빗대에 붙은 살코기를 얇고 길쭉하게 포를 떠 돌돌 말아내는 집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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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삼거리 초입의 ‘김미자 할머니 갈비’가 이동갈비촌 터줏대감으로 통하는데, 그 명성 때문인지 갈비촌 일대에 ‘원조’ 만큼 ‘OOO 할머니’를 내건 고깃집이 많다. 할머니가 없는 유사 ‘할머니 갈빗집’도 있단다. 구순을 바라보는 김미자 할머니가 5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돈 계산과 고기 굽는 일은 딸과 며느리에게 넘겼지만, 양념은 여전히 할머니의 몫이다. 김 할머니는 “갈비도 간장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념 갈비(400g, 3만2000원)를 숯불에 올렸다. 20년 묵힌 조선간장에 하루 이상 재운 갈비는 구수하고도 야들야들했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실감했다.



추위를 감싸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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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에는 이동갈비촌 말고도 이름난 먹자촌이 두 군데 더 있다. 신북면 깊이울 유원지 인근에는 가든 형태 오리 숯불구이 집이 밀집한 ‘신북오리촌’이 있고, 관음산(733m) 자락에는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파주골순두부촌’이 자리 잡고 있다. 이동갈비가 국군 장병과 그 가족이 키운 음식이라면, 오리 구이와 순두부는 산행이나 나들이 후 출출한 배를 채우던 토속음식이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이맘때엔 갓 만든 순두부의 맛이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두부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15시간가량 불린 콩을 갈아 콩물을 내린 다음, 타지 않도록 휘휘 저어가며 가마솥에서 끓여낸 뒤, 간수를 부어가며 식히면 몽글몽글 보드라운 순두부가 완성된다. 이때도 콩물을 쉴 새 없이 저어 주어야 한다.


영평천을 끼고 있는 영중면 성동리. 관음산 가는 길목에 40년 내력의 ‘원조 파주골 순두부’ 집이 있다. 김예주(83), 양영욱(63) 모자가 매일 아침 콩물을 끓여 순두부를 만든다.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크게 줄었지만, 포장해가는 손님은 꾸준하단다. 순두부 정식(7000원)이 인기 메뉴인데, 순두부 한 냄비에 갖은 나물과 양념장, 보리밥이 딸려 나온다. 심심한 듯 담백한 순두부의 중독성이 대단하다.



술 빚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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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자동차를 끌고, 당일 여정으로 포천을 여행하는 건 여러모로 곤욕스러운 일이다. 워낙 넓기도 하거니와 막걸리의 유혹을 참기가 쉽지 않다. 포천이 막걸리의 고장으로 유명하다는 건 술꾼이 아니어도 알만한 상식이다. ‘이동막걸리’ ‘일동막걸리’ ‘포천막걸리’ ‘느린마을’ 등 전국구로 통하는 유명 막걸리가 이 땅에서 잉태했다.


한국막걸리협회 남도희 사무국장은 “‘물을 품은 곳(抱川)’이라는 이름처럼 포천은 예부터 좋은 곳으로 통해 큰 양조장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동막걸리는 이동면 백운계곡의 지하수로 술을 빚고, 일동 막걸리는 청계산 지하 암반수로 술을 빚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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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막걸리 빚는 공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막걸리 맛은 어떤 물, 어떤 토양에서 자란 쌀을 사용하는 지가 중요하다. 일동면에서 4대째 탁주 가업을 이어오는 ‘1932 포천일동막걸리(옛 상신주가)’의 이준성(51) 이사는 “물이 막걸리 맛을 가른다”며 “포천 막걸리는 남부 지역의 막걸리에 비해 훨씬 맑고 부드럽다”고 강조했다.


어느 식당, 어느 가게를 가도 포천 막걸리를 곁들일 수 있으니, 애주가 입장에선 매끼 골라 먹는 재미가 크겠다. 운악산(934m) 자락 화현면에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전통술 박물관 ‘산사원’이 있다. 전통술의 종류와 역사,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막걸리를 비롯해 다양한 전통주를 맛볼 수 있다.



허브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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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겨울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에 허브아일랜드도 있다. 허브 농원이자, 허브의 원산지 지중해 마을을 모티브로 한 테마파크다. 겨울이면 해 질 녘부터 정원 전체를 오색찬란한 불빛으로 밝혀 동화 속 장면을 연출한다. ‘산타하우스’ ‘산타교회’ 등이 조성된 산타마을 라이팅 정원이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으로 통한다.


그리스 신전을 본떠 만든 아네테홀 레스토랑에서 허브 관련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허브 등심 스테이크, 허브 떡갈비, 허브 애플 피자, 허브 알밥 등인데 하나같이 다른 식당에선 맛보기 힘든 메뉴다. 이 중에서 허브아일랜드에서 직접 재배한 식용 허브 베고니아를 넣은 허브 비빔밥(9000원)이 단연 인기다. 비빔밥 위로 베고니아‧적근대‧적상추‧베이비‧새싹 등을 올린 다음 로즈마리‧타라곤‧타임 등의 허브가 들어간 특제 쌈장으로 비벼 먹는다. 화려한 겉모습에 한 번 놀라고, 새콤한 맛과 향에 한 번 더 놀란다. 허브 돈까스(1만1000원)는 어린이가 유독 많이 찾는 메뉴다. 허브로 숙성시켜 육질이 연하다.


포천=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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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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