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빙하 바다로 끌고 가는 ‘물귀신’…그린란드 호수 ‘온난화 폭탄’ 되나

[테크]by 경향신문

지구 운명 쥔 ‘얼음섬’ 무슨 일이…

수영장 2000개에 담을 수 있는 물

5시간 만에 바닥 틈새로 빠져나가

빙하 흐름에 윤활유…속도 두 배로

누수 확산되면 해수면 상승 재촉

요동치는 그린란드에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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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여름에 수천개가 생기는 그린란드 빙하 표면의 호수. 호수 바닥에 균열이 생겨 누수된 호숫물이 대륙 빙하를 바다로 밀어낸다. 우즈홀해양연구소 제공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터키블루’ 색상의 호수가 새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진다. 동물도 식물도 없는 땅에서 단 두 가지 색으로 이뤄진 생경하며 경이로운 풍경이다. 남한의 22배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며 이름과는 정반대로 전체 면적의 80%가 얼음으로 뒤덮인 곳, 그린란드다. 올해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매입 의사를 강하게 밝혔을 만큼 이 땅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북미와 유럽, 러시아를 지척에 둔 전략적인 요충지로 평가받는다.


사실 그린란드의 진짜 가치는 다른 데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남극과 함께 지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현재 그린란드에서 녹고 있는 빙하 때문에 1년에 1㎜씩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으로 진단한다. 언뜻 적어 보이지만 같은 속도로 계속 녹는다면 10년이면 1㎝, 100년이면 10㎝ 수위 상승이 생긴다. 수백만년, 수천만년이 예사로이 언급되는 지질학적 개념으로 본다면 실로 ‘찰나의 순간’에 해수면이 엄청나게 상승하는 셈이다. 만약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해수면 상승폭은 무려 6~7m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세계 곳곳의 해안 도시가 잠기는 것을 넘어 우리가 아는 세상의 상당수가 사라진다.


그런데 케임브리지대 등으로 이뤄진 영국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를 통해 그린란드에서 우려스러운 사실을 관찰했다고 발표했다. 그린란드 땅 위에 올라와 있는 빙하, 즉 ‘대륙 빙하’를 바다로 떠미는 자연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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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빙하가 바다로 떠밀리는 게 왜 걱정스러운 일일까. 콜라를 가득 채운 유리잔에 얼음을 넣으면 늘어난 부피 때문에 콜라가 잔 밖으로 넘치고 만다. 비슷한 원리로 땅 위에 있던 대륙 빙하가 바다로 새로 유입되면 해수면은 높아진다. 대륙 빙하가 가진 잠재적인 위험성이다. 반면 현재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이미 해수면에 부피가 반영돼 있기 때문에 녹는다고 해도 해수면을 추가로 높이진 않는다.


이런 대륙 빙하를 바다로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이 이번에 발견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지목한 건 바로 그린란드의 호수 물이다. 그린란드에서는 매년 봄과 여름이 되면 빙하 표면에 호수 수천개가 생긴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그린란드 빙하 위에 형성된 여러 개의 호수 가운데 ‘028 호수’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을 목격했다. 호수 안에 고여 있던 물 가운데 무려 500만㎥가 호수 바닥에 생긴 틈새로 단 5시간 만에 빠져나갔다. 깨진 바가지처럼 원래 고여 있던 호수 물의 60%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빠져나간 물은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2000개에 담을 수 있는 양으로 막대했다.


문제는 빠져나간 호수 물이 만든 결과다. 그린란드의 대륙 빙하와 빙하를 머리에 이고 있는 기반암 사이로 호수 물이 비집고 스며들면서 빙하가 하늘 방향으로 살짝 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아스팔트 도로 표면에 완전히 달라붙지 못하고 빗물에 뜨는 수막 현상과 비슷한 일이 그린란드의 빙하 아래에서 생긴 셈이다. 빙하가 ‘공중 부양’한 높이는 무려 5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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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으로 관찰한 올해 5월 30일(왼쪽)과 6월 1일의 그린란드 ‘028 호수’ 모습. 이틀 만에 현격하게 물이 줄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 제공

이 현상은 기반암과 빙하 사이의 마찰을 줄였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바닥으로 새버린 호수 물이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바다 쪽으로 이동하던 빙하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버렸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하루 2.1m씩 움직이던 주변 빙하의 흐름이 하루 4.9m로 두 배 이상 껑충 뛴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연구를 주도한 토마스 추들리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기반암 밑에 고속도로가 깔린 것과 비슷한 일이 생겼다”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호수 물이 빙하 아래로 스며드는 일은 10여년 전부터 관찰됐다”며 “이 현상이 꾸준히 가속화되면서 올해에는 굉장히 큰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수 물이 빙하 아래로 새는 현상은 주변 호수들 사이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다. 한 개 호수의 바닥에 금이 가 물이 새기 시작하면 주변 호수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무려 100㎞ 떨어진 곳의 호수끼리도 이런 호수 물 누수 현상이 ‘전염’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호수 물이 빙하를 바다로 밀어내는 현상이 있긴 하지만 해수면 상승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과학계에선 아직까지 IPCC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의 강력한 증거가 제시되진 않았다는 시각이 나온다. 하지만 영국 연구진은 누수된 호수 물의 영향을 IPCC가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서늘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린란드 호수가 해수면 상승의 변수가 될지에 과학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2019.12.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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