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통장에 찍힌 ‘3만원’…어느 1급 장애인의 ‘기막힌 임금’

[비즈]by 경향신문

중증장애인에 최저임금은 ‘딴 나라’ 얘기

보험료 등 빼면 3만~4만원, 점심값 5만원은 자비 부담…되레 2만원 주고 일하는 셈

작년 보호작업장 평균 월급 최저임금의 31%에 그쳐 “시장논리 접근은 반인권적”

월급 통장에 찍힌 ‘3만원’…어느 1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9일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조항 삭제’ 등을 요구하며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부근에서 시위하고 있다. 이 단체는 29일 현재 126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아이가 월급을 받았는데 통장에 3만원이 찍혀 있더라고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지 않나요? 너무 서럽고 가슴이 아파서 가끔은 잠도 오지 않아요.”


김모씨가 지난 25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의 둘째아들 ㄱ씨는 지적장애와 뇌병변을 앓는 1급 장애인이다. ㄱ씨는 지난 2월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충남의 한 보호작업장에 취업해 옷, 이불, 신발을 빨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ㄱ씨는 주 5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 퇴근한다.


김씨가 아들 대신 작성한 근로계약서의 월급은 30만원. 4대 보험료와 각종 관리비용을 빼고 매달 ㄱ씨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약 3만~4만원이다.


김씨는 아들의 점심 비용으로 보호작업장에 매달 5만원을 별도로 낸다. 보호작업장에 매달 약 2만원을 주면서 노동하는 셈이다.


비장애인인 큰아들이 ‘차라리 일터에 안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할 때 김씨의 가슴은 무너진다. 김씨는 “최저임금 논란으로 사회가 시끄러운데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최저임금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주면 좋겠다. 부모가 없으면 (지금 받는 돈으로)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했다.


다른 장애인 어머니 김모씨도 “최저임금은 ‘딴 나라’ 얘기”라고 말한다. “사회가 좋아진다지만 최저임금이 우리 아이에게 적용되려면 제가 죽고 나서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 ㄴ씨는 지적장애 2급이다. 경기의 한 보호작업장에서 15년째 일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3시간씩 일하고 약 12만원을 받는다. 시급을 따져보면 약 2000원이다.


김씨는 “ ‘차별받는다’는 생각과 함께 ‘이것도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가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제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줘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불만이 있지만 보호작업장에 임금이 낮다는 얘기를 꺼내긴 어렵다”고 했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지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장애인 노동자에 대해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받으면 최저임금을 주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증장애 때문에 일반 사업장에 취업하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보호적인 환경’에서 직업적응훈련 등을 실시해 노동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는 해당 근로장애인의 작업 능력이 비장애인의 70% 미만인 경우에만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이 인가를 받는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 제외 신청을 한 사업장은 732곳 중 1곳을 뺀 731곳이 인가돼 인가율이 98.3%에 달했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수는 지난해 기준 8632명이다.


법정 ‘근로장애인 최저임금’마저 없어 중증장애인 절대다수는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출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직업재활시설 유형별 근로장애인 급여체계’에 “보호작업장은 근로장애인 3분의 2 이상에게 최저임금의 40% 이상을 지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만 있을 뿐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보호작업장의 월평균 임금은 42만3000원이었다. 같은 해 월 최저임금(135만2230원)의 31.2% 수준이다. 월급 10만~30만원을 받는 장애인이 전체의 40.7%였고, 월급 10만원 미만을 받는다는 장애인도 5.1%나 됐다.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대부분이 발달장애를 앓아 의사표현 능력이 낮다. 현실적으로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최저임금 등 처우 개선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노동부는 지난 2월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 개편을 위한 ‘합동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내년 초 개편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TF는 노동부, 복지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애인부모연대·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인단체와 장애인 고용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TF는 전국 보호작업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설문조사를 거쳐 12월 집중 논의에 들어간다.


노동부 관계자는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은 오랜 시간 작업하지 못하고 근로능력이 낮은 게 사실이다. 보호작업장은 수익률이 낮아 사업주에게 최저임금을 다 지급하라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 보호작업장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의 낮은 임금은 민간의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복지로 장애인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비장애인과 경쟁하는 기준으로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굉장히 반인권적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의 소득을 보장하는 큰 틀에서 여러 대안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대비 장애인연금 살펴보니…한국 12%, 네덜란드는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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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의 생활 보장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지급하는 장애인연금도 최저임금을 대체하기 어렵다. 한국은 ‘18~64세로서 장애 정도가 1·2급 및 3급 중복인 자’에게 장애인연금 기초급여로 월 20만9960원을 지급한다. 9월부터 25만원으로 올려 지급할 예정이지만 내년도 월 최저임금(209만원) 대비 12% 수준이다.


한국의 장애인연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에 비해 적다. 일본의 장해기초연금은 1급 장애인에게 월 8만1177엔(약 82만원), 2급 장애인에게 월 6만4941엔(약 65만원)을 지급한다. 최저임금 대비 45.8% 수준이다.


미국은 보충소득보장제도(SSI)를 실시해 ‘장애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활동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에게 월 750달러(약 84만원)를 지급한다. 미 연방정부 최저임금의 49.5%다.


네덜란드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장애인연금 제도를 마련했다. 와종(Wajong)은 ‘17세 전에 발생한 장애로 25% 이상의 근로능력 손상을 입은 65세 미만’에게 최저임금의 75%(1183유로·약 154만원)를 지급한다.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과 연금 지급액을 연동해 합산 소득이 최저임금의 100%가 되도록 보장한다.


프랑스의 성인장애수당(AAH)은 ‘20세 이상으로 장애율이 50%인 자’에게 월 819유로(약 107만원)를 지급하고 장애율이 80% 이상이면 104.77유로(약 13만원)의 자립지원급여를 추가로 지급한다. 근로능력이 5% 미만인 장애인에게는 179.31유로(약 23만원)를 또 추가로 준다. 독일의 필요지향적 기초부조제도는 ‘18~64세 중 질병 또는 장애로 통상적 노동시장의 여건에서 일일 3시간 이상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자’에게 월 416유로(약 54만원)를 지급한다. 최저임금의 27.8%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29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중증장애인이 장애인연금에 기초생활수급까지 지원 받는다고 해도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저임금 적용으로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를 찾게 하고, 연금 인상률도 대폭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2018.07.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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