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냐” 죽고 싶을 만큼 묻고 또 묻고는…죽지 않을 만큼 줘요

[이슈]by 경향신문

과도한 서류 요구, 신청 때마다 문전박대, 불쾌한 현장 조사…

174만여 기초수급자들, 끝 모를 ‘증명’ 요구에 “죄인” 위축

경향신문

자활근로를 하는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 김대영씨(44·가명)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반지하 전세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31일부로 조건부 수급기한이 끝나면 김씨의 생계는 막막해진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기초생활수급자의 눈물

7년. 이지훈씨(53·가명)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며,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을 앓고 있다. 장애와 병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늘 생활고에 쪼들렸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임대주택에서 그를 만났다. 이씨 집 부엌엔 물기가 없었고 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없는 방 구석에 이불만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했다. 가구가 없어 아직 이사하지 않은 집 같았다. 이씨의 휴대전화만이 충전기를 물고 깜빡이고 있었다.


이씨는 2010년부터 기초수급을 4차례 신청한 끝에 2017년 겨우 선정될 수 있었다. 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인 부모의 재산과 농지가 기준 이상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모는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았기에 이씨는 기초수급을 신청했다. 이씨는 매번 부모를 설득해 가까스로 서류에 사인을 받았다. 이씨가 3번째 신청하러 주민센터를 찾아갔을 때 담당 공무원은 “어차피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안된다”고 소리지르며 서류 접수조차 거부했다. “주민센터에 가면 늘 문전박대였어요. 왜 서류도 못 내게 하는지 몰라요. 그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이씨가 준비해야 할 서류는 많고 복잡했다. 기초수급에는 사회보장급여신청서,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 제적등본, 임대차계약서, 소득·재산 확인서류, 신분확인서류 등을 요구했다. 점자로 된 서류가 없으니 시각장애인 이씨는 서류를 준비할 때부터 고생이었다. 이씨는 “나중에 사인만 받을 수 있도록 주민센터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신청서류 대부분을 작성했다”며 “시민단체 도움을 받아 서류를 모두 갖추는 데 2주 정도 걸렸다”고 했다.


이씨가 달마다 받는 돈은 생계급여, 주거급여, 장애인연금 등 모두 86만원 정도다. 미래를 꿈꾸기 힘든 액수다. 이씨는 매달 3~4번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갈 때 이용하는 ‘장애인 콜택시’ 비용 5000원도 걱정된다고 했다. 이씨는 “이것저것 내고 나면 돈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며 “경조사는 아예 갈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1월 10년 동안 살던 도림동의 쪽방을 떠나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급하는 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당시 그는 “어떻게 나에게 이런 기적이 생기냐”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씨는 보증금을 내는 데 저축한 돈을 거의 다 썼다. 이씨는 주민센터에서 냉장고를 지원받고 세탁기와 에어컨은 10개월 할부로 샀다. 이씨는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샀는데 돈을 한참 갚아야 할 것 같다”며 “생계급여가 물가 인상률을 따라가지 못하니 살 수가 없다”고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7년 한국을 덮친 ‘IMF 외환위기’ 때문에 태어났다. 실업과 빈곤이 심각해지자 국회가 1999년 9월7일 제정했고 2000년 10월1일 시행됐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부모·자녀·배우자 등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더라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소득과 재산을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30~50% 이하여야 한다.


올해 기준 1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170만7008원이다. 기초수급자로서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월 소득이 중위소득의 30%인 51만2102원 이하여야 한다. 지난해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기초수급을 받은 사람은 174만3690명이다. 한국인의 약 3%가 기초수급에 의지해 삶을 지탱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만난 수급자들은 이씨처럼 자신의 빈곤을 끝없이 증명하는 데 지쳐 있었다.

생존이 전부인 ‘아마존 복지’

다른 수급자는 한국 복지제도를 ‘아마존 복지’라고 했다. 아마존 정글처럼 ‘생존’만이 가능한 복지라는 뜻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반지하방에서 만난 김대영씨(44·가명)는 지역 자활센터에서 자활근로를 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 ‘조건부 기초수급자’였다. 김씨는 3월31일부로 조건부 수급 기한이 끝나 막막한 상황이었다. “수급이 끝나고 나면 미래가 없어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단순노동만 하니까요. 그만두면 갈 수 있는 다른 일자리가 없지요.”


울산에서 살던 김씨는 사업에 실패한 뒤 채권자들을 피해 서울로 도망쳐 10여년 동안 행려자로 살았다. 떠돌이 생활에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병을 얻었다. 김씨는 동자동에 있는 월세 22만원짜리 쪽방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절반씩 방을 나눠 썼다. 이후 ‘룸메이트’가 떠나면서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김씨는 시민단체 ‘홈리스행동’과의 상담에서 기초수급제도를 알게 됐다. 10여년 행려자 생활 동안 아무도 김씨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알려주지 않았다. 김씨는 “수많은 무료급식소와 기도원을 전전했지만 누구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당장 월세가 없다고 해도 ‘기도하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3년 12월에 말소돼 있던 주민등록을 재등록하고 조건부 기초수급을 신청했다. 신청 절차와 서류가 복잡해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김씨는 “필요한 서류 내용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며 “제가 한글이 좀 부족해 신청서류는 거의 홈리스행동에서 대신 작성해줬다”고 말했다. 심사기간 동안 김씨는 광고지 아르바이트로 하루 1만~2만원을 벌어 연명했다.


김씨는 2014년 6월부터 자활센터에서 농산물을 재배·판매하는 자활근로 중이다. 근로를 하지 않으면 지원금이 끊긴다. 김씨가 달마다 받는 생계급여와 자활급여는 모두 120만원 남짓이다. 이 돈으로는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할 수 있을 뿐 미래를 위한 저축은 어렵다. 지난해 6월 김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지원금에다 친척에게서 빌린 400만원을 더해 반지하에 전세방을 얻었다. 수급이 끝나는 31일 친척에게 400만원을 갚고 나면 김씨의 통장 잔액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수급자에게 가해지는 ‘빈곤의 형벌’

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는 한국도시연구소의 연구 지원을 받아 지난 19일 ‘공공부조의 신청 및 이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빈곤의 형벌화’ 조치 연구’를 발표했다. 수급자 8명과 인권단체 활동가 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급권자가 기초수급 신청을 꺼리거나 탈락 이후 자기구제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는 엄격한 자격조건, 지나친 조사, 낮은 보장수준, 미비한 정보 등 때문이었다. 유엔은 빈민에게 필요한 사회복지의 자격조건·조사의 강화를 ‘빈곤의 형벌화’ 조치로 분류하고 있다.


수급권자들은 과도한 신청서류 준비와 방문조사에 불쾌감을 토로했다. 기초수급을 받으려면 수급권자 본인뿐 아니라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까지 내놓아야 한다. 수급자 ㄱ씨는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이 이용하는 카드 11개의 은행을 일일이 찾아갔다고 했다. ㄱ씨는 “떼어야 하는 서류 목록이 너무 많더라. 동사무소 가고, 구청 가고, 어디를 가야 한다는데 엄두가 안 났다. 서류 떼는 것만 해도 한 달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서류 뗄 때는 정말 죄인 같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고령이고, 학력이 낮으며, 장기간 빈곤 상태에 놓여 있던 이들은 특히 신청서류를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ㄴ씨는 수급신청을 위해 필요한 주민등록증이 없어 증명사진을 찍을 6000원을 담당 공무원에게 개인적으로 빌리기도 했다. “가진 게 정말 하나도 없으니까 수급자가 되려는 건데 돈이 또 필요한 거예요.”


“요구 서류 너무 많아…죄인 된 듯”

서류 제출하면 방문조사도 2차례

가난한 이유 등 캐물어 ‘수치감’


서류를 제출하면 수급권 보장 여부를 결정하기 전 방문조사가 이뤄진다. 방문조사는 생활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1차례,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LH에서 1차례 진행한다. 근로능력평가를 받는 수급신청자는 국민연금공단의 1차례 조사가 더해진다. 수급자격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난해진 이유’ 등 개인적이고 내밀한 질문이 반복되기도 한다. ㄴ씨는 “계속 물어보니까 그때마다 정말 죽고 싶고 주눅이 들었다”며 “‘너는 수급자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ㄷ씨는 “사실 그렇게 수치스러워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섭섭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일을 할 수 있는데 놀고먹으려는 사람처럼 취급했다”고 말했다.


높은 선정기준과 낮은 보장수준은 수급자가 ‘탈빈곤 없는 탈수급’을 반복되게 한다. 여전히 빈곤한 상태로 수급이 끊기는 상황을 뜻한다.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은 ㄱ씨는 빈곤과 오랜 도피생활로 여러 병을 앓고 있다. 취업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혹시라도 소득이 중위소득 기준을 넘으면 수급에서 탈락한다. 서류 준비와 재신청을 걱정한 ㄱ씨는 결국 취업을 포기했다.


“담당 공무원도 무시하는데

주변 사람들 시선은 오죽할까”

신청 주저하고, 알려질까 ‘끙끙’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다. 연구에 참여한 수급자들은 대부분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나 이웃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동주민센터 등 보장기관에서 정보를 얻은 경우는 없었다. 400여장짜리 기초수급 사업안내서에는 법률 용어들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이의신청할 권리가 있다는 정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ㄹ씨는 “나이 드신 분들이 계신데 법률 용어들이 어려워 저도 대여섯번은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ㄷ씨는 “제 자신이 무식한 게 답답했다. 이의신청을 할 수 있었는데 말 한마디 못했으니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기초수급 안내서는 400장 ‘훌쩍’

주민센터서 신청 정보 얻기보다

대부분 비슷한 처지 ‘알음알음’


기초수급자라는 ‘낙인’은 신청을 더 주저하게 한다. 낙인은 기초수급을 신청하고 지원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찍힌다. ‘남을 속인다’ ‘놀고먹는다’는 시선을 겪은 빈곤층은 스스로 편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ㄱ씨는 자신이 수급자라는 것을 이웃이 알면 자녀가 차별을 당할까 두렵다. 동주민센터에서 ‘기초수급자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할 때도 문을 닫기 직전에 혼자 조용히 찾는다. 정부에서 저소득층에 공급하는 쌀 ‘나라미’를 몇 개월 동안 받지 않기도 했다. 장애인인 ㄹ씨는 주변의 편견에도 열등감이 없었는데 수급자가 되면서 자격지심이 생겼다고 했다. “누가 기초수급자라고 주변에 말하겠어요. 담당하는 공무원도 무시하는데 일반인들은 속으로 얼마나 더 무시를 하겠어요. 수급자가 아닌 척하고 다니는데 되게 피곤해요. 어려운 사람 아닌 척하는 것이….”

OECD 주요국 ‘공공부조’ 어떻게

미국, 재산 2000달러 초과 땐 대상 제외…

스웨덴, 수급액이 ‘생계비 이하’ 땐 추가 지원


공공부조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해외 선진국은 어떻게 공공부조를 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4~2015년 ‘각국 공공부조제도 비교연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인 일본, 스웨덴, 프랑스, 미국 등의 대표적인 공공부조를 평가했다.


일본의 생활보호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두는 등 한국과 비슷한 면이 많다. 국가의 보호에 앞서 개인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생활보호제도 피보호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가정의 최종 수입이 인원·연령·지역을 고려해 산출한 ‘최저생활비’ 미만이어야 한다. 그 차액이 보호비용으로 지급된다. 생활보호를 받기 전에 보유한 자산을 최저생활 유지를 위해 우선 활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신체장애인을 제외하고는 자동차를 보유할 수 없다. 귀금속도 환금성이 높아 매각해야 한다.


미국은 보충적소득보장제도(SSI)를 운영한다. 소득이 낮은 장애인, 완전 또는 부분 시각장애인, 65세 이상의 노인, 질병으로 1년 이상 노동이 불가능한 자, 질병으로 사망이 예상되는 자에게 현금을 지원한다. 미국 시민권자 또는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이 수급 신청 대상이다. 재산에는 현금, 부동산, 예금액, 주식, 저축증서가 포함되는데 1인 기준 2000달러(약 227만원)를 초과하면 수급받지 못한다. 다만 이용 차량 1대와 1만5000달러 이하 본인과 배우자의 장례비는 재산에서 제외한다.


프랑스의 주요 급여인 활동연대수당(RSA)은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신청자 가구의 자산이 일정 수준 이하면 수급 자격이 있다. 수급 대상은 25세 이상이지만 미만이라도 자녀가 있거나, 최근 3년 중 2년 이상 직업활동을 했다면 근로 의지가 있다고 인정돼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기본형’은 독신 1인 가구 기준 근로소득이 전혀 없거나 500유로(약 64만원) 미만인 자가 대상이다. ‘취업형’은 500유로 이상의 근로소득이 있지만 최저생활을 유지하기에는 불충분한 경우가 해당한다.


스웨덴의 ‘경제적 지원(Ekonomiskt bistand)’ 제도는 다른 소득보장 프로그램의 수급을 못 받거나 수급을 받더라도 총금액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가구에 현금을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인 ‘코뮨’이 운영하는데 ‘기초생계지원’과 ‘추가생계지원’으로 나뉜다. 기초생계지원은 중앙정부가 필수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최소 지원금인 국가표준지원금을 지급한다. 정부의 기준은 식료품, 의료, 여가, 소비용품, 건강, 방송통신 등 6가지다. 추가생계지원은 개인의 상황에 맞게 수준이 책정된다. 주거비, 전기료, 통근비용, 가족보험, 노동조합비, 실업급여 등이다.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부조는 사회의 ‘최후 안전망’일 뿐”이라며 “이보다 앞서 국민 대다수를 폭넓게 지원하는 복지제도로 빈곤층 자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2019.04.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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