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은 보석 찾기…日오사카·교토

[여행]by 경향신문

골목에서 만난 색다른 감성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기모노 차림의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교토 하나미코지도리.

어디든 요즘 골목이 뜨겁다. 일본 여행도 마찬가지다. 온천과 사찰, 고성(古城), 신사(神社) 등 유명한 관광지로만 다닐 필요가 없다.

 

서울의 북촌·서촌·익선동처럼 오사카와 교토에서도 골목길의 감성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물론 서울의 골목과는 색다른, 오묘한 감성이다. 오사카에서는 나카자키초(中崎町)가 최근 관심을 끄는 골목이다. 이곳에선 오사카의 번화가인 난바·신사이바시 지역, 우메다 지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0세기 초중반 일본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골목이 등장한다. 오래된 일본 가정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대표적인 서민 골목이었던 덕분에 이곳은 폭격을 피하면서 옛날 모습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다.

 

골목 자체가 우리나라의 카페거리처럼 온통 현대식 가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카페는 오래된 집 사이에 마치 진주처럼 드문드문 박혀 있다. 주민들이 살고 있다. 전형적인 주거 골목이다. 이층 일본식 가옥 사이로 전봇대가 지나가고, 집 앞에는 자전거가 한 대씩 서 있다. 화분들도 집 밖에 나와 있다.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소품이다.

 

카페라고 여겨지는 예쁜 가게도 들여다보면 절반 정도는 미용실이다. 일본에서는 헤어살롱으로 불린다. 인건비가 비싸, 한두 명이 직접 운영하는 헤어살롱이 이 거리에 자리 잡았다. 가게가 예쁘면 머릿결도 예쁘게 만져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손님을 끄는 요인이라고 한다. 나카자키초의 헤어살롱에는 평일 점심 이전에도 손님들이 보인다.

오래된 골목길 ‘숨겨진 보석’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오사카 나카자키초의 카페 ‘살롱 드 아만토’.

이 거리에서 처음 카페를 열었다는 ‘살롱 드 아만토’(Salon de A ManTO)를 찾았다. 지붕에서부터 창까지 덮은 담쟁이덩굴이 특이하다. 100년이 넘는 목조가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아만토는 천인(天人)이란 뜻이다. 한 예술가가 만든 이 카페가 나카자키초만의 독특한 골목 풍경을 만들어냈다. 민가와 카페가 공생하는 거리다. 이런 골목이 형성된 것을 보고, 주위로부터 노하우를 묻는 문의가 많다고 한다.

 

아만토 카페의 직원은 한국에서 취재를 왔다는 이야기에 단 1분의 포토타임을 줬다. 가게를 열기 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페 안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나왔다. 수동 타자기와 자명종 시계, 낡은 화장대 등 세심하게 마련한 소품이 100년 전의 일본으로 데려다준다. 일본 카페의 특징은 디테일이다. 섬세한 소품 하나하나가 그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골목에서 청소를 하는 대학생 2명을 만났다. 이 골목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할 계획인데 미리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현대식 가게 운영자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이 거리의 다른 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커피를 주문받은 카페 주인은 중년의 여성이다. 다른 카페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다. 번잡한 번화가보다 이런 고요한 거리의 카페에서 호젓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나카자키초만 한 곳은 없다.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오사카 가라호리의 다코야키 가게.

가라호리(空堀)도 나카자키초와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골목이 됐다. 이곳 역시 태평양전쟁 당시 공습을 받지 않은 곳이다. 1900년대 초의 일본식 옛 목조가옥인 나가야(長屋)를 개조한 카페와 잡화점이 들어서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렌(練)이다. 가죽 공방과 카페, 잡화점 등 15개의 가게가 목조건물로 연결돼 다닥다닥 붙어있다. ‘나투코코’(natu coco)라는 카페에 들렀다. 밖에는 일본식 정원이 보이고, 실내에는 오래된 저울, 쌍안경 등 20세기 초의 소품들이 가득 차 있다.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카페에서 한국인 20대 여행객을 만났다. 그는 “오사카에 함께 여행 온 친구는 번화가인 난바에 갔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조용한 곳을 찾다가 ‘숨은 명소’인 이곳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취재진을 안내한 가이드는 “블로그의 힘”이라고 귀띔했다. “요즘은 오사카의 유명 관광지를 무작정 찾는 것보다 이곳처럼 ‘숨겨진 보석’을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아보고 오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20대 여행객이 원했던 것처럼 마치 10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골목이 가라호리에서는 계속 펼쳐진다. 한국의 뜨는 골목들처럼 이곳에서도 곧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궁금해졌다. 일본정부관광국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는 지역 개발을 위한 클럽(부동산 회사)이 있다고 한다. 이 회사가 임대 계약을 관리한다고 했다. 지역 활성화가 우선적이며, 재임대 계약을 할 경우 엄선해 입주 업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카페가 어우러지는 골목의 현재 모습이 뒤늦게 이해됐다.

 

골목길을 굽어 돌면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같은 가라호리 상점가가 등장한다. 가라호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마치 덤처럼 주어지는 골목이다. 양쪽으로 온갖 ‘길거리 음식’이 입맛을 유혹한다.

 

자유롭게 이런 한적한 골목을 쏘다니기에는 오사카 주유패스가 필수다. 전철과 버스를 하루 동안 무제한 승차할 수 있고, 관광 명소 35곳 이상이 무료다. 25개 시설과 73개 가게에서는 할인 혜택이 있다.

100년 된 찻집 개조한 ‘핫플레이스’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100년 된 찻집을 개조한 교토 블루보틀.

교토 역시 골목길 여행이 제격이다.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도 골목길에서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기온이 대표적이다. 옛날 요정이 있던 거리였다. 중심 거리에는 전통 공예품과 과자, 차를 파는 가게가 차도의 양쪽에 나란히 있다. 기모노를 빌려 입고 골목을 누비는 젊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유독 눈에 띈다.

 

중심 거리에서 골목은 남쪽과 북쪽, 양쪽으로 갈래갈래 뻗어있다. 하나미코지도리에 들어서면 수백 년 전 일본 거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고색창연한 2층 목조건물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고급음식점 거리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정갈한 모습에는 나름대로 품격이 있다.

 

반면 하나미코지도리의 건너편은 다소 신분이 낮은 사람이 다니는 골목이었다고 한다. 아주 좁은 골목도 보인다. 골목을 지나가면 시라카와라는 작은 내(川)가 나타난다. 다리 위는 사진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다. 냇물이 굽어 흐르면서 사진 한 장 안에 나무와 냇물, 오래된 집이 한꺼번에 잡힌다. 다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재일교포는 “봄에 오면 주변이 온통 벚꽃이라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시라카와 미나미도리의 카페는 바로 옆에 냇물이 흐르고 있어 그 자체로 운치가 있다. 달이나 네온사인이 비치는 야경이 특히 일품이다.

 

계속 걸어가면 가모강에 다다른다. 다리를 넘어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강변을 따라 골목이 펼쳐진다. 기야마치도리라는 이 골목 역시 시라카와 미나미도리와 견줄 만하다.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교토 니시키 시장의 먹거리들.

내친김에 교토의 전통시장인 니시키 시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의 부엌’이다. 생선과 건어물, 청과물, 반찬 등을 파는 140여개의 점포가 모여 있다. 400m에 이르는 시장 길을 찾아 들어가면 갖가지 우동과 다코야키 등 일본의 거리 음식이 진열돼 있다.


고도(古都)라고 해서 오래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여행객이 현대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교토의 블루보틀이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곧 첫 매장을 선보일 예정인 블루보틀은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교토의 블루보틀은 100년 된 일본 찻집을 개조했다. 옛 가옥의 매력과 블루보틀의 현대식 디자인이 조화를 이뤘다. 어느 방향에서든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하나의 작품이 될 법한 풍경이다. 마치 한옥의 스타벅스 매장을 연상시킨다.

작은 길 사이사이 나만 알고 싶은 숨

히라카타의 복합문화공간 ‘티사이트’.

교토와 오사카 사이에 있는 히라카타의 ‘티사이트’(T-Site)도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에 속한다. 쓰타야 서점이 일본에서 세 번째로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책과 함께 여러 취향의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형서점 변신의 모델이 된 곳이다. 온갖 책과 전자제품, 음반, 비디오 등이 널려 있다.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로 모두 43개의 매장이 있다. 거대한 책꽂이에 책이 가득 꽂혀 있어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 자체로 시선을 압도하게 만든다.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JNTO)

오사카·교토(일본) |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2019.03.0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