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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미성년자 성착취물’ 중독됐던 치과 의사…맞춤형 영상 의뢰까지

byK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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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유명 치과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유명 걸그룹 등 가수와 배우들이 대거 방문하면서 소위 '잘나가던' 병원이었는데, 원장이 갑자기 병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것입니다. 강남구 치과의사회장을 역임하고 여러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는 등 화려했던 30년 가량의 경력을 뒤로한 채, 아예 치과의사라는 직업마저 그만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어제(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 재판에서 그 구체적인 사정이 드러났습니다. 전 치과의사 A 씨. 그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같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음란물제작·배포등)등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 찍고 받아보고 보관하고...


A 씨가 받는 혐의는 다양하지만, 모두 미성년자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성적 착취와 관련돼 있습니다.


A 씨는 2016년 여름,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였던 'AV스눕'에서 만난 지인 B 씨에게 미성년자 여성 2명을 소개 받았습니다. A 씨는 이들을 모텔로 끌고 가 성관계를 했고, 그 과정을 촬영한 혐의도 받습니다. 피해자에게는 특정 성행위를 하거나, 교복을 입으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모바일 채팅 앱에서 또 다른 중학생 피해자를 만나 25만 원을 주겠다며 성관계를 하고, 전동기구 등을 이용해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도 받습니다. 지인 B 씨가 미성년자 여성들을 만나 성관계하면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여러 개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B 씨에게 반년 사이 모두 천여만 원을 줬는데, 검찰은 이 돈이 성착취물 제작과 같은 목적으로 건네진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A 씨는 여기저기서 수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성년자의 성적인 사진·동영상 128건을 외장하드에 넣어 소지한 혐의로도 기소됐습니다.


A 씨는 피해자들과 성관계를 한 사실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은 사실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은 A 씨가 한 여러 행위가 법리적으로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 행위에 해당되는지는 의문이라고도 밝혔습니다. B 씨에게 돈을 준 것도 생활비였을 뿐, 성착취물 제작에 필요한 비용으로 제공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A 씨는 다만 외장하드에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소지한 혐의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 "피보다 진한 형제 사이"


어제 열린 A 씨의 재판에는, A 씨에게 미성년자를 소개시켜주거나 성착취물을 다수 보내줬던 B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미성년자 성착취물 제작 등 혐의로 현재 실형을 살고 있는 B 씨는, 약 10년 전부터 여러 여성들과 만나 촬영한 성관계 사진, 동영상을 자신의 외장하드 등에 보관해왔다고 합니다. 2016년부터는 미성년자를 만나 비슷한 촬영물을 찍었습니다. 그가 A 씨를 만난 건 이 무렵이었습니다.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AV스눕'에 B 씨가 올린 글을 보고, 2016년 여름 A 씨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B 씨는 "친분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보관해둔 성착취물을 A 씨에게 건넸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모습도 등장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자이크를 해서 줬다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감해졌습니다. "나는 유명한 사람이고 신분도 명확한 사람이다" "나를 믿고 영상을 달라"는 A 씨의 말에 "하나씩 주다보니 그 후에는 안줄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고도 했는데, 유명한 치과 의사인 A 씨의 지위가 상당한 신뢰감을 줬던 것으로 보입니다.


B 씨는 당일 만난 여성을 촬영한 영상을 1대 1 공유 프로그램으로 A 씨에게 보내주는가 하면, 자신의 집에 찾아온 A 씨에게 촬영물이 저장된 하드를 그대로 복제해주기도 했습니다. A 씨는 "옷 벗는 장면부터 찍어보라" "속옷을 벗기면 속옷만 따로 촬영해달라"는 등, '맞춤형' 성착취물 제작을 B 씨에게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모텔비로 써라" "기름값 해라"는 말과 함께 돈을 건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둘의 괴상한 공생관계는 최소한 2017년 초 B 씨가 구속될 때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B 씨는 "A 씨가 어디다 (나를) 소개를 하면 '피보다 진한 형제 사이'라고 많이 이야기했다"며 "저도 저만 혼자 갖고 있었던 은밀한 취미 같은 걸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 공개 재판서 현출된 '그때 그 사진들'


그런데, 어제 재판에서는 증언 내용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A 씨가 만났던 미성년자 피해자들의 사진이 일반에 공개된 법정에서 그대로 노출된 것입니다. 방청석에는 기자와 또 다른 시민 1명이 앉아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검사는 증인에게 "혹시 이 사람이 증인이 소개시켜준 이○○(가명)이 맞습니까?" "여기 사진에 있는 사람이 추○○(가명) 맞습니까?"라고 물으며 피해자 3명의 얼굴 사진을 모두 제시했습니다. 검사와 변호인은 "이 사진 기억나냐" "이 사진은 증인이 촬영한 건가요?"라며 피해자들의 얼굴과 신체, 심지어 특정 신체부위가 크게 촬영된 사진까지, 길게는 10초 동안 실물화상기를 통해 스크린에 띄우기도 했습니다.


비공개 재판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살펴져야 하는 증거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개 재판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얼굴과 신체, 성행위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 성폭력 피해자 국선전담 변호사는 "재판 절차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2차 피해에 해당한다"며 "피해자 변호사가 (재판에) 있었다면 증거조사 절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또 "공판검사가 (이같은 상황을) 지적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재판에서 검사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대표해 피해자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재판에서 검사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법정에 현출하는 등 상황을 먼저 주도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변호해온 이은의 변호사는 "이런 경우는 (재판부가) 재판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며 ▲방청객들을 법정에서 나가도록 하는 방법(비공개 심리로 전환) ▲검사와 변호인이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지 않고 "증거기록 몇 번 제시하겠다"며 재판부에 먼저 보여준 뒤, 증인에게만 사진을 보여주도록 하는 방법 ▲방청석을 등진 위치에 설치된 스크린을 활용해, 사진이 방청석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재판부는 최근 KBS가 보도했던 해외 유학 고교생의 유사 n번방 사건을 비롯해 여러 아동·청소년 성착취 관련 사건 재판을 맡고 있습니다.


김채린 기자 (dig@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