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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가

by경향신문

유럽의 오래된 서점들과 소설 ‘섬에 있는 서점’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가

그리스 산토리니의 이아마을에 있는 작은 서점 ‘아틀란티스’. 오전 10시쯤이면 초대형 유람선들이 도착, 마을은 각국의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래도 아틀란티스 서점에서 '어린왕자' 초판본 같은 책들을 들춰보고 있으면 소란스러움을 잊을 수 있다.

매기에게 감이 왔다. 명중률 100%를 자랑하는 촉이었다. 소설 코너 앞에 서있는 장발의 청년. 카운터에 앉은 그녀를 힐끔거리는 태도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틀림없다. 청년을 주시하며 책값을 받고 포장을 해주기를 10여분. 어느새 청년은 사라졌다. 그가 서있던 책장으로 달려가 보니 역시나 소설 몇 권도 덩달아 사라졌다. 줄리언 반스, 이언 매큐언, 가즈오 이시구로. 빈 공간을 훑어보니 영국 현대 소설이 그의 취향이었다. 지난 백년간 이 서점은 책 도둑들과 흥망성쇠를 함께해왔다. 문고판 서적뿐 아니라 값나가는 고서가 사라진 것도 부지기수. 서점의 주인 실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용서하는 신부의 마음인 건가. 매기는 책을 훔치는 이들이 가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책값이 아까워서 혹은 재미 때문이라 생각하는 쪽이지만.

 

비 내리는 초겨울 오후. 서점 앞 벚나무 두 그루는 잎을 벗은 가벼운 몸으로 서있다. 건너편 센 강변에서 그림을 파는 노점도 궂은 날씨 때문인지 오늘은 문이 닫혀있다. 관광객이 적은 겨울인데도 서점을 찾는 이는 끊이지 않는다. 모든 안내책자마다 실려 있는,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서점이기에. 서점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파리의 오아시스였다.

 

미국 여성 실비아 비치가 1919년에 서점을 연 후 미국인 조지 휘트먼이 그 이름을 이어받았다. 조지는 유토피아를 서점에 구현하고 싶어 했고, 그의 딸 실비아가 서점을 맡은 후에도 서점의 이상은 변하지 않았다. 서점은 지금까지 작가를 꿈꾸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왔다.

 

지금 서점에 머무는 젊은이들은 네 명.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스페인 처녀 아멜리아, 멕시코에서 온 시인 지망생 페드로, 아일랜드의 인디밴드 보컬이자 소설가를 꿈꾸는 조, 미국 남부의 저널리스트 출신 매기. 그들 중 나이로도, 서점지기로서의 경력으로도 최고참은 매기다. 모두 이 서점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짬짬이 글을 쓴다. 매기는 그나마 가장 고요한 고서실에, 이곳에서 사랑에 빠진 페드로와 아멜리아는 2층의 소설 방에 머문다. 조의 잠자리는 2층 계단 옆 시집 코너. 그들은 아침이면 다 같이 서점을 청소하고, 문을 열고, 돌아가며 카운터를 본다.

 

매기는 파리에 올 때마다 이 서점을 찾아와 책의 향기를 맡고는 했다. 유럽을 여행하다 돈이 떨어진 지난해 겨울, 그녀는 잠시 이곳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 전설의 서점은 그 시설 또한 전설적이었다. 열악한 화장실과 사생활 없는 잠자리를 열정만으로 견딜 나이는 이미 지난 터였다. 그보다 더 힘든 건 ‘고객’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뜨내기 관광객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책도 사지 않으면서 온갖 책을 다 뒤적이며 골고루 때만 묻혀놓고 가는 손님들, “No Photo” 사인을 보란 듯 무시하며 인증 사진을 찍어대는 손님들, 검색 한 번만 하면 다 나오는 서점의 역사에 대해 온갖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잡아먹는 손님들. 매기가 기대했던 서점지기로서의 낭만은 누릴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오는 이들의 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매출이었다. 그녀는 지쳐갔다. 책을 향한 사랑만으로 서점 일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 되어버린 걸까. 영업이 끝난 서점의 불을 끄며 그녀는 슬슬 떠날 때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가

여기까지는 파리의 내가 사랑하는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의 이야기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참고한 필자의 상상이다. 이상한 일이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저자나 편집자나 서점이나 다들 아우성인데, 서점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서점을 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을 파는 서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되는 한 권의 소설이 있다. 캐나다 작가 개브리얼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 젊은 부부가 아내의 고향인 앨리스섬으로 돌아와 17평짜리 서점을 연다.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가 아니라는 신조로. 섬에 하나뿐인 이 서점의 이름은 ‘아일랜드 서점’. 몇 년 후 아내는 사고로 죽고, 혼자 남은 서점 주인 피크리는 점점 괴팍해진다. 피크리는 원래도 취향이 까다로운 서점 주인이었다. 작품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작가들 하고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당연하게도 작가 이벤트 같은 행사는 질색이다. 자기가 팔 수 없는 책(즉 본인 취향에 맞지 않는 영 어덜트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같은)은 들여놓지도 않는다. 아내가 죽은 후에는 술로 외로움을 달래며 시큰둥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가

파리의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 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가 보험처럼 간직하던 희귀본을 도난당한 날, 누군가 서점에 아기를 버려두고 갔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은 동짓달 밤에 호호 불며 먹는 단팥죽처럼 적당히 달달하다. 지적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유머가 있고, 삶과 책에 대한 통찰이 스며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배부르고 등 따뜻한 고양이가 된 기분으로 책을 끌어안게 된다.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까지 가기 힘든 이들에게 안겨주고픈 책이다.

 

피크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서점에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넓은 지구에서 내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점은 그렇게 섬처럼 외따로 떨어진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책과 나를,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 온라인에서 책을 살 수도 있고, 전자책을 주문할 수도 있지만 서점 주인의 취향이 깃든 작은 공간과 그곳에 가득한 종이의 냄새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왜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고풍스러운 서점 ‘엘아테네오’.

파타고니아의 대자연 속에서 캠핑을 다니다 석 달 만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날, 나는 엘아테네오 서점으로 달려가 사흘 굶은 곰이 연어를 덮치듯 책을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작은 서점 아틀란티스에서 비닐에 싸인 <어린왕자> 초판본을 들여다볼 때면 걸어 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붐비던 섬의 소란스러움 따위야 까맣게 지워졌다. 포르투갈의 사랑스러운 동네 서점 렐루가 ‘해리포터의 그 계단’이라는 유명세로 인해-‘인증샷’을 찍으러 밀려든 관광객 때문에-서점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로 변해버린 모습에 하염없이 슬퍼지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의 낯선 도시를 떠돌다가도 서점에만 들어서면 나는 내가 아는 곳에 도착한 듯 마음이 풀어졌다.

 

<섬에 있는 서점>의 어밀리아의 말처럼 내게도 서점은 이승에서 교회에 가장 가까운 신성한 공간이다. ‘출판은 점잖은 사람들의 비즈니스’라고,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곳’이라고 나 또한 믿고 있다. 이토록 추운 겨울, 노란 불빛이 흘러나오는 서점이 없는 골목을 생각하면 발이 시리다.

 

지난달, 셰익스피어&컴퍼니를 다시 찾아갔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 만큼 안도했다. 이 낡은 서점의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벚나무 아래 서서 바라보는 서점의 초록색 간판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편으로 보이는 ‘비트’, ‘로스트 제너레이션’ ‘셰익스피어’ 등으로 구분된 서가도, 이가 슨 낡은 버팀목들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쓰인 시구도 그대로였다.

“I wish I could show you when you are lonely or in darkness the astonishing light of your own being.(당신이 외롭거나 어둠 속에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이라는 존재가 발하는 그 환한 빛을 보여주고 싶네)”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으로 향하면 피아노가 있는 방. “이 녀석은 책을 읽느라 밤을 새웠어요. 제발 깨우지 마세요”라는 익살스러운 팻말 아래 자고 있는 검은 고양이조차 그대로였다. 계단참에는 침대용 의자가 놓여있고, 벽에는 이곳을 찾은 이들이 남긴 쪽지들이 붙어있다. 왼쪽으로 향하면 타자기가 있는 작은 공간을 거쳐 이 서점의 가장 넓은 방으로 이어진다. 조지 휘트먼이 실비아 비치에게서 구입한 책을 비롯한 그의 소장본이 있는, 도서실이라 불리는 방. 창가의 책상에는 젊은 작가 혹은 지망생 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원고지 대신 노트북을 놓고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나는 시집 코너에서 메리 올리버의 시집을 뽑아 긴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들면 창 너머로 흐릿한 겨울 하늘과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이 들어오는 자리였다.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책을 뒤적이는 사람들. 습기에 찬 나무 냄새와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발소리. 이곳에는 돈을 받고 매대를 파는 대형 체인 서점이 제공할 수 없는 주인의 취향이 책장마다 배어있었다. 한 번 더 이 서점을 보겠다고 비행기를 갈아타는 6시간 사이에 여기까지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나는 도서실 방의 긴 의자에 짧은 겨울해가 저물도록 앉아 있었다.

 

김남희 도보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