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쌀을 16억 매출 브랜드로 만든 아들

[비즈]by 전성기

이은민 대표는 5대째 농사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그의 DNA에는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농부의 근성이 있다. 7년 전 운명처럼 고향으로 귀농해 가업을 잇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패밀리 브랜드 열전

여기 부모의 1라운드를 이어받아 가족의 2라운드로 만든 자식들이 있다. 이들의 브랜딩 스토리를 소개한다.


1편 엄마의 사과에 이야기를 더하다, 선암리 농부들

2편 아버지의 꿀에 디자인을 입히다, 꿀건달

3편 아버지의 쌀을 브랜딩하다, 솔직한 농부

농부의 아들. 농산물 브랜드 ‘솔직한 농부’ 이은민 대표의 가장 든든한 밑천은 바로 이 수식어였다. 두 어절의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미술교사, 디자이너, 마케팅 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농부의 아들’로 나고 자라며 터득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다른 영역인 농부와 디자인·마케팅 일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었을까?

미술교사, 디자이너, 마케터… 농부가 되다

이은민 대표의 DNA에는 농부의 근성이 있었다. 그는 5대째 전라남도 제일의 곡창지대 나주에서 농사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사를 지었다고 확인된 조상만 5대”라고 하는 걸 보면 아마 그 역사는 더 오래됐을 것이다. 그런 그가 본업을 접고 귀농한 것은 운명에 가까웠다. 이 대표는 7년 전, 스물일곱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농사는 나중에 해도 좋으니 몇 년 더 일하다가 내려오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때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죠. 언젠가는 귀농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회사 생활이 저와 안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경쟁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거든요. 물론 시골에서도 경쟁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도 있지만요(웃음).”

농업을 이어주길 바라면서도 농업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길 바랐던 아버지 이창호 씨. 아들의 갑작스러운 귀농 선언에 우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믿음이 더 컸다고 말한다.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놨는데 형편없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걸 보고 아들이 판매에 나서보고 싶다더군요. 농사일은 자신감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어요. 아들은 시골 출신이고 배포도 있으니 믿음이 있었죠.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 아들이 오면 활기를 띠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요.”


이 대표가 핑크빛 미래만을 꿈꾸며 귀농한 것은 아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입장에서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고, 얼마간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을 것도 각오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귀농 이래 한 번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지 않았다. 첫 달부터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농산물 브랜딩, 본질을 생각하다

이은민 대표가 고향에 돌아와 시작한 일은 농산물 브랜딩이었다. 1년 공들여 농사를 지어도 마땅한 판로가 없어 헐값에 넘겨야 하는 현실에서 농산물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만든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브랜딩과 마케팅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솔직한 농부’다. 


“농부가 어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봤어요. 당시 친환경·유기농 바람과 청년 농부들이 주목받고 있었는데, 그보다는 본질을 생각했죠. 어릴 때부터 들었던 ‘너는 솔직해서 좋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솔직한 농부’로 결정했어요.”


디자인과 마케팅을 했던 경험이 솔직한 농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블로그를 통해 직접 농사를 짓고, 브랜드를 출시하고, 패키지를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을 공개하며 지지층을 넓혀갔다. 2만5000명의 인스타 팔로워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고객 덕택에 투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연 매출 16억(2019년 기준)을 기록했다.

게다가 매출이 나날이 늘어 “매출을 기억한 지 오래됐다”고 말할 정도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감대를 공유하는 기법은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며 터득한 능력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디자이너 출신 농부’가 오히려 디자인에서는 힘을 뺐다는 것이다.


“농업에 충실하려다 보니 처음엔 쌀을 마대에 담아 판매했어요. 포장에 들어가는 돈을 아껴서 그만큼 저렴하게 판매하려고 했죠. 그런데 유통을 원활히 하려면 박스가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30분 만에 지금의 패키지 디자인을 만들었죠. 솔직한 농부, 쌀 순백의 느낌을 살렸어요.”


솔직한 농부 스토어의 제품 상세 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예쁘고 화려하게 포장하기보다는 내용물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직접 구매한 사람들의 리뷰를 최대한 활용한다. 또한 농사에서도 효율을 생각했다. 최대한 좋은 기계로 최고의 효율을 내도록 했고, 논 지적도를 보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했으며, 적당한 포장 기계를 찾아 계량하기 위해 바가지만 수십 종류를 샀다. 3년 전부터는 드론을 사용해 효율을 높이고 있다. 

내 일 네 일 나누지 않는 게 비결

대개 부자가 함께 일하면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아 의견 충돌이 생기기 쉽다. 그런데 이들 부자는 함께 일하는 데 장점만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생산을, 아들은 판매를 맡아 일이 겹치지 않기 때문. 그 대신 각자의 일이 바쁠 때는 언제든 내 일처럼 돕는 게 비결이다.


“대부분 부자가 함께 일하면 수익 배분이 잘 안 돼서 다툼이 일어나더군요. 그런데 저희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어요. 애초에 제가 부모님을 도와드리려고 내려온 거고,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져서 부모님 일이 많아졌으니 오히려 죄송하죠. 대개 판매 일은 오전에 일찍 끝내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돕곤 해요. 인건비를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제가 부모님께 돈을 벌어드렸다고 생각하죠. 그 대신 제 일을 할 때 아버지의 지게차나 트럭을 빌리니 공생관계인 셈이에요.”

아버지 이창호 씨도 마찬가지다.


“아들과 함께 별문제 없이 일하는 비결은 각자 책임지는 분야가 따로 있지만 서로 도우며 최선을 다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아들은 자기 일이 아무리 바빠도 제가 도와달라고 하면 (논으로) 나와요. 막둥이로 태어났지만 참 기특해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죠. 앞으로 제 아들처럼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자신의 장점을 농촌 일에 접목해 발전시키면 좋겠어요.”


기획 이채영 두경아 사진 이근수(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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