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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유병재의 성덕일기

사람 웃기려고 설사약 먹어봤나?

by경향신문

아무도 섭외가 안돼서 섭외한 ‘본인’ 유병재


성공한 덕후로서 그간 동경해왔던 덕질의 대상을 인터뷰하는 ‘성덕일기’가 9회째에 접어들며 큰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도 섭외가 안된다. 인터뷰어로서 자괴감도 들고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간의 인생을 돌아보며 밀려오는 회한에 괴롭기도 했지만 당장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 이번주 유병재의 성덕일기 아홉 번째 주인공은 나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이겨내야 했기에, 따지고 보면 나는 그동안 나를 참 좋아하지 않았나 하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유병재와 마주했다.

사람 웃기려고 설사약 먹어봤나?

방송작가, 개그맨, 방송인, 연예인 등 불리는 타이틀이 많다. 진짜 직업이 뭔가.

 

“코미디언이다. 2011년 개그맨 시험에 떨어지고 tvN <SNL 코리아>에 작가로 들어가 코미디 대본을 쓰기 시작했지만 스스로 부여한 정체성은 항상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방송사 주최의 코미디언 공채 시험 제도가 있지 않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코미디언 타이틀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은 주로 방송작가로 불렸다. 거기에 불만은 없다. 어떻게 불러주셔도 좋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은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엔 책도 냈다.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라고 한다. 에세이 형식이지만 나는 농담을 지어 먹고사는 사람이란 생각에 농담집이라는 제목을 붙여봤다. 책은 한없이 얇으나 게으름, 빈곤한 창의력과 싸워가며 3년 동안 썼다. 마냥 웃어넘기기에는 쉽지 않은 농담들이 담긴 1장 블랙코미디, 살아오면서 느껴온 분노의 감정들을 기록한 2장 분노수첩, 분노의 원인들은 사실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에서 출발한 3장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그나마 말랑말랑한 이야기들이라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기에 적당한 4장 인스타 인증샷용 페이지, 이렇게 총 4장으로 이뤄졌다.

 

자랑하고 싶은 글이 있나.

 

“김수영 시인의 동명의 시를 패러디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책 3장의 제목이기도 하고 그 장을 관통하는 자기반성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내용은 이렇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어느 여자 연예인이 속옷을 입지 않고 SNS에 사진을 올렸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한조 위도우만 고르는 우리 편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독재자에게/ 친일파에게는 못하고 배달부에게/ 발포책임자에게는 못하고 일사봉공, 견마지로의 자세로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의 딸에게도 못하고/ 걸그룹 기획사 사장에게 팀명이 구리다고 팀명 때문에 팀명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걸그룹 팀명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이것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읽다 보니 쓴웃음이 난다. 그러고 보니 최근 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제목도 이번 책 제목도 모두 ‘블랙코미디’다.

 

“내 취향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쪽에 끌렸다. 웃음은 기본적으로 즐거움이라는 감정에 기반을 두지만 슬픔이나 분노나 불쾌함 같은 다른 감정들이 혼재된 결과물로서의 웃음을 나는 더 좋아한다. 한국인에게 해학이 있다고 하지 않나. 한(悍)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런 종류의 농담을 어른들이 하는 걸 들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자기 비하 개그도 많이 한다. 요즘 방송에서는 외모, 언행, 성별 등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개그가 많은 것 같은데.

 

“키 작고 얼굴 크고 여자한테 인기 없고…. 이런 게 자연인 유병재로선 단점이지만 코미디언으로선 무기다. 그래서 알뜰살뜰 써먹은 거다. 그리고 기왕 비하할 바엔 남보다 나를 하는 게 내 코드에 맞다.”

 

최근엔 ‘사이다 개그’가 인기다.

 

“갈증이 그만큼 커서 그런 게 아닐까. 답답하고 뭔가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들이 큰데 같은 생각이라도 내가 하는 거랑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거랑은 다르니까. 그래서 누가 나서 속시원한 얘길 하는 걸 들었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유병재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사이다 개그로 유명한데.

 

“처음 SNS에 글을 올린 건 대본 연습 때문이었다. 글을 쓸 때 너무 길고 장황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서 짧게 함축하는 연습도 할 겸 두어 문장으로 압축한 내용들을 올리곤 했는데 보시는 분들이 시원하다, 사이다다 해주셔가지고. 단 반대급부도 항상 생각한다. 짧고 함축적일수록 생략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의도하지 않은 오해나 편견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사람 웃기려고 설사약 먹어봤나?

스탠드업 코미디는 왜 시작했나.

 

“오랜 꿈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야말로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뿌리라고 생각한다. 무대 장치를 최소화하고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말로 사람들을 웃겨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미국의 위대한 코미디언 윌 페렐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어렵고 외롭고 잔인하다’고 표현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한 표현이다. 계속 도전해 볼 엄두를 못 내고 미루다가 최근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공연을 했다. 5조5억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단체작업에 서툰 나에게 잘 맞는 장르라는 생각도 든다.”

 

시사풍자 개그에도 욕심이 있나.

 

“주변에서 요구는 많다. 누구를 까달라 이런 요청도 개인적으로 받는다. 그런 데 끌려다니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코미디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고 한다.”

 

그래도 코미디를 통해 전달하려는 게 있을 텐데.

 

“최근 비슷한 얘길 들었다. 누가 농담으로 한 말인데 코미디언이 자기 생각 전파하려고 웃음을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난 그 반대다. 내 생각은 코미디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근본 목적은 웃음이다.”

 

좋아하는 개그 코드는.

 

“충청도식 농담을 좋아한다. 충청도 하면 능청스럽고 의뭉스럽고 느리고 이런 걸 떠올리는데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웃기려는 의도를 안 들키는 거다. 내가 코미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다. 전혀 의도되지 않은 앞 문장을 얘기하고 뒤에 가서 빵 터뜨리는 그런 식의 유머.”

 

근데 성격은 또 굉장히 내성적이고 무대 체질도 아니다.

 

“그래서 과장된 연기가 요구되는 공개 코미디 시절엔 연기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난 정적이고 차분한 연기를 하고 싶은데. 개그맨들이 보면 카메라 앞에서 확 돌변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일상에서도 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근데 나는 보통 사람보다도 처져 있는 편이라 항상 어딜 가도 분위기 깨는 건 아닐까 자격지심 같은 것도 든다.”

 

의외다. 유병재는 어떤 사람인가.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우울하고 점잖다. 사람들 눈치 많이 보고 선비 기질도 있는 것 같고. 눈물도 많다.”

 

선비 기질이라니.

 

“선비라고 해도 되고 ‘프로불편러’라고 해도 되고. 원체 내가 진지한 편이다. 코미디언들이 항상 표현 수위를 놓고 사회의 금기와 싸우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난 그런 걸 더 엄격하게 하는 편이다.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코미디언은 웃기면 그만 아닌가.

 

“코미디언이란 직업 자체에 원죄의식이 있는 거 같다. 웃음을 만드는 건 너무 좋지만 한 끗 차이로 양아치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한 웃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게 아주 작은 차이다. 내가 만드는 웃음의 방향이 어떻게 갈 것이냐를 신중하게 고민한다. 웃음은 파급력이 크다. 이게 센 칼이니까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웃음이란 미명하에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도록.”

 

남한테 상처주는 게 싫은가 보다.

 

“난 세상에 ‘의도’만큼 안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의도로 했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결과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게으르게 자기 잘못을 변명할 때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자기 자신한테나 중요하지.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내 코미디를 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서 항상 주변에 피드백을 구하고 자기 검열을 한다.”

 

어버이연합을 풍자한 코미디로 고소당한 건 어떻게 됐나.

 

“무혐의 처분받았다. 처음 겪는 일이라 그냥 신기했다. 나를 고소하신 분이 구속됐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성덕일기 섭외가 잘 안된다.”

 

코미디언으로 가장 힘들 때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

 

아이디어는 주로 어떻게 얻나.

 

“정말 대중 없다. 집에서 잘 나오면 집에서 쓰다가 어떤 카페에서 괜찮은 게 나오면 그 카페만 가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지면 여기저기 막 걷기도 하고. 일부러 틀에 박히고 촌스러운 창작물을 찾아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다시 펴보기도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의 환경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얼마 전엔 배가 살살 아프면 재밌는 생각들이 나길래 설사약을 먹어보기도 했다. 한마디로 별의별 발악을 한다. 유명한 영화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영감은 하늘에서 내려주기를 기다릴 뿐이지 내가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쓴 코미디 중 만족하는 작품은.

 

“<SNL 코리아> ‘극한직업’ 코너의 고 신해철 선배 편. 시트콤처럼 내용을 만들었는데 코미디의 완성도가 스스로 평가할 때 괜찮았다. 호스트가 워낙 평소에 좋아하던 분이기도 했고.”

 

앞으로 어떤 코미디를 해보고 싶나.

 

“스케치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야외 콩트라고 해야 하나. 짧은 호흡의 한 5분짜리 야외 촬영물. 개인적으로도 할 수는 있는데 돈이랑 시간이 많이 들고 수익 낼 방법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대본만 계속 쓰고 있다.”

 

삶의 목표가 있다면.

 

“귀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는 귀여움의 조건들이 있다. 첫째 진지해야 하고, 둘째 부족해야 하고, 셋째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야 하고, 넷째 본인이 귀엽다는 자의식이 없어야 한다. 귀여운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정리 |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