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엔날레…어떤 상상력으로 살아남을까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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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산비엔날레’는 부산현대미술관, 구 도심, 영도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구 도심의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에 설치된 김희천 작가의 현수막 설치 작품인 ‘드릴’. 부산비엔날레 제공

한국 미술계에서 가을철은 ‘비엔날레의 계절’로 불린다.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국제미술전인 비엔날레가 주로 9~10월, 특히 짝수해에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 대다수 주요 비엔날레가 이 시기에 몰려 있다. 올해 행사를 위해 주최 측은 이르면 지난해부터 본전시, 연계된 부대행사들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비엔날레는 여느 해와 여러모로 다르다. 광주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등은 아예 내년으로 연기됐다. 예정대로 개막한 비엔날레들도 상당수는 온라인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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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창원조각비엔날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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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20’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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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수국제미술제’ 포스터.

9월 들어 막을 올린 비엔날레는 부산비엔날레(11월8일까지), 대전비엔날레(12월6일까지), 창원조각비엔날레(11월1일까지)가 있다. 또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11월30일까지), 비엔날레급 국제미술전으로 해마다 마련되는 여수국제미술제(10월5일까지)도 열리고 있다. 전시 지역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현장 관람은 유동적이다.


세계적으로도 비엔날레들이 처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베니스(베네치아)비엔날레·휘트니비엔날레 등 주요 비엔날레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축소되거나 일정을 미뤘다. 가장 오랜 역사의 베니스비엔날레는 홀수해에 미술전, 짝수해에 건축전을 열어왔지만 올해 행사가 내년으로 미뤄져 100여년을 이어온 ‘홀수해는 미술전’이란 전통이 바뀌게 됐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올해는 유례가 없는 비엔날레가 됐다.


1895년 이탈리아 베니스서 탄생

격년제로 지속되면서 권위 생겨

국내는 1995년 광주를 시작으로

현재는 10여개 지자체가 개최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 조명과

미학적 담론 생산의 장으로 호평

점차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에

“돈벌이 도구 전락” 목소리 커져


코로나19로 잇단 축소·취소 속

비엔날레마다 생존 전략 고민

어떤 차별화로 재도약할지 주목

비엔날레, 현대미술의 한 상징

미술전시회는 어디서나 늘 열린다. 한 작가의 개인전부터 이름난 국제미술전으로 3년마다 마련되는 트리엔날레, 4년마다의 콰드리엔날레도 있다. 세계적 권위의 카셀 도쿠멘타는 5년마다, 공공미술제인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10년마다 열린다. 2017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카셀 도쿠멘타·뮌스터 조각프로젝트가 같은 시기에 열리면서 국내외 미술계에서는 ‘그랜드 아트 투어’ 상품이 관심을 끌었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 등과 연계한 여행으로 근대의 ‘그랜드 투어’에 빗대 ‘그랜드 아트 투어’로 명명한 것이다.


숱한 미술전들 속에서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행사다. 아트페어와 더불어 20세기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단순히 국제미술전이란 의미를 넘어 하나의 체제, 제도로까지 인식된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비엔날레만도 무려 200개를 넘어선다.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베니스비엔날레와 상파울루비엔날레·휘트니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지금도 여전히 창설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리 없이 문을 닫는 행사가 비엔날레이기도 하다. 현대미술 생태계를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미술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비엔날레의 시작은 1895년 베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탈리아 국왕 내외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베니스시가 국제미술전을 창설한 것이다. 1회 때만 하더라도 8개국이 참여했으나 이후 격년제로 꾸준히 지속되면서 점차 그 권위와 영향력을 갖게 됐다. 특히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들을 조명하고, 신선한 미학적 담론을 만들어내면서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을 대표·상징하는 행사가 됐다. 다른 비엔날레들과 달리 25개국의 국가관을 통한 행사가 이뤄지면서 나라별 경쟁을 부추기는 부정적 의미의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은 베니스비엔날레의 25번째 마지막 국가관으로 1995년 한국관을 확보했다. 1993년 독일관 대표작가로 참가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백남준 등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물론 한국관 설립 전부터 한국 작가들은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전수천·강익중·이불 작가 등은 특별상을, 2015년에는 임흥순 작가(감독)가 한국인 첫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근래 베니스비엔날레는 여러 비판 속에 그 영향력도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최고·최대 비엔날레로 세계 비엔날레를 대표한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영향력을 실감하면서 각국에서도 비엔날레 창설에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생겨났다. 선진 각국은 물론 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1980년대 터키 이스탄불비엔날레, 1990년대 아프리카 최초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첫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 창설도 1995년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싱가포르비엔날레가 시작되는 등 이제 웬만한 나라, 국제적 도시에서는 비엔날레가 열린다. 세계화가 비엔날레 창설을 가속화시키고 비엔날레는 미술의 세계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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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비엔날레 2020’에서 선보이고 있는 알베르트 바르케 듀란 등의 작품 ‘나의 인공적인 뮤즈’(2017). 대전비엔날레 제공

한국에서는 광주비엔날레 이래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비엔날레를 만들면서 10여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한때 엇비슷한 형식과 내용의 비엔날레가 난립하면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일부는 슬그머니 없어지기도 했고, 형식과 내용을 바꿔 진행되기도 한다. 또 장르를 특화시키는 등 차별화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 비엔날레를 둘러싼 평가는 극히 부정적인 것부터 긍정적인 시각까지 지금도 엇갈리고, 논쟁은 계속된다.

미술의 향연인가, 돈벌이의 도구인가

비엔날레는 원래 다채로운 동시대 작품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적 미술축제의 하나다. 여느 미술전들과 달리 대규모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고, 적어도 수십개국 작가들의 작품 수백~수천점이 본전시장은 물론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 곳곳에서 선보인다.


당대 이슈나 예술적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예술로 조명·반영한 비엔날레 출품작들은 신선한 담론을 내놓으며 동시대를 조망하고 미술사는 물론 인류 문화사까지 살핀다. 비엔날레를 매개로 각국 작가와 비평가·큐레이터를 비롯해 미술관·갤러리 관계자들, 미술 행정가들이 만난다.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교류하며 당대 문화예술 이슈에 대한 치열한 토론도 벌인다. 그리하여 미술의 어제를 정리하고 오늘을 드러내며 내일의 예술을 전망하는 단초까지 제시하는 게 비엔날레의 본래 취지이자 기대하는 역할이다. 비엔날레가 다른 어떤 미술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비엔날레는 미술을 넘어 문화 교류의 뜨거운 현장이기를 꿈꾼다. 전시뿐 아니라 학술대회나 강연회, 공연,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이 함께 연계돼 열린다. 비엔날레 계절이 오면 그 나라 주요 미술관, 갤러리들도 ‘물 들어올 때 배 띄우듯’ 저마다 기획전 등을 마련한다. 소장품이나 소속 작가를 통해 자부심을 드러내고,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보란 듯 선보인다. 각국 미술 애호가들이 성소를 순례하듯 찾아 나서는 게 좋은 비엔날레다. 미술에 관심이 적은 지역 주민들, 일반 관광객 등 관람객들은 평소와 달리 세계적 유명 작가나 떠오르는 신진 작가의 작품, 갖가지 연계행사를 통해 무뎌진 감각을 일깨운다. 그동안 체감하지 못한 보다 넓고 깊은 미적 경험을 누릴 수도 있다. 문화예술의 힘을 새삼 느끼는 자리가 바로 비엔날레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열리는 비엔날레의 상당수는 이 같은 긍정적 효과·평가보다 부정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미술도 포섭되면서 자본의 힘이라는 ‘악화’가 비엔날레 본래의 예술적 순수성이란 ‘양화’를 짓누르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비엔날레가 당초 취지는 묻히고 수익만을 챙기는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대를 품어내는 새로운 시각예술의 전시나 담론 제시, 뜨거운 토론보다 상업적 이익을 위한 입장객 숫자를 먼저 생각한다. 의미 있는 주제나 알차고 새로운 전시 형태·내용에 대한 고민보다 해당 도시, 나라의 홍보효과에 초점을 맞추는 게 현실이다. 문화적·예술적 가치보다 경제적·정치적 효용성을 앞세우면서 비엔날레가 문화예술로 포장된 하나의 자원, 이미지 개선과 홍보의 무대에 지나지 않게 됐다. 여느 나라 비엔날레를 막론하고 자본과 미술이 한 몸이 되고, 관 주도 행사가 많아지면서 비엔날레가 상업적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실제 세계적 비엔날레의 상당수는 국가나 도시 지자체가 나서서 만들었다. 이들은 비엔날레의 고유한 특성보다 지역경제 활성화나 낙후된 도시의 부흥, 문화도시로 이미지 개선, 심지어 지자체장의 업적 등에 관심을 둔다.


그러다보니 관람객 동원을 위한 단체 관람객 유치 등 갖가지 방법이 이용되고, 바가지 씌우기도 벌어진다.


비엔날레 예술감독이나 관련 큐레이터들도 예산을 주는 이들의 심기를 고려하고, 알게 모르게 경제적 효과를 먼저 따지게 될 수밖에 없다. 영국 미술사학자 줄리언 스탈라브라스 교수는 이미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마련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미술’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본의 유혹과 함정에 빠져버린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의 현실을 분석하고 신랄하게 꼬집기도 했다. 여러 전문가들이 비엔날레가 어느 때보다 많아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부실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지적을 하며 회의론을 제기한다.


물론 국내 비엔날레들 상당수도 세계 비엔날레들이 드러내는 문제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국내의 경우엔 전문인력의 부족 속에 짧은 준비 기간, 이에 따른 단발적인 행사, 주최자인 관과 전문가들 사이의 운영 잡음, 지역 문화예술계와 마찰 등 문제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의 비엔날레들은 경쟁이 치열해지고 비엔날레 회의론이 거세지면서 저마다 존재 이유를 따지고, 그에 따른 생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러 대안들도 벌써 거론된다. 독립적이고 장기적·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예산 확보, 미술전 중심의 ‘미술축제’를 넘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담은 축제로의 전환 등이다. 특히 차별화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역적 특성과 국제적 보편성, 전문성과 대중성의 조화로운 융합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비엔날레들은 지금 모두가 뜨겁게 고민 중이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2020.09.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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