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좋아서 쓰는 리뷰

완벽 강요하는 사회가 지겹다면···넷플릭스 '파티셰를 잡아라!'

by경향신문

완벽 강요하는 사회가 지겹다면···넷

넷플릭스 오리지널 '파티셰를 잡아라!' 크리스마스 특집 시즌에 참가한 알리시아가 만든 장난감 쿠키. 알리시아는 머리 부상으로 해병대 휴직 상태에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넷플릭스 제공

여기 이상한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 매회 1만 달러(약 1100만 원)를 놓고 제빵 대결이 벌어지는데, 참가자들의 실력이 영 시원찮다.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그래서 먹어도 될까 싶은 결과물들이 판정단을 맞이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파티셰를 잡아라!> 얘기다.


코미디언 니콜 바이어와 스타 셰프 자크 토레스가 진행하는 <파티셰를 잡아라!>는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망쳐도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물론 우승에선 한 발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참가자를 질타하지 않는다. 성 소수자부터 미혼모, 경찰, 군인, 교사, 주부까지 참가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제빵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 참가가 가능하다. 세 명의 참가자들은 2번에 걸쳐 제빵 대결을 펼친다. 전문가가 만든 디저트를 보고 주어진 레시피대로 따라 만들면 된다.


미국 해병대 출신의 알리시아는 머리 부상으로 휴직을 한 상태에서 <파티셰를 잡아라!>에 출연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움직이는 인형 모형 쿠키를 만드는 일이었다. 전문가가 만든 ‘모범 작품’은 섬세하고 복잡했지만,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레시피는 지나치게 간단했다. ‘적당한 비율로’, ‘어느 정도 익으면’과 같은 표현은 미국 화가 밥 로스의 유행어 “참 쉽죠?”를 연상시켰다.

완벽 강요하는 사회가 지겹다면···넷

전문가가 만든 작품(왼쪽)과 알리시아가 만든 작품을 비교한 모습. 알리시아가 만든 쿠키 아래 “해냈어요!”란 자막이 쓰여있다. 넷플릭스 제공

완벽 강요하는 사회가 지겹다면···넷

진행자 니콜 바이어가 메인 대결이 끝난 뒤 눈물을 흘리는 알리시아를 안아주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알리시아가 만든 장난감 쿠키는 판정단의 평에 따르면 “꿈에 볼까 무서운” 작품이었다. 몸에 고정돼 있어야 할 팔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위해 칠한 노란색 설탕크림은 쿠키 전체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알리시아는 주눅들지 않고 외쳤다. “제가 해냈어요!” 알리시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모두 같은 말을 외쳤다.


판정단의 평가도 격려와 응원에 가까웠다. 알리시아의 쿠키를 한 입 맛 본 한 심사위원은 말했다. “역시 겉만 봐서는 모르네요.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맛은 훌륭해요.” 메인 대결을 끝낸 뒤 심사위원 앞에 선 알리시아는 소감을 묻자 “날아갈 것 같다”고 답하며 울먹였다. 그는 “그간 정말 우울했다.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요리나 베이킹은 물론 주방 사용도 못 했다. 처음 이 방송을 보고 7개월 만에 배꼽 잡고 웃었다”고 말했다.

완벽 강요하는 사회가 지겹다면···넷

(왼쪽부터) 전문가가 만든 도넛과 '파티셰를 잡아라!' 참가자가 만든 도넛. 원작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넷플릭스 제공

완벽 강요하는 사회가 지겹다면···넷

(왼쪽부터) 전문가가 만든 케이크와 '파티셰를 잡아라!' 참가자가 만든 케이크. 참가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공주의 머리카락을 무지개색 젤리로 표현했다. 넷플릭스 제공

“해냈어요!”는 이 프로그램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원제가 <해냈어요!(Nailed it!)>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정을 중요시 하며, 완벽하진 않아도 노력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꼴찌 참가자에겐 남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찬스’가 주어지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전문가의 작품을 마냥 똑같이 따라하지 않는다. 게이 참가자는 케이크에 장식된 공주의 머리카락을 무지개색 젤리로 표현했고, 한 번도 쿠키를 구워본 적 없다는 참가자는 쿠키 반죽 만들기에 실패하자 쌀과자로 대신했다.


혹평과 눈물, 탈락과 생존 등 살벌한 프로의 세계를 그리는 경연 프로그램에 염증을 느낀 국내 시청자들은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한 시청자는 “완벽하길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다. 조금 부족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시청자 김모씨(31)는 “보면서 가슴 졸일 필요도 없고, 참가자들도 당당하다. 누군가 상처 받는 악마의 편집 걱정도 없다.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파티셰를 잡아라!>는 2018년 미국 텔레비전 비평가협회 시상식 리얼리티 프로그램 부문 최우수 프로그램 후보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간의 실수를 기념하는 유쾌한 경영대회’라는 평이 따랐다. 지난해 3월 넷플릭스에 첫 선을 보인 <파티셰를 잡아라!>는 시즌1·2, 크리스마스 특집 시즌 등 총 3개의 시즌이 공개됐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