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아동들의 ‘러브 라인’, 이상하지 않나요?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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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가수 문희준씨의 딸 희율과 래퍼 강개리의 아들 하오의 첫만남을 그렸다. KBS 캡쳐

“하오는 무슨 간식 좋아해?” 희율(3·별명 잼잼)이 하오(3)에게 묻습니다. 하지만 희율을 처음 만나 어색한 하오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 순간, 가수 백지영의 곡 ‘그 여자’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옵니다.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지난 12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가수 문희준의 딸 희율과 래퍼 강개리의 아들 하오의 첫만남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이 어색한 탐색을 끝내고 서로 친해지는 과정은 보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이날 희율과 하오는 함께 장난감 놀이를 했고, 요즘 유행이라는 달고나 음료(수백번 이상 저어 만드는 음료)를 만들었으며, 심부름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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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시종일관 아이들을 비추며 사랑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두 아이가 처음 마주한 장면에선 ‘심장이 두근두근’이라는 자막이 쓰였고, 쓰러지는 마이크를 잡아주는 장면에선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가 나왔다. KBS 캡쳐

문제는 아이들의 만남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시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친해지는 과정이 순수한 우정이 아닌 ‘썸(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는 듯이 가까이 지내는 관계)’ 혹은 연인 관계처럼 묘사됐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가 처음 마주한 장면에선 ‘심장이 두근두근’이라는 자막이 쓰였고, 쓰러지는 마이크를 잡아주는 장면에선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가 흘러나왔습니다.


희율이 하오에게 놀자고 말하는 장면에선 ’예쁘잖아 니가, 자꾸 궁금해지잖아, 널 보는 눈이 간지럽혀 내 맘을’이란 가사의 엔츠 ‘예쁜 너니까’, 희율이 하오의 마이크를 고쳐 달아주는 장면에선 ‘나 오늘부터 너랑 썸을 한번 타볼 거야’라는 가사의 볼빨간 사춘기의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마’ 등의 곡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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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6일 방송에서는 한석준 아나운서의 딸 사빈과 방송인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의 ‘러브 라인’을 연출했다. KBS 캡쳐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이 같은 연출이 비판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월16일 방송에서는 한석준 아나운서의 딸 사빈과 방송인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의 ‘러브 라인’을 연출했습니다. 나란히 베개에 누워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천사와 (웃음) 사냥꾼’이란 제목의 꽁트극으로 연출하며 ‘웃음으로 친구가 된 둘은 점점 가까워졌어요’ 등의 자막을 넣었습니다.


아동인권 전문가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아동을 이중적인 태도로 묘사한다고 지적합니다. “아동기 중 가상과 실제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발달단계를 이용하여 어리숙하고 놀리기 쉬운 ‘유아적’ 존재로 그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러브 라인’ 연출 등을 통해 아동 간 우정을 성인의 남녀관계로 묘사하며 ‘어른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국제아동인권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고우현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어린 아동들이 서로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동에 대해 자막 및 음악 등을 사용하여 소위 ‘러브 라인’을 연출하는 것은 아동의 연령에 적절하지 않게 과도한 성애의 의미를 부여하는 연출”이라며 “이러한 연출이 해당 아동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아동·청소년에게 올바른 성인지 관점을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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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시간이 되자 아쉬움을 느낀 하오가 희율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정확하고 세밀한 교육이 필요한 장면이라 지적했다. KBS 캡쳐

부모의 정확하고 세밀한 교육이 필요한 장면이 그저 ‘재밌는 상황’으로 연출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날 방송에는 하오가 장난감 놀이를 하던 중 희율의 얼굴에 입을 맞추려 하고, 자신의 코를 닦아달라며 쫓아다니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희율은 도망을 다니다 아빠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아쉬움을 느낀 하오가 희율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도 나왔습니다. 부모가 제지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잼잼이는 뽀뽀할 준비가 안 돼 있어”라고 웃으며 말할 뿐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며 “쟤네 왜 저래”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하오의 행동은 3세 이상의 유아기에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행동입니다. 고 매니저는 “성정체성을 형성하는 3세 이상의 유아 시기에 특히 다른 성을 가진 또래와의 적절한 의사소통과 행동방식을 가르치는 것은 어른의 책무”라고 지적합니다.


고 매니저는 “아동이 선의일지라도 다른 아동에게 원치 않는 일을 반복적으로 요구하여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면, 보호자는 아동을 제지하고 상대의 뜻을 존중하도록 훈육할 책임이 있다”며 “비슷한 감정(이별의 아쉬움)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의 표현 방식이 상대에게 불쾌할 경우 이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폭력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상대에게 적합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 매니저는 “대중의 성인지 감수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가 이러한 영향에 대한 고민없이 해당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낸 점에 큰 유감을 표한다”고 했습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10%가 넘는 시청률을 유지하며, 화제성 측면에서도 10위권(비드라마 기준·굿데이터코퍼레이션) 안에 드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그만큼 출연 아동과 어른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프로그램이지요. ‘육아 예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아이들의 교육과 발달 측면에서 제작진의 좀 더 섬세한 연출이 필요해 보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조항

제17조: 당사국은 대중매체가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을 인정하며, 아동이 다양한 국내적 및 국제적 정보원으로부터의 정보와 자료, 특히 아동의 사회적·정신적·도덕적 복지와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와 자료에 대한 접근권을 가짐을 보장하여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당사국은, 가. 대중매체가 아동에게 사회적문화적으로 유익하고 제29조의 정신에 부합되는 정보와 자료를 보급하도록 장려하여야 한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2020.04.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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