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네’···김종영미술관이 보여주는 ‘제3의 이미지’

[컬처]by 경향신문
‘사진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네’··

권오상 작 ‘ Y의 흉상들’ 김종영미술관 제공

배우 유아인의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러 온 유아인의 어깨너비 등 신체 치수도 잰다. 기록해둔 치수를 바탕으로 유아인의 흉상을 만든다. 인화한 유아인의 사진을 조각조각 자른다. 그 사진을 흉상에 다시 붙여 유아인을 ‘재창조’한다. 이렇게 만든 작품은 사진일까, 조각일까.


‘사진 조각가’ 권오상이 만든 ‘Y의 흉상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유명배우 유아인의 흉상 5개가 나란히 있는 것도 특이하지만, 얼굴이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흉상은 ‘멀쩡’한데, 그 옆에 다른 흉상은 3D 화면처럼 눈코잎이 흩어져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이 지난달 20일부터 열고 있는 ‘미디어아트전-제3의 이미지’는 사진과 비디오를 활용한 예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명료하게 보여준다. 권오상을 비롯한 작가 8명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8명 중 사진을 전공한 작가는 강영길과 박진호 2명 뿐이다. 6명은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여전히 미술계에서는 사진계를 배척하는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있지만, 이미 사진과 회화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지난달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진과 비디오는 미술에서 평면과 입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지대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라며 “지금 사진과 비디오 작업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8명 작가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전시”라고 말했다.

‘사진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네’··

권오상 작 ‘Y의 흉상들’(뒤쪽)과 ‘리버’(앞쪽)김종영미술관 제공

권오상은 유아인의 흉상과 함께 ‘리버’라는 여인상도 내놓았다. 전시장 바닥 나무판자 위에 누워있는 이 작품은 인터넷에서 찾은 비키니 차림의 슈퍼모델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냈다.

‘사진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네’··

강영길의 ‘더 다이나믹스’ 연작이 나란히 걸려있다. 김종영미술관 제공

‘상업 사진가’ 출신인 강영길은 물속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편하게 살다가 세상에 나와서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듯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한다. 일렁이는 물 때문에 번진 색을 다듬는 것 외에는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사진이 아닌 강렬한 추상화처럼 보인다.


정정주의 ‘전일빌딩’은 5·18 광주의 상징적 건물인 전일빌딩의 모형이다. 실제 전일빌딩을 축소해 재현한 뒤 그 안에 비디오 카메라 4대를 설치했다. 관객은 벽면 프로젝트에 비친 화면을 통해 건물 안의 시점을 공유할 수 있다. 관객이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관찰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진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네’··

김정희의 카니발Ⅱ. 김종영미술관 제공

김정희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섬세한 작업을 통해 사진에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사진 속의 사물을 오린 뒤 여러장을 겹쳐 붙였다. 단순한 기법이지만 평면 사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조의 느낌’이 생겼다. 소재는 큰 맥락이 없다. 어떤 작품에는 도자기와 풍선, 불꽃이 모여있고 그 뒤에 새와 양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구체적 연관성 없이 재조합된 개체들이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박춘호 학예연구실장은 “여전히 사진계와 미술계는 태생적 한계와, 진영논리에 기반한 순혈주의로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어느 분야든 순혈주의가 만연하면 자기발전은 요원해지고, 비극적인 종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전시는 4월7일까지 이어진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2019.03.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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