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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살려고 찾아갔지만…” 택배트럭 남기고 ‘극단 선택’ 배경은

by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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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경기도 한 원룸에서 30대 여성 서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외부침입 흔적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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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과 함께 발견된, 고인이 억울한 사연을 적은 종이다

"차 가져가 주세요. 처음으로 돌려놔 주세요"...빼곡히 적힌 억울함

고인과 함께 몇 장의 종이가 발견됐습니다. "2월 초 서울 한 운송업체에서 택배 일자리를 약속받고 대출로 중고 택배 트럭을 구매했는데 막상 소개받은 일자리는 약속과 달라 일을 하지 못했다.", "트럭값 1,600만 원의 빚만 떠안게 돼 억울하다."라는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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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과 함께 발견된 종이에 고인이 적어둔 내용이다

서 씨의 언니는 "다시는 취업을 하려는 사람들,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일이 좀 안 생겼으면 좋겠다. 살려고 하는 일인데 죽음으로 오면 안 되지 않느냐"라며 동생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트럭 판매한 업체 찾아가 보니…업체 측과 계약 담당자 서로 말 달라 '네 탓 공방'

왜 말이 달라졌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서 씨에게 트럭을 판매한 운송업체에 찾아가 물었습니다.


성동구에 있는 이 업체 관계자 김 모 씨는 "(계약이)계약 담당자와 서 씨 사이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문제가 생긴 걸 알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해결이 어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럭 계약할 때 설명했던 것과 서 씨가 소개받은 일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몇 달 전 퇴사한 당시 계약 담당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퇴사한 계약 담당자에게 묻자 김 씨는 "채용담당자로서 회사에서 전달받은 대로 채용(계약)을 진행했을 뿐"이라며 "나중에 서 씨 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셈인데, 이미 세상을 떠난 서 씨의 억울함은 풀기 어려워 보입니다.


서 씨가 택배 일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 구매했던 트럭은 서 씨 원룸 근처 공터에 석 달째 방치돼 있습니다. 트럭 안에는 서 씨가 면접을 갔던 2월 7일 자 영수증이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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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택배 일을 하기 위해 구매했던 트럭은 석 달째 방치돼 있다

1,894명에 118억 챙긴 택배사기 사건 이미 재판 중

택배로 돈을 벌기 위해 트럭을 샀다가 빚만 떠안게 된 피해자는 서 씨만이 아닙니다.


KBS는 지난 4월 한 운송업체 대표가 약 1,900명에게 택배취업 알선을 빌미로 트럭값을 부풀려 팔아 돈을 챙기고 일자리 소개 약속은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택배취업 알선’ 빌미로 트럭값 부풀려…피해자 1,900명


사건 공소장을 입수해보니 구속된 이 모 'ㅇㅇ물류' 대표는 무려 14개 운송업체를 운영해 2018년부터 2년간 1,894명에게 택배취업 알선을 빌미로 트럭을 비싸게 팔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소개해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수사 결과 이 대표가 비싸게 트럭을 팔며 챙긴 돈만 118억 원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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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씨에게 트럭 판매한 업체 이사 김 씨…118억 택배사기 공범으로 재판 중

검찰은 ㅇㅇ물류 이 대표와 함께 일했던 직원 3명도 공범으로 불구속기소 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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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3명 중 1명인 김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 씨에게 트럭을 판매한 업체의 등기이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택배 트럭을 팔아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는 상황에서도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 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셈입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앞서 설명해 드린 해명대로 "고인의 일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재판을 받게 돼 이사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끊이지 않는 택배사기…불어나는 피해자

지난달 ㅇㅇ물류 대표가 구속됐다는 보도 후에도 KBS 취재진에는 택배사기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쇄도했습니다.


ㅇㅇ물류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도 있었지만, 서 씨처럼 검찰 수사를 받지 않은 다른 업체에서 비슷한 피해를 보았다는 제보가 더 많았습니다.


제보자들은 대부분 택배 일자리를 얻기 위해 면접을 보고 대출로 트럭을 구매했지만, 면접 당시 약속받았던 일자리를 얻지는 못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제보자가 피해를 호소한 업체 중 한 곳은 구속된 이 모 대표와 함께 불구속기소 된 또 다른 피고인 서 모 씨가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씨와 함께 불구속기소 된 3명 중 2명이 재판을 받는 도중에 비슷한 일을 하는 업체 이사로 트럭을 팔고 있는 셈입니다.


이 대표가 구속된 사건의 피해자 대리인인 오세정 변호사(법무법인 신효)는 "택배기사 모집업체가 자신의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악용해 트럭 판매대금을 가로채는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피해 방지를 위해 계약 당시 광고된 근무조건과 업체 측 책임이 계약서에 잘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취업난이 심해질 수 있어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 검찰의 추가 수사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재우 기자 (jjw@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