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불멸과 사후생 아바타…과연 치유일까, 다른 상처일까

[컬처]by 경향신문

MBC 스페셜 ‘너를 만났다’ & 넷플릭스 ‘블랙미러 - 돌아올게’


‘3년 전 보낸 딸 한 번만이라도…’

VR 기기 쓴 엄마 가상의 재회

짧은 천국 이후 삶은 어떤 영향?

죽은 남편 디지털 아바타로 소환

이상한 위안 받지만 복제품일 뿐

장밋빛 기술은 절망의 경고로


망자의 정보·디지털 기록 토대

디지털 사후세계 사업은 눈앞에

죽음의 슬픔과 혼란을 상업화

여전히 윤리적 규제 밖의 문제


불멸을 향한 욕망은 더 커지고

가상현실 기술은 더 진화할 것

디지털 사후는 ‘계획대로’ 될까


MBC 특집 가상현실(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선한 기술을 지향한다. 제작진은 3년 전 희귀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7살 아이를 떠나보낸 가족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고 말한다.


네 아이의 엄마였던 장지성씨는 3년 전 가을, 7살 된 셋째 딸 나연을 떠나보냈다. <너를 만났다>는 가상현실과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이용해 세상을 떠난 아이를 디지털로 구현해 엄마와 떠난 아이가 다시 만나는 프로젝트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프로그램은 가상현실에서 아이를 실감 나게 구현하기 위한 과정을, 아이를 떠나보낸 가족의 일상과 교차해 보여준다. 여섯에서 이제 다섯이 된 가족의 일상에는 떠난 아이의 기억이 불쑥불쑥 끼어들어 온다. 그것은 결국 ‘삶은 기억’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갑작스럽게 떠난 망자를 다시 만나 위안을 얻고 싶다는 가족과 시청자의 갈망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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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VR) 기술력과 휴먼 다큐멘터리의 결합으로 시청자의 호평을 이끌어낸

제작진은 가상현실 속 나연을 실제 모습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가족들의 휴대전화 속 사진과 동영상에 저장된 표정, 목소리, 말투, 몸짓을 분석한다. 비슷한 또래 아이 5명을 동원해 800문장을 녹음하고 10시간 분량의 데이터를 만든 뒤 딥러닝(인공신경망 기반 기계학습)을 통해 나연의 목소리를 만든다. 나연과 비슷한 모델의 얼굴과 몸을 3D 스캐닝으로 촬영해 기초 모델을 만들고, 남아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참조해 얼굴, 체형, 피부, 표정, 동작 등을 리터칭한다. 또한 가상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나연의 표정과 동작을 만들기 위해 나연의 움직임을 모사한 연기자를 실시간 캡처한다.


전체 53분의 러닝타임 중 엄마 장지성씨가 나연을 만나는 장면은 마지막 약 10분가량이다. 장씨는 고글과 장갑 형태의 VR기기를 착용한 채 가상공간에 접속한다. 제작진이 만들어낸 가상공간은 일상과 닮았다기보다 꿈속의 어떤 장면 혹은 천국에 가까워 보인다. 장작더미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하고 부르며 나타나는 모습은 분명 모두의 마음을 흔든다. 아이는 그곳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생일 축하 파티를 하고, 아이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다는 미역국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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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후세계와 관련한 상상을 드라마로 만들어낸 넷플릭스의 '블랙미러'시리즈 시즌2의 첫 에피소드 ‘돌아올게’의 한 장면.

VR로 구현된 아이는 SF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 실제와 소름 끼치게 닮은 모습은 아니다. VR게임 속 캐릭터에 가깝다. 실제 아이와 가까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지만, 정해진 대사를 수행하고 있을 뿐 상호작용이 가능한 대화 역시 아니다. 아이를 향해 간절히 손을 뻗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 장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났다>가 되살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마지막 씻김굿과도 같은 가상의 기억은 가족들의 남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후생 아바타

디지털 버전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를 한번만 다시 만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잃은 자가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힘들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따르며, 비즈니스는 인간의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망자의 SNS 계정과 같은 디지털 유해가 인터넷 공간에 쌓여가며, 한 인간의 빅데이터가 디지털 세계에 산재하는 세상에서 ‘디지털 사후세계’(디지털 망자, 디지털 추모, 디지털 불멸…) 관련 사업은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사후세계와 관련한 상상이 늘 선하고 희망찰 수는 없다.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시리즈 시즌2(2013)의 첫 에피소드 ‘돌아올게(Be right back)’는 보다 절망적인 디지털 불멸을 다룬다.


‘돌아올게’는 사고로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주인공 마사가 죽은 남편 애쉬의 디지털 아바타와 상호작용하는 이야기다. 마사는 처음에는 남편의 SNS 등 디지털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존재 챗봇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만 점차 그것이 주는 이상한 위안에 빠져든다. 이 디지털 아바타는 주기적으로 마사로부터 죽은 남편의 데이터를 더 끌어내고, 마사는 자신의 휴대폰에 남아있는 그의 동영상 등 음성파일들을 전송해 그와 통화까지 하게 된다. 나아가 (아마도) 고가의 실물 인형을 집에 들이는 데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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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너를 만났다'는 오는 3월12일 방송을 통해 제작 과정 뒷이야기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마사는 그 가상의 복제품이 결코 애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넌 그냥 애쉬의 잔물결일 뿐이야. 너한테는 과거가 없어. 너는 아무 생각 없이 애쉬가 했던 행동들을 재현할 뿐이고 그걸로는 한참 부족해.” 결과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마사는 사랑했던 그와 너무 닮은 가상의 존재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으스스한 상황에 빠진다.


‘돌아올게’가 처음 공개된 2013년만 해도 이 소름 끼치는 기술은 그야말로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제 드라마는 거의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미 디지털 사후세계 사업에 뛰어든 많은 기업들이 있다. 미국의 ‘이터나임(Eterni.me)’은 망자의 개인 정보와 SNS 등 디지털 기록을 토대로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대화형 AI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터나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디지털 불멸을 유혹하는 문구들이 가득하다.


“가상공간에서 불멸이 되세요. 이터나임은 당신의 생각, 이야기, 기억을 모으고 그것을 선별해 당신과 닮은 아바타로 만듭니다. 이 아바타는 영원히 살 것이며 미래에 당신에 대한 기억에 다른 사람들이 접속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제기되는 것은 죽음의 슬픔과 혼란에 빠진 이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산업에 대한 윤리적 규제 문제일 것이다. 마사의 슬픔을 이용해 점점 더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부추기는 ‘돌아올게’의 서비스업체처럼,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스테이지 2019 <굿바이 나의 보험>의 ‘이모털 아카이브 랩’도 고객의 약한 구석을 파고든다. <굿바이 나의 보험>은 그 지점에서 이야기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드라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 김(최덕문)이 혼자 남을 아들을 위해 자신과 똑같은 사고 패턴을 가진 AI 디지털 아바타를 만드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SF물인데, 디지털 아바타가 자신이 숨겨온 아내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자신이 죽은 뒤 아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조금 방향을 튼다. 업체는 그에게 리터치 프리미엄 서비스를 권하고 김은 덮어쓰기 도중 쓰러져 사망하고 만다. ‘계획성 있게’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생각한 김의 디지털 사후세계는 결코 ‘계획대로’ 가지 않는다.

디지털 불멸과 윤리

<너를 만났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잃은 많은 이들이 자신도 “한 번만이라도 세상을 떠난 가족을 만나보고 싶다”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사후세계라는 미지의 영역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온라인 추모 서비스나 디지털 사후세계 산업은 아직까지 윤리적 규제 밖에 있다. 앞으로 지금보다 많은 기업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을 디지털화하고 남은 자들의 슬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블랙미러-돌아올게>처럼 으스스한 결과를 낳을 수도, 많은 경우 <굿바이 나의 보험>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너를 만났다>에 참여한 경험이 장기적으로 나연의 가족들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제작진과 가족들의 바람대로 치유 과정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의 정신적 외상을 남길지는 아직까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상현실 기술은 점차 더 발전할 것이며, 디지털 불멸에 대한 인간의 불가능한 갈망은 커져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2020.02.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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