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돌아온 '시녀 이야기', 전체주의 국가를 전복하는 '증언들'로 돌아오다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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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의 한 장면. 훌루 제공.

드디어 하얀 보닛에 빨간 옷을 입은 여성들의 후예가 돌아왔다. 보닛을 벗어던지고,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해온 체제를 한 방에 날려버릴 비밀을 품고 왔다. 지난해 10월 출간 후 뜨거운 돌풍을 일으키고, 부커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까지 인정받은 마거릿 애트우드(81)의 <증언들>이 한국에도 출간됐다. <증언들>은 미국에서만 50만부의 초판을 찍고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서점가를 휩쓸었다. <증언들>을 구매하기 위해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증언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우리의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평을 들으며 지난해 부커상을 공동수상했다. <증언들>의 인기와 성취에 대해서라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증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1985년 출간된 <시녀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시녀 이야기>는 미국에 세워진 가상의 전체주의적 국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철저하게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충격적인 설정으로 들려주며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17년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돼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고, ‘미투 운동’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얀 보닛에 빨간 옷을 입은 ‘시녀’의 복장은 아르헨티나, 헝가리, 아일랜드, 폴란드 등지에서 낙태죄 폐지 등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3번의 개정판을 내고 10만부 이상 팔리며 인기를 얻었다.


영문판 누적 판매부수만 1000만부에 육박하는 등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시녀 이야기>들이 있기에, 34년 만에 쓰인 후속작 <증언들>에 더 뜨거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애트우드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필력과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며 기대에 부응한다.


<시녀 이야기>가 ‘시녀’ 오브프레드를 중심으로 시녀들이 만들어지고 착취당하는 과정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증언들>은 광기에 휩싸인 독재국가 길리어드 정권의 비밀과 이에 맞서는 비밀 조직과 여성들의 투쟁을 들려준다. 전작에서 길리어드를 탈출한 오브프레드는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 <시녀 이야기>가 충격과 함께 숱한 질문들을 남겼다. 애트우드는 “길리어드는 어떻게 붕괴했는가? <증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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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를 르네 놀트가 그리고 각색해 그래픽노블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래픽노블 <시녀 이야기>의 한 장면. 황금가지 제공

빨간 옷의 ‘시녀’들 대신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들이 입는 초록 옷을 입은 여성, 길리어드의 여성들을 통제하는 ‘아주머니’ 계급인 갈색 옷을 입은 여성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시녀 이야기>에서 오브프레드가 탈출한 지 15년 후, 길리어드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세 명의 여성의 증언이 교차되면서 길리어드를 둘러싼 안팎의 이야기와 이를 전복하기 위한 비밀스러운 투쟁이 펼쳐진다. 전작에서 악명 높은 교육자로 나오는 리디아 ‘아주머니’가 증언자 가운데 하나로, 그는 전직 판사 출신의 지식인으로 길리어드의 여성을 구속하기 위한 시스템을 ‘창설’한 멤버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살기 위해 길리어드에 부역했지만, 부패한 권력자들의 치부, 모략 등을 상세히 기록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를 통해 길리어드가 만들어진 과정과 부패를 보여준다면, 또 다른 증언자 데이지는 길리어드 국외의 상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데이지는 길리어드의 테러에 의해 부모를 잃고, 길리어드를 붕괴시킬 비밀 임무를 띠고 길리어드 내부 잠입을 시도한다. 마지막 증언자는 아그네스다. 아그네스는 자신이 ‘시녀’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최고 사령관과 강제 결혼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아주머니’가 되길 택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준다”는 부커상 심사위원장 피터 플로렌스의 말처럼, <증언들>이 그려내는 디스토피아 길리어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길리어드에 묘사된 세상은 터무니없는 공상이나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길리어드의 조혼, 대리모 문제는 아프리카, 인도 등 ‘제3세계’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이며, 여성에게 재생산 기능만을 강조하며 낙태와 유산을 죄악시하는 규범은 ‘낙태죄’를 둘러싼 논란을 시사한다. 소아성애자인 치과의사는 소녀들을 성추행하고 강간하지만, “소녀들의 증언은 효력이 없거나 미약”하다. <시녀 이야기>가 낙태죄 폐지와 미투 운동의 상징적 기호로 등장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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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황금가지 제공

길리어드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재상산’ 기능에 귀속된 삶을 산다. ‘대리모’로 쓰이다 폐기되는 ‘시녀’ 계급이 극단적인 경우라면, 지배계급인 사령관의 아내들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순종하도록 교육받은 이들은 열세 살만 되어도 높은 계층의 사령관과 결혼하는 ‘조혼’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들은 성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올바로 제공받지 못한 채 공포심을 품도록 교육되고,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만이 신분 상승과 유지를 할 수 있는 수단이다. 메이데이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길리어드를 탈출한 여성들은 난민이 되지만, 국제사회는 이들을 받아주길 꺼린다. 전쟁과 환경오염의 영향으로 인한 출생률 저하 등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다. 전체주의 국가 지배계급이 서로 결탁하고 배반하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애트우드는 “전체주의는 집권 과정에서 한 약속을 계속 어기는 과정에서,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증언들>은 흥미진진하다. 교차하는 세 여성을 통해 직조하는 이야기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에 책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진다. 각설하고, <증언들>을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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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강행하기 위해 의회를 휴회하자 ‘시녀’ 복장을 한 여성들이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속 구절을 인용해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황금가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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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600쪽|1만5000원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2020.01.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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