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사과 만나러 갔다 복집 비빔밥에 꽂혔다

[푸드]by 경향신문

경북 김천 오일장


김천의 맨 끝인 증산면에선

노란 사과 ‘황옥’을 키운다

신맛이 받쳐주는 단맛 ‘일품’


오일장엔 ‘가을것들’이 잔뜩

아오리 밀어낸 ‘홍로’ 사과

해땅콩 흥정도 한창이다


복집에 나온 비빔밥 그릇에

부추 새우젓 무침 넣고 비비니

입 속 짠맛의 ‘악센트’가 압권

경향신문

올봄, 맛있는 참외를 찾으러 경상북도 김천하고도 감천면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참외는 성주가 가장 유명하고 생산량도 많다. 상주군과 맞닿아 있는 감천에서도 맛있는 참외가 나온다. 봄 지나 긴 장마와 함께 여름을 보낸 가을 초입에 다시 김천을 향했다. 김천을 가는 목적은 세 가지, 첫째는 오일장, 둘째는 노란 사과, 셋째는 은하수였다. 김천 오일장은 5일과 0일이 든 날에 열리는 장이다. 5가 든 날인 화요일 전후로 구름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챙겼다. 오일장 구경도 구경이지만 기왕이면 은하수 촬영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기상청 예보를 보니 월요일에 구름이 없다. 게다가 달마저 초승달 크기다. 은하수를 촬영하기에 최적의 조건, 월요일에 출발해 낮에는 사과 농장, 밤에는 은하수 촬영. 다음날은 원래 목적인 오일장 구경으로 일정을 잡았다.


김천 나들목을 나와 김천의 맨 끝인 증산면까지 갔다. 증산면은 덕유산 자락의 수도산과 가야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곳이다. 동네가 평지처럼 보여도 해발고도가 300m가 넘는다. 이곳 증산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육종한 노란 사과인 ‘황옥’을 재배하고 있다. 빨간색 사과가 많이 있을 뿐 모든 사과가 다 빨간 것은 아니다. 노란 사과도 있고 아오리처럼 덜 익은 파란 사과가 아닌 실제 파란색 품종의 사과도 있다. 작년에 노란 사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가서 맛을 봤었다. 홍옥처럼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과일은 신맛이 단맛을 튼튼하게 받쳐줄 때 최고의 맛을 낸다. 부사처럼 마냥 단맛하고는 또 다른 단맛을 지닌 것이 황옥이다. 긴 장마와 태풍을 보낸 황옥은 어떨까 걱정이 앞섰는데 9월 말이면 작년보다 더 맛있는 황옥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머털농원 (054)433-1496


사과 농장을 나와 전라북도 무주와 경계를 이루는 김천시 대덕면 덕산재에 올랐다. 해발 1200m의 대덕산 중간고개로 600m가 조금 넘는다. 고개 주변으로 마을도 없어 빛 공해가 거의 없다. 고개 정상에는 간이 주차장까지 있어 별구경 하기 안성맞춤이다. 해가 저물고 달마저 따라 사라지자 숨어 있던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방 출장이 잦은 직업이지만 선물처럼 받는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재미있게 다닌다. 밤하늘을 바라봤을 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별과 마주 서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굳이 촬영이 아니어도 가끔 구경 삼아 갈 만한 것이 별 볼 일이다. 별 볼 일 없으면 심심한 게 우리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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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오일장은 5일과 0일이 든 날에 열리는 삼팔장이다.

사과도, 별도 봤으니 다음은 오일장 구경이다. 김천 오일장은 시내의 세 군데 상설시장 중 황금시장 주변에서 열린다. 오래전부터 지역에 자리 잡은 황금시장은 철길을 두고 이웃한 중앙시장과 경쟁을 하듯 시장이 열렸지만 지금은 황금시장에서만 오일장이 열린다. 황금시장을 반 정도 감싼 모양새로 장이 선다. 시장 상인의 말로는 황금시장 오일장은 오전장이라고 한다. 오전에 사람들이 몰리고 점심이 지나면서는 사는 이도, 파는 이도 적어진다고 한다. 오전에 정신없이 다니다가 중앙시장에 잠시 넘어 갔다 오니 아침과 사뭇 다르게 파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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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듯 발갛게 물든 홍로가 장터의 가을을 알린다.

장터에는 가을것들이 잔뜩 있었다. 말린 고추가 보름 전 보령장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시퍼런 아오리가 익은 사과인 양 행세하던 자리를 수줍게 물든 홍로가 대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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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마가 물러간 시장엔 해땅콩 흥정이 한창이다.

보령장에서는 없었던 원양 배가 보이고 가을 전령사인 해땅콩 흥정이 시장 여러 곳에서 한창이었다. 껍질 있는 날것의 땅콩은 집에서 삶아 먹거나 볶아 먹는다. 경상도 식당에 가면 삶은 땅콩이 기본 찬으로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피땅콩 삶은 것이 찬으로 나오면 경상도에 왔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경상도의 오일장을 다니다 보면 사방팔방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듯해 자주 두리번거린다. 마치 엄마나 이모들이 필자를 불렀나 하는 착각이다. 모친의 고향이 청도, 외가가 이쪽이다 보니 ‘할매들’ 이야기에 엄마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 사투리는 못 알아들어도 어렸을 때부터 듣던 톤이라 그런지 익숙하고 살갑다.


방송에서는 재래시장 재미로 깎는 맛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새는 그런 거 없다. 정찰제처럼 같은 상품의 가격은 엇비슷하다. 더 싼 거 찾아 시장을 다녀봤자 다리만 아프다.


오일장을 다닌 지 2년 차, 이제는 깎아 달라는 말 안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고는 아무 말 없이 돈을 건넨다. 그래야 덤이라도 받는다. 방송처럼 깎아 달라는 말을 했다가는 지청구를 듣거나 덤도 없다. 방송은 방송일 뿐이다.


구미에서 일하다가 부모님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김천 시내에서 십여분 가야 하는 곳이지만 점심 무렵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 파는 메뉴는 백반이다. 돼지와 참치를 선택할 수 있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백반이 주메뉴다. 선택을 잘 못하는 이들은 위해 그날그날 찌개와 국이 달라지는 백반도 있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참치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이웃에서 구하고 없는 것은 이웃한 시·군 것을 사용한다. 필자야 혼자이기에 김치찌개를 주문했지만 여럿이 온 사람들은 찌개와 제육볶음 조합으로 주문을 많이 한다. 찌개는 취향껏 선택하고는 다들 왕계란말이를 추가로 주문한다. 폭신하고 고소한 맛에 3000원으로 가격까지 착해 안 시키면 손해다. 농소밥심 (054)433-6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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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사무소 앞에는 오래된 양조장을 개조해 만든 ‘양조장 카페’가 있다.

농소밥심에서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면 식당에서 시내로 가는 방향으로 잠시만 가면 남면 사무소다. 사무소 앞에 오래된 양조장을 개조해 카페로 만든 곳이 있다. 이름도 ‘양조장 카페’다. 잠시 머물다 가도 좋고, 커피 사서 가기에도 좋다. 양조장 카페 (054)433-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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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양념 불고기를 화력 좋은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낸 석쇠불고기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지난봄, 참외를 보러 왔다가 의성의 유기농 사과 농장 가는 길에 국도에서 우연히 돼지 석쇠불고깃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만났다. 원래 김천은 지례면의 흑돼지가 유명하고 지례면 중심가에는 전문 식당과 커다란 관광지형 식당이 몰려 있다. 그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식당들이 작은 면 소재지에 모여 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고깃집 만난 김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섰다. 이런 석쇠불고깃집에 들어서면 갈등이 생기곤 한다. 석쇠불고기가 소금, 간장, 고추장 세 가지 맛이 있으면 머리에 쥐 나기 십상이다. 다행히 선택 없이 석쇠불고기 하나만 있는 집을 운 좋게 골랐다. 석쇠불고기라는 게 단짠단짠한 양념에 고추장까지 더한 고기를 화력 좋은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내는 메뉴다. 설탕과 지방이 강한 열을 받아 내는 향기가 고기에 깊고 강하게 배어 있는 덕에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상추 한 장 들고 밥, 고기 얹고 마늘과 고추로 탑을 몇 번 쌓다 보면 밥 추가하는 곳이 석쇠불고기식당이다. 고향식육식당 (053)430-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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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매운탕 속 콩나물을 건져 넣고 새우젓 무침을 더해 비빈 밥 한술 뜨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일장 구경을 얼추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이 비빔밥집이다. 식당은 복을 전문으로 하는 조일식당이다. 복집에서 비빔밥 파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도 아니다. 보통 복집 하면 맑은탕으로 숙취 해소를 하거나, 코스 요리로 우아한 식사 하는 곳을 연상하지만 여기는 아니다.


식당 메뉴는 복매운탕과 맑은탕. 오징어 메뉴도 있지만 값이 비싸 복어만 하고 있다. 이 집 복어탕은 먹는 방법이 다른 곳과 달리 독특하다. 복어탕을 주문하면 비빔 그릇이 같이 나온다. 그릇에 밥을 넣고 매운탕 속 콩나물 건져 담는다. 그다음은 나온 찬을 기호에 따라 그릇에 담고 비비면 된다. 특히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부추, 쪽파를 넣은 새우젓 무침이다. 부추와 새우젓? 의구심 드는 조합이다. 만일 새우젓 무침을 넣지 않는다면 마치 용을 그리던 솔거가 눈을 빼먹고 그림을 완성한 것과 같다. 새우젓 무침을 따듯한 밥과 함께 먹어보면 “아” 소리와 함께 최고의 조합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새우의 짠맛이 씹는 중간중간 악센트를 준다. 매운탕을 주문했지만 먹고 있는 것은 비빔밥이다. 이상할 듯싶지만 맛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특히 새우젓 무침은 압권이다. 조일식당 (054)434-4347


김진영 식품 MD

2020.09.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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