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에 방송가 우려먹기 또 도지네

[컬처]by 경향신문
경향신문

SBS <트롯신이 떴다> 의 한 장면. SBS

“많은 분들이 물어보는 게, ‘KBS는 왜 이렇게 프로그램을 베끼냐?’(하는 겁니다)”

“KBS는 왜 프로그램을 베끼냐?”

지난 2월부터 ‘1인 웹 예능’을 표방하며 방영된 KBS의 <구라철>에서 방송인 김구라는 ‘셀프 디스(자기 비판)’ 돌직구를 날린다. 본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KBS에 유독 타사 방송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이 세간에 퍼져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김구라가 거론한 <1박2일>·<슈퍼맨이 돌아왔다>·<불후의 명곡> 등은 그동안 타사 방송을 시작으로 각각 인기를 끌었던 리얼버라이어티, 육아 예능, 가수 경연 형식을 가져온 프로그램이었다. 따지고 보면 해당 프로그램 <구라철> 역시 최근 불고 있는 1인 진행자 중심의 웹 예능 열풍에 편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단 KBS뿐만 아니라 지상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국내 방송가에서 계속돼 온 관행이기도 하다.


최근 ‘트로트’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 경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TV조선의 <미스트롯>이 인기를 끌며 시작된 트로트 열풍은 지상파에도 상륙했다. SBS가 지난 4일 첫 방영한 <트롯신이 떴다>는 인기 트로트 가수 남진·주현미·설운도·김연자·장윤정 등이 출연진으로 나온다. 국내에서는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는 이들 가수가 해외에서 트로트곡으로 버스킹을 하며 현지인들에게선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를 담았다. 인기 출연진에 힘입어 첫 방송에서 최고 시청률 14.9%(닐슨코리아 집계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성적으로 출발했다.


이미 케이블 방송에서는 트로트를 소재로 삼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MBN <트로트퀸>과 MBC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이 나오기도 했다. 각각 프로그램의 골격은 다르지만 인기를 끄는 주제에 편승해 트로트 무대에 초점을 맞춘 화면을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또 ‘방송 따라하기’ 관행을 반복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물론 유행하는 흐름을 반영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므로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방송인 유재석이 MBC <놀면 뭐하니?>에서 신인 트로트 가수로 데뷔해 특정 연령층에서만 인기를 끌던 트로트를 다양한 세대가 즐길 수 있게 한 시도처럼 시청자들에게 여러 음악 장르를 고르게 접할 수 있게 하는 취지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특정 주제 ‘우려먹기식 방송’이 아니라 출연진의 폭을 넓히는 긍정적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젊은 연령층에 인기를 끄는 아이돌 중심 프로그램인 MBC에브리원 <주간 아이돌>에 조항조·김용임 등 중견 가수들이 출연해 트로트에 관한 인식을 개선한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과거 신인·기성가수 경연 프로그램이나 육아 예능, 쿡방·먹방 예능처럼 하나의 포맷이 인기를 끌면 비슷한 프로그램이 연달아 경쟁적으로 나오는 데 시청자들이 식상함을 느낀 경험이 반복된 바 있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물론 방송사 내부에서도 이런 관행에 대해 전보다 민감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는 있다. <구라철>에서 김구라의 ‘베끼기’ 비판 질문을 받은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은 “일부 그런 얘기를 들을 만했다”고 인정하며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음악전문 케이블 방송의 PD도 “우려먹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젊은 시청자들이 오히려 트로트 가수들에게서 참신한 인상을 받는 것도 사실이어서 결국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프로그램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 난무로 열풍 퇴색 우려

방송가 안팎에서는 트로트가 최신의 트렌드로 떠오른 배경에는 여전히 TV를 통해 방송을 보는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이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각종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눈을 돌린 젊은 시청자들에 비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TV를 시청하는 비율이 높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트로트 방송도 종래의 고루한 형식을 쇄신했기 때문에 폭넓은 인기를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평소 2%대 시청률에 머물던 MBC의 <편애중계>는 ‘트로트 신동’을 다룬 회차에선 6.2%로 시청률이 높아지며 주목을 받았다.


트로트가 한두 프로그램의 반짝 인기로 부상한 데 그치지 않고 장르 자체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갖췄다는 점도 이전과는 대비되는 점으로 지목된다. 음악시장을 아이돌 가수가 장악하면서 트로트를 비롯해 포크와 록 등의 장르 역시 주변으로 밀려났지만 탄탄한 고정 감상층을 갖춘 트로트는 젊은 가수들의 유입과 함께 아이돌 인기에 못지않은 위상을 누릴 정도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한 음반업계 관계자는 “트로트 같은 성인가요는 실물 음반 판매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그나마 선방해왔고, 이제 50~60대가 음원은 물론 여러 ‘굿즈’도 살 정도로 새로운 음악시장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에 시장이 더 넓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송가인 팬덤이 주 연령대가 50대 이상이라서 실제 사회적 영향력은 이들 팬클럽이 젊은 아이돌 팬클럽을 능가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송가인뿐만 아니라 여러 신인 트로트 가수의 팬덤도 커지는 모습은 충분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2020.03.1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