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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늘 쪄먹기만 했쥬? 백종원도 갸우뚱한 '꽃게구이' 그 맛은

by중앙일보

‘백종원의 사계 MDI’ 가을 세 번째… 구워먹는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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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사계'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에는 진화와 적응에 대한 설명 끝에 일본 남쪽 해역에 사는 헤이케 게(平家蟹)라는 종류의 게 이야기가 나온다. 이 게의 등딱지에는 사람의 성난 얼굴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오래 전 이 해역에서 있었던 헤이케(平家)와 겐지(原氏) 가문의 전쟁 때 패배한 사무라이들의 원혼이 깃들어 그런 무늬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때문에 헤이케 게는 사람들이 먹지 않는 게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번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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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케게. 인터넷 캡처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렇게 생긴 게가 있다는 것 보다, 오죽 인간들이 게 종류를 좋아했으면 이런 것이 다 얘깃거리가 될까 하는 데 있다. 그 게 좋아하는 인간들이 먹지 않을 정도면 어지간한 사연으로는 안 된다는 것 아닌가. 물론 한국에는 저렇게 희한하게 생긴 게가 없기 때문에, 동해 서해 남해 할 것 없이 홍게든 대게든 돌게든 잡히는 족족 밥상에 오른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얘깃거리는 가을바람이 불 때 먹는 서해안의 꽃게다.


꽃게를 좋아하시는 한국인들에게 신이 내린 축복은 꽃게 철이 1년에 두 번 온다는 사실이다. 봄철은 알이 찬 암꽃게를 먹는 철이고, 가을은 추운 겨울을 앞두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수꽃게를 먹는 철이다. 간혹 가을에 시장에서 암꽃게를 샀는데 알도 있고 속살도 꽉 차 있던데 그럼 그건 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다. 뭐긴 뭐겠나. 냉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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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물론 냉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1년 내내 빨간 알(정확하게 말하면 난소)이 들어 있는 간장게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냉동 기술의 발달 덕이고, 목포의 별미로 치는 양념게살무침 역시 냉동 게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생물 게에서는 그렇게 찰기 있는 게 속살을 뺄 수가 없다. 제철에 잡아 급랭 기술로 얼린 게는 게장이나 꽃게탕 재료로 그만이다.


그럼 왜 제철 생물을 먹어야 하나.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가격이 연중 가장 저렴하고, 살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양념 없이 먹기에는 제철이 최고다. 새우도, 랍스터도, 기타 바닷속에 사는 갑각류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수증기로 쪄냈을 때 살 자체에서 나오는 달달한 맛이 지금껏 인류를 광기 어린 갑각류 도살자로 만들어왔다. 가장 간편하고 온전하게 제철 꽃게 맛을 즐기는 방법은 찜기에 넣고 찌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아는 꽃게찜을 하는 건 ‘백종원의 사계’에서 할 일이 아닌 것. 그래서 새롭게 도전해 보기로 했다. 꽃게구이.


꽃게를 구워 먹는다는 말에는 많은 사람들, 특히 꽃게 전문 식당을 경영하시는 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꽃게를 구워 먹는 풍습은 부산 쪽의 몇몇 포장마차나 이자카야에서 볼 수 있지만, 전국적으로 유행한 적은 없다.


백종원 대표도 몇 차례씩 확인차 제작진에게 물었다. “부산에서 구워 먹는다고? 정말? 나 이거 때문에 망신당하는 거 아니지?” 하지만 화력을 약불로 조절하고 20분. 꽃게 표면이 그슬리기 시작하면서 슬슬 탄화된 단백질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여 온다.


엄밀히 말하면 꽃게를 굽는 과정은 다리와 몸통에서 각각 다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단 몸통은 꽃게찜에서도 볼 수 있듯 꽤 많은 수분을 품고 있다. 여기에 열을 가하면 내장이 녹으면서 물이 고이고, 그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수증기가 속살을 찐다. 즉 게 몸통의 국물이 다 증발하도록 열을 가한다 해도, 사실은 찜통에 넣고 찌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 셈이다. 물론 수분을 날려 버릴 때까지 꽤 시간을 두고 구우면 약간 단단하면서 탄화향이 나는 맛있는 꽃게 몸통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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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사계'.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에선 두 가지 시도를 했다. 굽기 전에 게 껍질을 뜯고 게장에 마요네즈를 투입해 구워 봤는데 이 또한 색다른 맛을 제공한다. 게장의 농염한 맛이 마요네즈와 반응하면서 바다 내음이 나는 소스로 바뀐다. 이 소스에 게살을 찍어 먹으면…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 맛이다. 그냥 구운 게살과 마요네즈를 넣고 구운 게살,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서 드셔도 좋을 것 같다. 단 구워지는 데 시간이 꽤 걸리니 그사이, 석쇠 가장자리에서 새우 몇 마리를 같이 구워 까 드시면서 기다리기를 권장한다. 맥주? 당연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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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사계' 인터넷 캡처

그리고 주의사항. 게 몸통살이 바삭해질 때까지 구우려면 껍질이 얇은 다리가 먼저 익는다. 따라서 바삭한 몸통살을 기대하신다면 다리는 먼저 떼 먹는 게 좋다. 수분이 날아가면서 바삭해진 게 다리 살 맛 역시 일품인데, 꽃게의 경우에는 다리 살이 그리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 진정한 게 다리 구이의 맛은 대게나 킹크랩을 구울 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두시길. 정리하면 꽃게는 구워 먹어도 맛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고, 수분이 빠져나가 포만감이 덜하다는 약점이 있는데,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시도해 보실만한 맛인 것은 분명하다.


게구이를 먹었으면 차가운 날씨에는 꽃게탕이 제격. 다른 재료 필요 없다. 국물의 베이스는 고추장이 아닌 된장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호박이나 단호박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특히 경기-충남식 꽃게탕은 단호박이 국물에 녹아들며 더욱 농후해지는 국물 맛이 그만이다. 빨리 꽃게를 건져 쪽쪽 빨아먹고 남은 국물에 라면 사리까지 먹어치워야 한다. 태안 서산 홍성 등지의 서해안 꽃게 산지에서는 근래 게국지도 유행이지만, 요즘 식당에서 파는 게국지는 실제 그 지역 사람들이 먹던 게국지와는 좀 다르고, 배추가 들어간 꽃게탕에 가깝다고들 한다. 그러니 굳이 게국지를 드실 필요 없이, 꽃게탕을 드셔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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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사계' 서해안의 독특한 양념게장 무젓. 인터넷 캡처

아울러 충남 해안의 꽃게 산지에 가면 넌지시 물어볼 말이 하나 있다. “혹시 무젓 먹을 수 있나요?” 무젓은 충남식 양념게장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갈빗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양념게장에 비해 국물이 많고, 양파와 생강, 배 등이 들어간 풍미가 일반 양념게장과는 확실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홍성 지역에서 무젓이라고 부르고 같은 충남이라도 보령 서산 쪽에서는 그이젓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뭐라 부르건 그 국물에 밥을 한번 비벼 먹어 보면 평생 못 잊을 맛이다. 그래서 가을 한 철, 제철 꽃게를 제대로 맛보려면 서해안으로 달려가야 한다.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송원섭 JTBC 부국장 song.weonseop@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