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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해운대 ‘꽃의 내부’ 오펜하임 유족 “이 파괴 행위는 창작 활동에 나쁜 선례”

by경향신문

미국 설치미술 대가 데니스 오펜하임(1938~2011)의 ‘꽃의 내부’ 폐기를 두고 유족이 “이 파괴 행위는 미술품 창작 활동에 나쁜 선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술계에서는 해운대 구청이 철거한 ‘꽃의 내부’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운대구청이 지난 12월 해운대해수욕장 ‘꽃의 내부’를 철거·폐기했다. ‘꽃의 내부’는 2010년 설치된 작품으로 오펜하임의 유작 중 하나다.

 

데니스 오펜하임 부인 에이미 오펜하임은 19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공공 관점에서 이 파괴 행위는 미술품 창작 활동에 나쁜 선례가 된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부산 비엔날레 측에 보냈다”고 했다. 

해운대 ‘꽃의 내부’ 오펜하임 유족

오펜하임은 철거·폐기에 관한 소식을 부산비엔날레 조직위나 해운대구청 아무 곳에서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이 영국 ‘데일리 메일’ 폐기 기사 링크를 알려주고 난 뒤에 폐기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상설 전시된 미술 작품이 파괴된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고도 했다.

 

오펜하임은 ‘데니스 오펜하임 재단’ 대표다. 그는 “오펜하임의 모든 작품과 그에 관련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내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는 고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권리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그 권리와 의무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오펜하임은 권리·의무의 구체적 내용과 대응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오펜하임은 인터뷰에서 “남편이 한국 문화와 사회에 깊이 감명 받았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며 1988년 올림픽공원 조각마당에 설치한 ‘위장지’를 언급했다. 자신도 2015년 ‘꽃의 내부’를 찾았다고 했다. 오펜하임은 “이 뉴스를 마음이 아픈 시기에 들었다. 1월 21일은 데니스의 80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해운대 ‘꽃의 내부’ 오펜하임 유족

해운대구청은 2009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에 작품 선정 등을 의뢰했다. 이듬해 만남의 광장 부근에 ‘꽃의 내부’를 설치했다. 예산은 8억원이 들어갔다. 이후 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가 관리를 맡아왔다. 관리소는 이 작품을 지난달 11~17일 철거·폐기했다.

 

사업소 측은 폐기 이유로 부식과 민원 제기를 들었다. 김인철 소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1년이 지나자마자 파손되기 시작했다. 2016년 태풍으로 물에 잠긴 뒤 부식이 심해져 철거가 불가피했다”고 했다. 김 소장은 ‘꽃의 내부’가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폐기 이유로 들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작품을 두고 ‘저게 뭐냐’며 철거 민원을 오래 제기했다. 주민들이 작품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점도 지자체 공무원인 우리로서는 큰 고민 거리였다”고 했다.

 

사업소는 2013년 이후 보수유지-철거-이전을 두고 부산미술협회 등과 계속 논의한 뒤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고철을 팔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작품이다. 재료는 다 폐기했다”고도 했다.

 

미술계에서는 공공미술과 시설물을 구분 못한 폐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부산은 비엔날레를 여는 도시가 아닌가”라며 “미술적 가치가 커 세운 작품인데, 왜 설치했는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보기 싫다’는 이유로 폐기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작품을 잃어버렸다. 엄청난 예산 낭비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팝아트 같은 데 경도된 한국 문화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태”라고 했다. 그는 “오펜하임은 한국에 관심 많은 작가였다. 1988년에 이어 1990년대 중반 직접 자신의 드로잉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고 전했다.

 

작품 복원을 말하는 이도 나왔다.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던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은 ”문화 행정 부재가 빚은 참사”라며 “공공미술 작품은 공공 재산이다. 해운대구청이 소유권자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 중요한 건 행정의 파국을 바로 잡는 미술계와 시민사회의 공론이다. 향후 작품을 복원하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질 것이다. 재료, 기법, 규격 같은 시방서가 있다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해운대구청 측은 복원에 부정적이다. 김인철 소장은 “작가가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 복원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산도 든다”고 했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는 향후 조치를 두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조직위 관계자는 “우리도 작품 철거 이후에 알았다. 왜 철거했는지 등을 두고 구체적인 사항을 지금 알아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