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랑스 영화감독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워터 릴리스’ 셀린 시아마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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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감독 셀린 시아마의 장편 데뷔작 <워터 릴리스> 가 13일 개봉했다. 지난 1월 개봉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한 팬덤을 형성하면서 그의 초기작까지 소환됐다. 블루라벨픽처스 제공        

<아가씨> 아갤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불한당원, <아수라> 아수리언, <허스토리> 허스토리언, <미쓰백> 쓰백러…. 국내 영화계 팬덤 현상은 더이상 낯선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한국이 아닌 프랑스 영화라면 어떨까.


프랑스의 퀴어시대극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한국에서 14만8000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해외 관객 70만명 중 20%가 한국 관객인 셈이다. 관객의 70% 이상이 여성이었으며, 예술영화로는 괄목할 만한 성적이었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초기작까지 소환하기에 이른다. 2011년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 <톰보이>가 지난 5월 개봉했고, 13일 장편 데뷔작인 <워터 릴리스>(2007)가 관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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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 는 여성 청소년의 사랑과 성장에 관한 영화다. 마리는 싱크로나이즈드팀 주장 플로리안(왼쪽)에게 한 눈에 반하고, 플로리안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 블루라벨픽처스 제공

<워터 릴리스>는 여성 청소년의 사랑과 성장에 관한 영화다. 또래보다 왜소한 체구의 소녀 마리(폴린 아콰르)는 단짝 친구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를 따라 싱크로나이즈드 경기를 보러 갔다가 덜컥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싱크로나이즈드팀 주장 플로리안(아델 에넬)이다. 그날부터 마리는 플로리안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


‘헤프다’고 소문난 플로리안은 마리와 친해진 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세간의 소문과 달리 플로리안은 남자와 한 번도 섹스를 한 적이 없다. 자신을 향한 남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경험도 털어놓는다. “나만 겪는 것도 아닌데”라는 플로리안의 고백으로 둘은 한층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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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 주인공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마리(폴린 아콰르)·플로리안(아델 에넬). 셀린 시아마 감독은 “세 소녀는 10대 시절 나 자신을 흔들었던 세 가지 고민을 각각 반영 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블루라벨픽처스 제공

한편 첫 키스를 경험해보고 싶은 안나는 상대를 찾아 파티를 배회한다. 그동안 무수한 영화에서 생략 혹은 왜곡됐던 10대 소녀들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이 여성감독의 시선으로 명징하게 그려진다. 동성애자이기도 한 시아마 감독은 “세 소녀는 10대 시절 나 자신을 흔들었던 세 가지 고민을 각각 반영 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수영장 소독냄새와 물기가 실제로 느껴지는 듯한 영상미, 주체적이며 욕망에 솔직한 인물들, 간결한 전개, 여자아이들에만 강요되는 성차별적 규율에 대한 고발. 시아마 감독의 이 초기작은 여성들이 왜 그의 영화에 열광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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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퀴어시대극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은 한국에서 14만8000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해외 관객 70만명 중 20%가 한국 관객인 셈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마케터 최유리 아워스 실장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이 여성 관객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여성 캐릭터를 대상화하지 않는 사려 깊은 시선때문”이라며 “지금껏 한국 여성들은 온전히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경험한 적 없었기에 SNS를 중심으로 한 압도적 지지와 팬덤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일명 ‘불초상’ 팬덤이 뿌리내린 데는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 확산도 영향이 있다. <워터 릴리스>를 시작으로 이어져 온 셀린 시아마·아델 에넬의 조합은 성평등을 위해 ‘행동하는 여성’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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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5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아동 성범죄자인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상을 수상하자 셀린 시아마 감독(앞)과 배우 아델 에넬이 시상식장에서 퇴장 한 뒤 극장 밖으로 나가고 있다. 파리 매치 유튜브 캡쳐

에넬은 데뷔작 감독으로부터 12살이던 당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프랑스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재점화했다. 2월 열린 세자르 시상식에서는 아동 성범죄 혐의로 도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상을 수상하자 시아마 감독과 함께 시상식장을 박차고 나가 화제가 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8번, <톰보이>를 5번 ‘n차 관람’ 했다는 30대 여성 A씨는 “여성을 섹슈얼하게 그리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셀린 시아마 감독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며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성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란 점에서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2020.09.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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