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둘이서 종전선언하면, 우리는 진짜 나라도 아닌 걸까?

[이슈]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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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가 종전선언을 하면 그것으로 한반도 전쟁의 경험을 치른 4개국의 종전선언은 완성된다”


청와대가 지난 25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전쟁’의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이 나올 가능성을 언급하며 화제가 됐는데요.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다. 이번 회담이 성과를 거둔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그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은 현재 한반도가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상태’ 혹은 ‘평화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상태’로의 변화. 말 그대로라면 분명 현재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6일 한 유력 언론은 ‘한국 빠진 6·25 종전선언이라니, 우리는 나라도 아닌가’라는 사설을 통해 이 상황을 비판했습니다. 해당 사설은 “놀라운 것은 청와대가 이날(25일) ‘북한·미국만의 종전선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밝힌 사실이다. 청와대가 대한민국을 나라도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1953년 당시 전쟁 피해만 입고 통일은 없는 휴전에 반대하다 정전협정까지 불참했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한국 없는 종전선언은 절대 불가’라고 명백히 선언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대한민국은 빠질 수 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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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정전협정에는 불참했지만 북·미 간 종전협정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에는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다’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한국은 북한과 독립적으로 종전협정을 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내포돼 있습니다. 해당 주장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실관계는 한 번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한국이 ‘통일 없는 휴전에 반대하다 정전협정까지 불참했다’는 부분입니다. 해당 주장은 ‘정전협정에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다’거나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전협정에 반대했다’는 것을 주요 논거로 듭니다. 이에 대해 한 번 따져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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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문 한국어본

실제로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 전쟁 정전협정문에는 한국 대표의 서명이 없습니다. 당시 협정 원문을 보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원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국제련합군 총사령관 미국 륙군 대장 마크 더블유. 클라크’라는 서명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서명자들의 직함을 보면 이들이 모두 ‘군 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국 전쟁’에서 군대를 이끌던 사람들만 서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은 어떤 지위였을까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은 당시 한국을 도와 전쟁에 참전했던 16개국 군 사령관들을 대표하는 자리였습니다. 한국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대표자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국제연합군사령관 맥아더장군에게 보낸 서한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요. 이승만 대통령은 “현재의 적대행위가 계속되는 동안, 군사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잠정적 조치로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국제연합군 사령관에게 이양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는 국제연합군에 넘긴 작전지휘권을 환수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정전협정문에 국제연합군 사령관과 별도로 한국군 대표가 서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이 같은 사실은 또 다른 문서에서도 확인됩니다. 공산군측은 연합군측과의 ‘정전협정’에 앞서 한국군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확인받기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협정에 서명하기 전인 1953년 6월 20일, 김일성과 팽덕회 명의로 된 서한을 보냅니다. 이들은 “국제연합군 사령부가 한국 군대를 통제할 수 있냐?”고 물었고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클라크는 “한국 군대는 한국에 대한 무장 공격을 보다 효과적으로 격퇴하기 위해 국제연합군 사령부의 통제 하에 두었다”고 답합니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하면 정전협정은 쌍방 군 사령관의 협정이었고, 당시 연합군 대표 클라크가 미국 대표가 아닌 국제연합군 사령관 자격으로 서명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왜 당시 한국군 대표였던 최덕신 육군 소장이 정전협정에 참석하지 않았느냐고도 합니다. 그런데 당시 정전협정 서명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일 오전 10시 국제연합군 대표단 수석대표 윌리엄 K. 해리슨이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을 판문점에서 만나 정전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어 오후 1시 경기도 문산의 국제연합군 기지에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마크 W. 클라크가, 오후 10시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다음날 오전 9시30분 개성에서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가 서명했습니다.


최덕신 한국군 대표는 오전 10시에 있었던 판문점 서명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후 1시에 있었던 클라크 사령관의 서명식에는 참석했습니다. 최덕신은 자신의 저서 ‘제2의 판문점은 어디로’에서 “대통령이 관저로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클라크 장군이 휴전협정에 사인하는 것 알고 있지. 거기 좀 나가주어야겠어’라고 명령했다”고 밝힙니다.


당시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한국이 ‘정전협정에 불참했다’거나 ‘당사자가 아니다’는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한국은 국제연합군이었고 정전협정은 당시 군 사령관들 명의로 진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반대했다’는 주장도 한국의 정전협정 불참 근거로는 미약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명섭 교수의 연구를 참고해 볼 만합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논문 ‘한국군은 6·25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에서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자임을 부인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도 설명할 길이 없어짐을 논증합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 준수를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성사시켰기 때문입니다.


■북·미 종전선언장에 가지 않으면 평화협정 당사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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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가 종전선언을 하면 한반도 전쟁의 경험을 치른 4개국의 종전선언은 완성된다”는 청와대 주장의 근간에는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독립적 지위를 갖는다는 전제가 내포돼 있습니다. 이미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이를 정전협상 당사자국들 간의 독립적 선언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이 종전선언에 사실상 합의했고, 한국과 중국은 이미 1992년 수교했습니다. 결국, 북·미만 남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가능성 수준인 종전선언 현장에 가지 않는다고 ‘대한민국은 나라도 아니다’거나 ‘나중에 평화협정에서 대한민국이 빠질 수 있다’는 주장. 우리는 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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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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