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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정리뉴스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연애 풍속도’

by경향신문

17년 전 경향신문 기사 메인 이미지를 갈무리한 트윗이 최근 호응을 얻었습니다. 리트윗이 2000회에 달할 정도로 인기입니다. 경향신문 섹션 ‘매거진X’의 ‘1995년에 상상해 본 2015년의 연애 풍속도’란 제목의 기사입니다. 2015년 스무살이 된 ‘장한남’과 ‘고은비’를 주인공으로 풀어낸 미래 이야기죠. 향이네는 상상의 2015년과 실제의 2015년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를 다시 소개합니다. 

1대1만남은 축복···20년 전 예측한 ‘2015년 연애 풍속도’ 

경향신문 섹션페이지 ‘매거진X’에 연재된 20년 후 미래의 사람들 시리즈 2회 주제는 ‘이성교제’ 입니다. 1995년 6월29일 실린 이 기사에선 장한남과 1회 주인공인 고은비의 연애를 통해 젊은이들의 연애 풍속도를 그립니다. 2회에선 ‘성비 불균형’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가져올 변화상을 예견했는데요. 당시의 예측이 놓친 부분들을 살펴보면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1대1만남 그것은 축복

 

2회 주인공은 ‘대단한 행운아’ 장한남입니다. 제목은 “‘남아선호’에 깨진 성비 1대1만남 그것은 축복”. 장한남은 여자친구 고은비와 달리 대학진학 대신 디자인스쿨을 선택했군요. 전공은 교각디자인입니다. 취미는 미술전시회 관람과 고궁산책입니다.

 

기사에서 추정한 2015년 연애 풍경의 근거는 ‘남아선호’ 붕괴와 ‘한자녀 낳기’ 일반화로 무너진 성비입니다. 기사에서는 “한남군 또래는 자라면서 줄곧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성적이 나쁘거나 지각을 하면 남자친구들끼리 짝지어 앉는 벌을 받아야 했고, 서클활동에선 여자친구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여학생들은 항상 여러명의 남자친구와 동시에 사귀는데 익숙하며, 남학생들은 여학생의 호감을 사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편이었다고 하네요.

 

→ ‘딸바보 아빠’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만큼 ‘남아선호’나 ‘남존여비’는 구시대적 생각이 됐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도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였습니다. 1992년 방영된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은 역대 드라마 평균 시청률 2위(49.1%)를 기록한 히트작입니다.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뿌리내린 집안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귀남(최수종)과 후남(김희애)이 가족과 사회의 가치관과 대립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드라마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극중에서 어머니(정혜선)가 일삼는 말도 안되는 차별에 고통받는 후남을 보면서 분통 터뜨렸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1994년 여름에는 납량특집 드라마 <M>이 방영됐습니다. 당시 초록눈을 희번득거리는 심은하씨의 모습을 보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는데요. 이 드라마 주제는 낙태의 비윤리성 고발이었습니다. 1980~1990년대 한국 사회에선 임신 초기 태아의 성(性)을 확인한 뒤 여아를 낙태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M>은 인상적인 에필로그로 마무리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나라 곳곳에서는 임신중절수술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수천 수만의 태아가 햇빛도 보기전에 차디찬 수술도구에 의해 부서지고 찢겨진채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무덤도 없습니다. 그들에겐 죽음을 슬퍼해주는 부모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생명이 시작되는 생명체를 아무런 가책없이 살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1990년대 남아선호 세태를 볼 수 있는 뉴스도 많습니다. 한 기사를 볼까요. “98년 범띠해를 앞두고 여아출산을 피하려는 부부들이 늘고 있어 병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는 10월 결혼을 앞둔 회사원 박모씨(28·서울 중랑구 신내동)는 최근 처가에서 「이상한 각서」를 써야했다. 내용은 「98년 5월까지는 절대 아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만약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문구까지 덧붙여야 했다. 박씨가 이같은 각서를 쓰게 된 것은 내년이 바로 범띠해이기 때문. 박씨의 「예비장모」는 얼마전 박씨를 불러 『범띠해에 태어나는 아기가 딸일 경우 팔자가 세진다』며 결혼식 연기를 요구하는 바람에 고민끝에 각서를 쓰고 결혼키로 한 것. 최근들어 서울시내 산부인과에는 본의아니게 임신을 한 주부들이 딸인지 여부를 구별해달라거나 딸일 경우 낙태를 시켜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어 의사들이 불법임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실제 지난 86년 범띠해의 경우 출생한 신생아는 모두 63만7천여명으로 바로 전해(소띠해)의 65만6천명보다 약 2만명이 줄었다. 또 이 해에 태어난 신생여아를 100으로 했을 때 같은 해에 태어난 신생남아는 117.7에 달해 소띠해의 109.4, 토끼띠해의 108.8보다 큰 폭의 성비불균형을 보였다. 이 때문에 비교적 남아선호 색채가 강한 대구·경북지역 시·군에선 범띠여아를 피하기 위한 태아감별과 임신중절이 늘어날 것에 대비, 단속에 나서는 한편 주부교실·새마을부녀회 등을 통해 가임주부를 대상으로 임신중절의 위험성을 홍보하고 있다.”(경향신문 1998년 9월1일자, “98년 5월前 임신땐 처벌 감수” 20代 신랑 ‘희한한 결혼각서’) 1996년 경북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입학생의 남녀구성비가 1.27대 1로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남초현상을 보였습니다. 지역적 보수성이 유독 강하게 작용한 탓으로 분석됐는데요. 장한남의 성장기에 묘사된 교실 풍경이 기사에 실제로 나옵니다. “남초현상의 심화로 일선학교에서는 생활지도및 체육수업등에 상당한 후유증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2인용 걸상에 여자짝을 구하지 못한 남학생들이 늘면서 이들은 심리적 위축, 소외감등으로 입학초기부터 동심에 상처를 입고 있다. 또 생활지도 및 학급운영이 남학생 중심으로 편중될 우려가 높아 여학생들의 「여성다운 성격형성」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안동시 ㅇ초등교 1학년1반에는 남자 22명에 여자는 14명에 불과해 체육시간, 무용시간등에 남녀 짝짓기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종목선택에 한계를 겪고 있다.”(경향신문 1996년 3월8일, <대구·경북>여학생 100명당 남학생 127명) 기사의 ‘여성다운 성격형성’이라는 표현에서 당시 젠더 인식도 엿볼 수 있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만남의 시작

 

장한남이 사는 2015년에는 남자들의 수가 여자들보다 많기 때문에 이성교제에는 남자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한 여자와 둘만의 관계로 발전”하려면 외모 뿐 아니라 다른 매력도 있어야 한다는데요. 장한남은 뛰어난 미적감각과 유머감각을 갖추고 있어 고은비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고은비 생일에는 자신의 집에 초대해 요리를 직접 만들어 대접하고 자신의 그림을 담은 CD롬을 선물했답니다.

 

장한남과 고은비는 지난해 음성과 동화상이 제공되는 PC통신 게시판에서 논쟁을 하다 만났습니다. 당시 정부가 남해 다도해를 잇는 교량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자 환경보호론자들과 건축·건설업계 간의 온라인 논쟁이 벌어졌는데요. 장한남은 교량 건설 찬성 입장에서 고은비는 반대 입장에서 논쟁을 벌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다네요. 그러다 정부가 연 전문가 공청회에서 첫 만남을 가졌고, 논의 과정에서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외국인들과 사이버 연애를 하기도 한답니다. 상당한 현실감을 주지만 실제 만날 기회가 제한돼 한계가 있다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 성비 문제는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회가 당면한 여러 인구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82년 출생성비는 1백6으로 자연적 출생성비(1백5)와 비슷한 추세였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1명 또는 2명의 자녀 중 반드시 남아가 있어야한다는 뿌리깊은 남아선호 사상의 영향으로 출생성비는 계속 높아져 92년에는 1백14로 올라갔다”고 나옵니다.(경향신문 1994년 7월9일, 한국 인구밀도 세계 3위/통계청 「94년 한국·세계인구 현황」) 하지만 2015년 한국은 ‘여초사회’가 됐습니다. 올해 여성 2531만명, 남성 2530만명이 될 것으로 통계청은 추정했습니다. 남녀 인구 역전은 정부가 196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입니다. 지난해 출생성비도 105.3으로 정상 출생성비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민들의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겠죠. 시민사회와 정부, 언론도 꾸준한 홍보와 계몽활동을 벌였습니다. ‘여성발전기본법’ 제정(1995년), 호주제 폐지(2005년) 등 한국 성평등 역사의 상징적 사건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특히 시민사회가 힘을 합친 호주제 폐지 운동은 한국 사회 남녀평등과 민주화 진전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죠.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성비 불균형이 2015년 연애에 미친 영향은 얼마나 될까요. 통계에서 보듯 성비 불균형이 20대에서 심한 건 맞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체감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될놈될 안될안’(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된다)인걸까요…. 연애가 함수처럼 1대1 짝맞추기가 아니다보니, 성비 불균형이 연애풍경까지 바꾼다는 예측은 지나친 비약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이에 더해 인간관계, 내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 등 각박한 젊은층의 삶이 연애를 못하는 더 큰 이유가 아닐지.

 

기사에선 장한남이 외모 외에 다른 매력을 뽐내는데요. 요즘 ‘요섹남’, ‘뇌섹남’, ‘훈남’ 등 외모 외에 다른 요소들이 어필하는 것 보면 나름 경향을 읽어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최근 대학생들의 대외활동이 활발해져서 이러한 모임에서 실제 연애로 이어지는 것도 무리한 설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이버 연애는 ‘화상채팅’이나 ‘데이팅 앱’을 떠올리면 될까요. 다만 짝 찾기에서 ‘낙오’돼 가상공간에서 연애 상대를 찾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현실 세계의 연장이죠.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남자들의 그루밍

 

남자들은 자신을 꾸미고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비불균형 탓이 크다는데요. 외동아들인 장한남은 부모님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음악, 미술 교육을 받았고, 미적 감각이 뛰어나 대학 진학 대신 디자인스쿨을 택했다네요. 또 수영, 테니스 등 여러 운동을 배워 ‘스포츠 만능’ 입니다.

 

장한남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외모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 뜻이었습니다. 성형수술이 일반화되고 가격도 저렴해져서 화장을 하는 것 만큼이나 쉽게 할 수 있다네요. 사람들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장한남은 어려서부터 영양섭취를 균형있게 하고 적절한 운동을 해서 체격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얼굴은 그렇지 못했나 보네요. 자신의 이미지에 맞도록 성형수술을 해 일부 고쳤다고 합니다. 화장도 합니다.

 

→ ‘남자들의 화장’ 이제 놀랍지 않습니다. 잘 가꾸고, 예쁜 남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꽃미남’이라는 단어는 언제 처음 사용됐을까요. 검색해보니 2001년쯤부터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네요. 남성 전용 화장품으로 유명해진 ‘꽃을 든 남자 컬러로션’이 출시된 것도, 축구선수 안정환씨가 꽃미남 테리우스로 유명세를 탄 것도 2002년이군요. 남자들의 ‘그루밍’이라는 단어는 2005년쯤부터 기사에서 검색이 되네요. 화장품 업체들의 홍보 기사도 여럿 눈에 띄구요.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760억원으로 1조원을 넘겼습니다.(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 조사) 6600억원 규모였던 2009년과 비교해 5년 사이 60% 이상 성장한 수치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지난 3월 발표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한 달 평균 13.3개의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성 응답자 절반 이상이 선크림을 사용하고 있으며, 5명 중 한 명은 비비크림을 사용한다고 답했습니다.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남성들의 성형도 깜짝 놀랄 일은 아닙니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남성 성형 전문병원을 찾아봐도 많은 사이트가 검색되네요. 남성 성형은 “남성도 외모가 경쟁력”이 되면서 늘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단지 여성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업 등 자신의 생계나 삶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하고 있다는 겁니다.(▶관련기사 : 늘어나는 남성 성형수술 ‘꽃미남’을 꿈꾼다)

 

결국 최근 남성들의 외모 관리도 ‘생계형’이라는 분석인데요. 서울시가 펴낸 ‘2014 통계로 본 서울남성의 삶’을 보면 2013년 기준 15~19세 남성 청소년 중 49.4%가 ‘외모를 가꾸기 위해 성형수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15세 이상 전체 남성으로 확대해도 32.6%가 ‘성형 수술 할 수 있다’고 답해 ‘그렇지 않다’(29.5%)를 앞질렀습니다. 또한 20~24세 남성은 우리 사회 차별요인으로 교육수준(34.4%), 소득수준(25.2%), 직업(14.4%)에 이어 외모(7.8%)를 꼽았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취업을 위해 성형을 권장하는 듯한 글을 트위터에 올려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네요. 장한남이 사는 2015년과 달리 ‘취업 성형’을 해야하는 실제 2015년, 슬프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장한남처럼 젊은이들의 체격도 좋아졌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 남성 평균키는 2003년 169.5㎝에서 2013년에는 170.5㎝로 커졌습니다. 특히 20대는 174.1㎝로 나타났습니다. 여성 평균키는 2003년 156㎝에서 2013년 156.9㎝로 커졌고, 20대 여성은 161.6㎝였습니다. 몸무게도 불었습니다. 그 외 자녀 수 감소와 사교육 열풍으로 다양한 과외활동을 하게 된 일도 비슷하게 묘사됐네요.

 

청춘 데이트

 

장한남과 고은비는 생활의 장이 달라서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PCS(개인용 통신단말기)로 연락을 주고 받는데요. 사귄지 얼마 안돼서 자주 만나려 애쓰고 있다네요. 데이트는 장한남이 리드를 합니다. 고궁이나 화랑을 많이 가는데요. 장한남이 한국적인 미를 살린 교각을 디자인하는데 관심이 있어서 고궁을 자주 가고 미술품을 감상한답니다. 하지만 은비는 모험스포츠를 좋아해서 자주 싸운다는군요. 그래서 한남이 은비를 따라 급류타기를 하고 은비도 미술작품 감상에 취미를 붙이려 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즐긴 후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합니다. 차에는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서 장소를 찾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1~2시간 거리에 있는, 산이 보이는 한적한 레스토랑’이라고 입력하면 조건에 맞는 장소까지 찾아줍니다. 또한 레스토랑은 수시로 전시회를 열어 미술품 감상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귑니다. 예술영역과 일상생활이 급속히 융합되기 때문입니다.

 

영화관도 데이트 코스입니다. 고화질 TV의 보급으로 자리를 잃어가던 영화관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도입된 초대형 입체화면으로 관객을 모읍니다. TV에는 가상현실이 도입되지 않았지만, 영화관에선 체험할 수 있답니다. 이 가상현실 영화관에선 시청만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하거나 상대방과 사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전에 고은비랑 영화관 데이트를 왔는데 영화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져서 관계가 어색해지기도 했다네요.

 

장한남과 고은비의 교제에서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들 세대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세계보다 더 큰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사이버스페이스의 뒷전에 밀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려울 때는 가상세계로 도피하기도 하구요. 이들은 현실 세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 서로 마주보고 교감하며 사랑을 키워갑니다.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 데이트 풍경은 크게 다를 게 없네요. 밥 먹고, 영화 보고, 미술관도 가고. 데이트는 기술발전이 바꾼 변화상을 묘사했군요. 휴대전화에 이어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서로 연락은 더욱 쉬워졌습니다. 두 사람의 인간적 거리가 그만큼 더 가까워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술영역과 일상생활의 융합은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문화 향유 욕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한 것이겠죠. 신사동의 갤러리 레스토랑이나 옛 공간사옥을 개조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등 기사의 사례는 익숙합니다.

 

기사에선 만 20살인 장한남이 차로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마이카’를 가진 대학생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차량 보급율을 좀 높게 예측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차량 내비게이션과 검색도 스마트폰을 통해서 가능한 얘기죠. 영화관의 경우 기사처럼 살아남았습니다. 1998년 ‘CGV강변’을 시작으로 도입된 멀티플렉스의 영향이었는데요. TV가 제공하지 못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사의 예측과 닿는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4D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구요. 더 나아가 기사처럼 가상현실을 제공하는 기기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우리 곁에 온 ‘가상현실 서비스’) 이 기사의 가상현실로 ‘야동’을 본 이용자 후기에 따르면 “성인용 영상에 출현한 여배우가 눈앞으로 다가와 귓가에 바람을 불 때 진짜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네요.

 

기사의 마지막도 가상현실과 현실세계의 충돌을 우려합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처럼 가상의 연인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될까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2회 기사는 젊은이들의 성문화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네요. 연애를 이성간의 교제로 한정한 것도 시대적 한계가 있었던 듯 하구요. 20대 청년들의 힘든 현실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호경기 때문이었을까요. 

바로가기 : [향이네-미래의 사람들 1회] 1995년 예측한 2015년 미래의 여대생 고은비 엿보기

1995년 예측한 2015년 미래의 여대생 고은비 엿보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5년 여름. 여러분은 무얼 하고 계셨나요. 최근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를 보며 울컥했던 ‘코딱지’들은 초등학생이었을테고, 자녀들의 사교육 전쟁에 뛰어든 어느 학부형은 압구정동을 주름잡던 ‘오렌지족’이였을 법도 한데요.

 

경향신문이 만들던 젊은층을 위한 섹션페이지 ‘매거진X’는 1995년 6월20일부터 LG전자 ‘커뮤니카토피아’ 연구소와 함께 20년 후의 미혼·기혼 남녀 등 다양한 연령의 미래상을 소개하는 시리즈물을 실었습니다. 당시 예측한 2015년의 모습은 틀린 부분도, 과장된 부분도 많습니다. 의외로 적확하게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고, 뒤틀린 의미로 맞은 부분도 있네요. 미래를 예측한 기사를 두고 어느 지점에서 현실이 굴절됐는지 살펴보면 오늘날의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듯도 합니다.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스무살 여대생 고은비

 

첫 회 주인공은 2015년 6월20일 만 20살 생일을 맞은 미래의 여대생 고은비입니다. 제목은 “사이버 스페이스 탈출 ‘온몸으로 살고 싶다’”입니다. ‘13학번’인 고은비는 환태평양 연합대학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전공은 해양생물학. 취미는 급류타기, 오지탐사입니다. 전공과 관련된 연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군요. 봉사활동으로는 홀몸 노인들을 위한 ‘1일 손녀’ 되기에 참여하고 있답니다.

 

‘미래학’(futurology)이라 불리는 미래에 대한 예견은 현재를 기반으로 합니다. 기사의 설정이 나온 배경에서 1990년대의 사회상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990년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엑스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호황을 누린 1980년대 10대를 보내고 대중문화의 양과 질이 폭발한 1990년대 20대를 보냅니다. 전에 없이 강한 개인주의 성향을 보내준 ‘새로운 세대’이며, 규정할 수 없는 세대라고 해서 ‘X’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배낭여행과 어학 연수를 본격적으로 떠난 첫 세대이자 PC통신부터 인터넷까지 정보기술(IT)의 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고은비는 1990년대 중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학 교육이나 IT기술에 대한 묘사에서도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은비의 퍼스널 라이프

 

스무살 생일을 맞은 은비의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통신기능을 강화한 휴대용 컴퓨터 단말기)에 생일축하 메시지가 쏟아집니다. 호주·일본 등에 있는 같은 과 친구들이 ‘인터넷 전자메일’을 통해 생일축하를 보낸건데요. 2015년 은비 세대에는 ‘퍼스널 패션 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인기입니다. 학교에 가기 전 오늘의 날씨와 스케줄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은비의 취향에 맞춘 ‘일상복 패션’을 제시합니다. 오늘 의상은 외부 온도나 빛에 의해 색과 형태가 변화하는 기능성 섬유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나가려는 은비, 목에는 ‘디스켓’을 겁니다. 수업용 화상정보, 음성정보가 담겨있다네요. 몸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 기구도 찹니다.

 

→묘사들이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물건들과 비슷하지 않나요. ‘PCS’는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을 거고, ‘인터넷 전자메일’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시지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퍼스널 패션 시스템’은 스마트폰의 패션코디 애플리케이션이라 할 수 있겠군요. 은비가 입은 기능성 섬유도 상용화가 됐습니다. 위그코리아라는 업체에서 제품을 보는 각도와 외부환경에 따라 색이 변하는 ‘루비올레’라는 소재를 최근 내놨군요. 은비가 목에 건 ‘디스켓’은 USB일 것 같구요. 오늘날도 여성들이 성폭력의 주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은비가 찬 ‘호신용 기구’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들 사물에서 떠올릴 수 있는 건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개인화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쓸모없어진 USB에 대한 묘사 등에서 기술발전이 예상보다 더 빨랐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캠퍼스의 풍경

 

고은비는 환태평양 연합대학(PPAU·Pan-Pacific Alliance University)에 다닙니다. 한국·미국·일본·호주 등 4개국이 제휴해 2010년 만든 대학입니다. 원격 영상강의 시스템을 구축해 외국대학 교수 강의를 각 캠퍼스에서 수강한다는군요. 은비는 전공과목 ‘남태평양 산호초의 생태’를 호주 교수로부터 원격 강의로 듣고, 교환학기에는 일본에 가서 ‘화산활동과 해양생태계의 변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교육개방의 물결 때문입니다. 외국대학의 한국진출이 늘고, 기술 발달로 초국가적 영상강의도 가능해집니다.

 

대학의 위상과 인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이버통신 대학’이 활성화되구요. 일부 사립대들은 사회교육기관이나 전문기술교육기관으로 변화했다네요. 대학정원이 입학을 원하는 사람보다 많아지면서 대학 구조개혁이 가속화되구요. 대학생과 비대학생의 구분도 사라집니다. 고은비의 남자친구 장한남도 직업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네요.

 

→환태평양 연합대학이라는 설정에선 1990년대 ‘환태평양이 21세기 중심지역’이 될거라는 시대 담론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오늘날도 중요성은 확인되고 있구요. 대학의 국제화 흐름은 정확하게 예측했네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는 해외 대학 캠퍼스가 자리 잡았고, 각 대학들은 해외대학과 복수학위 협정을 체결하고 있죠. 원격 강의도 이뤄지고 있고, 사이버대학도 낯설지 않습니다.

 

대학 구조조정 흐름도 맞췄습니다. 이는 출산율 감소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예견된 사태였는데요. 2018년이면 고교 졸업생(55만 명)이 대학 입학 정원(56만 명)에 미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죠. 정부는 2023년까지 정원을 40만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인문학, 예술 전공 등 ‘돈 안되는 학문’에 대한 구조조정도 가속화되고 있네요.

 

대학생과 비대학생의 구분의 사라진 이유는 대학의 문턱이 낮아진 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2014년 고등학교 졸업자 중 대학 진학 비율은 70.9%였습니다. 2005년 82.1%보다도 낮아졌습니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줄어든 탓이겠죠. 하지만 한국사회 ‘학벌’ 문제는 여전한 것 같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온몸으로 살고 싶다’

 

고은비는 여가활동의 많은 부분을 격렬한 운동에 할애합니다. “일상적인 활동의 대부분이 컴퓨터를 통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여가활동만은 실제공간”에서 하는 일을 즐기는 겁니다. 이 때문에 급류타기와 오지탐사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래스카 급류타기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돈도 모으고 있습니다.

 

대학생을 위한 일거리도 많습니다. 취업 형태가 ‘자유계약제’로 바뀌면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답니다. 은비도 ‘21세기 최고 자원’으로 꼽히는 해양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바다목장 프로젝트’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일도 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내에만 마치면 되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일을 한다네요.

 

은비의 또다른 일과는 봉사활동입니다. “자칫 네트워크에 매몰돼 사회의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에 봉사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어서 대부분의 젊은이가 하고 있답니다.

 

→기사에서는 ‘자유계약제’가 긍정적으로 쓰였군요. 의미가 모호합니다만 정부가 원하는 ‘고용시장 유연화’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알바 자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적다는 점에서 뒤틀린 의미로 맞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최근 험한 취업전선과 알바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나친 낙관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봉사활동이나 취미생활조차 스펙이 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예측도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네요.

 

지난달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10.2%로 ‘IMF 경제위기’ 시절인 1999년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15~24세 청년 가운데 15.6%(2013년 기준)는 일할 의지를 잃은 ‘구직단념자’가 됐습니다.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지고 비정규직, 시간제 등 질나쁜 일자리만 늘어나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겁니다. 2015년 청년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절박한 삶의 현장이지 여가를 위한 경험의 장은 아닌 것 같네요.

 

기사 전반에는 ‘사이버스페이스’의 확대로 인한 개인화와 사회 공동체 해체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습니다. 봉사활동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기존 공동체 유지에 대한 위기감을 반증하는 것 같네요.

’1995년에 상상한 2015년의

미래학?

 

미래학은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예측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사회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증할 수 없어서 학문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기술발전, 환경파괴 등으로 생겨난 불안은 미래학 연구를 확대시켰습니다. <제3의 물결>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나 사회학자 다니엘 벨 등이 대표적 미래학자로 꼽힙니다.

 

미래학자들은 자신들은 ‘점성술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발생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추론을 한다는 건데요.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과 사회적 요소들을 과학·공학 기술, 트렌드 분석, 상식, 비즈니스 감각 등을 통해 분석한다는 겁니다.

 

미래학자 이언 피어슨(▶홈페이지 바로가기)은 완전히 미래를 예측할 순 없지만, 자신의 예측이 15% 정도만 틀렸다고 말합니다. “미래 예측은 안개 속을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앞에 무엇이 있을 지 뚜렷하게 볼 수 없다. 때로는 멀리 있는 사물을 잘못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중 일부는 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안개 속을 운전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흐릿한 시야가 낫다!”

 

<글 배문규 기자 · 정리 박용필 기자 sobbel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