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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밤 9시, 외교부에 전 세계 186명이 모인 까닭은?

by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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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 전면에 걸려 있는 대형 화면. 얼핏 봐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린 모자이크 벽화 같기도 하고 조각보를 이어붙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외교부 장관과 직원들이 모여 바라보고 있는 저 화면은 대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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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어젯밤 9시 재외공관장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재외 공관장 회의는 매년 3월 서울에서 정례적으로 열려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연기돼왔고, 그러다 최근 활성화된 화상 회의 방법을 활용해 개최한 것입니다. 서울 외교부 청사에는 장관과 1, 2차관, 그리고 모든 실·국장들이 모였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대사와 총영사, 분관장과 출장소장 등 모든 재외공관장 186명은 현지에서 화상으로 연결됐습니다. 외교부 역사상 공관장 회의가 이렇게 개최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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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참가한다는 의미로 참가자 전원의 얼굴이 한 화면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참가 인원이 많다 보니 각각의 화면이 너무 작아져 참가자 얼굴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당 얼굴의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가 흰색 글씨로 적혀 있지만 역시 너무 작아 읽기는 힘들었습니다. 강경화 장관도 모두 발언 당시 "한 분 한 분 얼굴 모습을 보려고 눈을 열심히 뜨고 있습니다만 화면이 너무 많아서 어느 화면에 어느 분이 계신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웃을 정도였습니다.


회의가 밤 9시에 시작된 것도 입길에 올랐습니다. 각 공관장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보니 시차가 다양해 가장 피해가 덜 가는 시간을 정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주미 대사관이 있는 워싱턴과 한국 본부 사이에 적정한 시각을 타협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서울 낮 시간에 회의를 한다면 워싱턴은 한밤중이어서 곤란하고, 그렇다고 워싱턴 기준에 맞출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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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인지 최대 수혜자는 유럽 공관들이 됐습니다. 화상 회의가 개최된 시각인 밤 9시는 유럽 기준으로는 대낮, 업무 시간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최대 피해자는 미국 서부 지역과 하와이 등 태평양 지역 공관이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새벽 아니면 한밤중에 공관장뿐 아니라 공관 직원들까지 비상을 걸고 회의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회의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재외 동포 보호 방안과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길지 않고 참석자들이 너무 많다 보니 한마디 발언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화면에 얼굴만 등장하고 회의 끝날 때까지 앉아만 있던 공관장이 상당수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 학창시절 운동장에 학생 모아 놓고 하던 조회가 온라인으로 바뀐 모습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그런 조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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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화상 회의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굳이 186명을 모두 한자리에, 동시에 모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저 모자이크 같은 대형 화면은 의문들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최영윤 기자 (freeyaw@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