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중앙분리대가 좌우로 움직이네?"…로드 지퍼의 위력[영상]

[여행]by 중앙일보

급한 용무로 차를 운전할 때 내가 가는 방향의 도로는 꽉 막혀 있는데 반대편은 쌩쌩 달리고 있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반대쪽의 여유 있는 차로 하나만 이쪽으로 더 열어주면 잘 뚫릴 텐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중앙선이 이미 그려져 있는 데다 아예 콘크리트나 철제로 된 중앙분리대까지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아 상상이 현실이 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반대편 차로 하나만 주면 좋을 텐데"

물론 도로 공사나 음주운전 단속 때 사용하는 '라바콘'을 임시로 세워서 차로를 분리하는 방법도 떠오를 텐데요. 그러나 반대방향으로 역주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라바콘은 유사시 충돌방지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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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안전 우려도 줄이면서 교통량에 따라 중앙선(중앙분리대)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나 설비가 있다면 상당히 유용할 텐데요. 미국에서 많이 사용 중인 '로드 지퍼(ROAD ZIPPER)'가 바로 그런 장치입니다.


로드 지퍼는 이동식 중앙분리대와 이를 이동시키는 특수차량으로 구성되는데요. 도로 가운데 세워진 중앙분리대를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옷의 지퍼를 채우는 걸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필요 따라 분리대 움직이는 '로드 지퍼'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에 따르면 로드 지퍼는 미국에서 많이 활용 중인데요. 막대한 사업비나 여유 부지 부족 등으로 인해 차로 확장이 어려운 지역의 도로나 교량에서 출퇴근 시간대에 많이 쓰입니다. 또 여러 명이 탑승한 차량만 다닐 수 있는 'HOV(High-Occupancy Vehicle) 차로' 운영에도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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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편도 3차선, 왕복 6차선인 도로에서 출근 시간 때 동쪽 방향에, 반대로 퇴근 시간대에는 서쪽 방향에 차량이 몰려 정체가 빚어질 경우 이동식 중앙분리대의 위치를 옮겨 차량이 집중되는 방향에 차로 하나를 더 만들어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차로가 하나 더 열리면 차량 정체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텐데요. 이미 중앙분리대가 고정된 도로에서는 이동식 중앙분리대를 길 한편에 놓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임시로 설치하고, 다시 치워두는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이동식 중앙분리대, 시속 80㎞ 충돌 거뜬


그런데 이렇게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중앙분리대라면 유사시 차량 충돌 등에 취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중량 1300㎏짜리 차량이 시속 80㎞로 달리면서 이동식 중앙분리대에 부딪히는 실험을 했더니 분리대가 약간 움직일 뿐 별 손상이 없는 거로 확인됐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로드 지퍼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대광위에서 추진하는 첨단급행버스시스템인 'BTX(Bus Transit eXpress)'에 활용하기 위해서인데요.


BTX는 전용차로를 통해 신속하게 승객을 운송한다는 측면에서는 간선급행버스체계(BRT)와 유사하지만, 목적지가 도심 내 주요 지역이 아닌 전철역 등 환승센터라는 점이 다릅니다.


남양주나 구리 등 경기도 동부권을 예로 들면 BTX가 서울 도심이나 강남까지 가지 않고 서울지하철 2호선 강변역까지만 운행하고, 승객들은 이곳에서 목적지까지 다시 지하철로 환승하는 방식입니다.



대광위, 로드 지퍼 활용 'BTX' 추진 중


여기서 관건은 강변역까지 어떻게 빠르게 이동하느냐인데요. 이미 출근 시간대에는 서울로 향하는 강변도로와 인근 도로가 모두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반면 경기도로 가는 방향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게 대광위 설명입니다.


이때 로드 지퍼 같은 장치가 있다면 경기도 방향의 강변북로 중 한 차로를 BTX 전용차로로 만들어 달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출근 시간에만 BTX 전용차로를 임시로 만들어 남양주 수석IC에서 강변북로를 거쳐 강변역까지 달리면 버스 통행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수 있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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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위는 현재 수석 IC~강변북로~강변역 구간(동부권)과 개화 IC~올림픽대로~당산역 구간(서부권) 등 2곳에 BTX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올림픽대로 역시 강변북로처럼 상대적으로 차량이 덜 몰리는 반대방향의 차로 하나를 BTX 전용으로 쓰겠다는 구상입니다.



비싼 차량 가격, 교통체증 해소가 숙제


계획대로만 실현된다면 경기 동부권이나 서부권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사업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로드 지퍼는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차량 가격만 40억원쯤 됩니다. 이동식 중앙분리대 가격은 설치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동부권은 8.6㎞ 구간에 약 280억원으로 추정됩니다. 연장이 10㎞로 더 긴 서부권 BTX에는 495억원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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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X가 전용구간을 달린 뒤 환승센터로 진입할 때 차로를 여러 번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 체증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숙제입니다. 자칫 자가용 운전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서울시가 BTX 계획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현재 대광위의 의뢰로 한국교통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여러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고, 서울시 등 관련 기관을 설득해 낸다면 머지않은 시점에 국내에서도 로드 지퍼의 활약상을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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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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