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BTS 힐링 성지'…오성한옥마을, 발도장 찍어볼까

[여행]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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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소양면 오성한옥마을은 조용히 은둔하기에도, 차 한잔 기울이며 쉬어가기에도 그만인 장소다. 마을 꼭대기의 아원고택은 방탄소년단도 발 도장을 찍고 간 명소다.

코로나 시대 명절 연휴는 모두에게 난감한 문제다. 아무래도 도시의 왁자한 명소는 피하고 싶다. 하여 전북 완주군 소양면 오성한옥마을에 갔다. 한옥 대청마루에 납작 누워 가을바람을 맞고 돌아왔다. 세속을 떠나 조용히 은둔하기에도, 돌담 따라 걷다가 차 한잔 기울이며 쉬어가기에도 그만이어서다. 마침 방탄소년단이 발 도장을 찍고 간 명소도 마을 안팎에 널려 있었다.

뿌리 깊은 종갓집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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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고택 안채에서 본 창밖의 풍경. 한옥의 창과 문은 가장 훌륭한 액자다.

우리네 한옥이 지닌 매력은 역시나 탁월한 해방감과 안정감이다. 큼지막한 창과 대청마루가 자연을 끌어안듯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다. 세속의 소음은 잦아들고, 새 울고 바람 들고나는 소리만 남는다. 깊숙한 산골짜기에 둥지를 튼 한옥이라면 그 위력이 더 강하다.


오성한옥마을은 그런 절묘한 환경에 뿌리내렸다.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종남산(608m), 위봉산(557m), 학동산(465m), 원등산(714m) 등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쪽에 24채 기와집이 비탈을 따라 들어앉아 있다. 저마다 너른 마당과 아름드리 소나무 하나씩 끼고 있는 걸출한 한옥이다. 마을 안쪽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빽빽한 편백숲과 대숲이 외곽을 감싼다. 그윽한 풍경이다.


의외로 마을의 역사는 길지 않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오성한옥마을은 마을회관도 없는 산골이었다. 100년 200년을 헤아리는 고택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2013년 완주군의 한옥 지원 사업 이후 들어선 신축 한옥이다. 오성한옥마을엔 아궁이에 장작 때는 집보다 기름보일러를 둔 한옥이 더 많다.


명망 높은 종택 하나 없어도 여행자 입장에선 장점이 퍽 많다. 한옥 24채 대부분이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손님을 받고 있고, 정갈한 차림의 갤러리와 찻집이 곳곳에 자리한다. 엄숙한 분위기의 전통마을과 달리 여유와 낭만이 흐른다. 마을 어르신의 헛기침 소리보다 젊은 여행자의 웃음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느릿느릿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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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고택 옆에 자리한 플리커. 오성한옥마을을 거닐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한옥 서점이자 카페다.

마을은 작다. 하나 둘러보는 데는 시간이 제법 든다. 처마부터 디딤돌까지 뜯어보는 재미가 크다. 돌담을 활보하는 고양이까지 눈앞에 어른거려 기어코 여행자를 눌러앉게 한다.


마을 주민이기도 한 장택주(61) 전남대 한옥건축과 교수 역시 “구석구석 밟고 다녀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주민이 많아 집마다 멋과 개성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소양고택’은 자수가 어머니와 바리스타 딸이 꾸린 집이다. 어머니가 수놓은 꽃과 들풀이 이부자리와 방석, 고무신 따위의 소품마다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 180년 된 고택 옆으로 근사한 카페와 한옥 서점을 끼고 있다.


공예에 능한 부부가 사는 ‘산수촌’ 마당에는 오밀조밀하게 빚은 토우(흙으로 만든 사람‧동물 상) 작품이 늘어서 있다. 자매 동양화가가 사는 ‘녹운재’에는 직접 그려 만든 한지 등불이 분위기를 잡는다. 장 교수의 ‘소담원’은 집 뒤편의 계곡과 숲을 정원처럼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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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원고택은 250년 된 고택을 활용한 한옥 스테이 공간이자, 미술관이다. 방탄소년단이 화보를 찍고 간 뒤 젊은 방문객이 크게 늘고 있다.

이곳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아원고택’도 빠질 수 없다. 건축가 출신 전해갑(66) 대표가 경남 진주에 있던 250년 고택을 2006년 이축해 미술관 겸 한옥 스테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택을 복원하고 단장해, 손님을 받는 데까지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덕에 방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도 풍경이 훤히 보인다. 전 대표 말마따나 한옥의 창은 하나의 액자가 되고 풍경화가 된다.


대청마루 앞에 배치한 네모반듯한 연못도 절묘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잔잔한 물 위로 종남산도 잠기고, 고택도 기운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지만, 나머지 시간은 투숙객에게만 열려 있다. 구수한 누룽지 밥에 삶은 달걀과 계절 반찬을 곁들이는 조식 상차림도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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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원고택의 조식 상차림. 누룽지 끓인 밥에 삶은 달걀, 갖은 반찬이 올라온다.

내친김에 방탄 성지 순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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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성의 아치형 석문 위에서 방탄소년단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요즘 아원고택은 ‘방탄 투어 성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방탄소년단의 ‘2019 썸머패키지’ 화보에 등장한 뒤 전 세계 아미가 열광하는 명소로 거듭났다. 코로나 이전에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방탄소년단이 앉았던 사랑채 툇마루는 아직도 주말이면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방탄소년단이 발 도장을 찍고 장소는 더 있다. 내친김에 방탄 성지 순례도 해볼 만하다. 완주군이 방탄소년단 화보 촬영지마다 ‘완주 BTS 힐링 성지’라는 안내판을 세워두었다. 아원고택에서 위봉산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봉산성이 나온다.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쌓은 16㎞ 길이의 성벽으로, 대부분이 소실되고 지금은 서문의 일부가 남아있다. 3m 높이의 이 아치형 석문 위에서 방탄소년단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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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화보를 찍은 오성제 둑 위의 소나무는 일명 '방탄 소나무'로 불린다.

마을 저수지 오성제에는 이른바 ‘방탄 소나무’가 있다. 뚝방 위에 키가 5m 되는 소나무가 홀로 서 있는데, 이 나무 옆에서 방탄소년단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저수지 건너편에 한복·전통놀이 체험이 가능한 한옥문화센터가 있다. 한복(2시간 2만원)을 빌려 입고 방탄 순례에 나서는 이색 체험도 가능하다.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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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제 옆 한옥문화센터에서 한복을 빌릴 수 있다.

오성제 옆에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한옥문화센터가 있다. 마을 안내소이자, 찻집으로 한복·전통놀이(투호‧널뛰기‧제기차기) 체험이 가능하다. 무료 마을 해설도 진행한다. 건물 뒤편 숲속에 쉼터 노릇을 하는 텐트 9동과 무인 도서관이 설치돼 있다. 아원고택이나 소양고택 같은 한옥은 최소 한두 달 전에 예약해야 숙박이 가능하다. 음식 반입이 어려운 한옥이 더러 있으므로 미리 문의하는 게 이롭다.

완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2021.09.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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