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김 토할 때 입벌린 놈 하나 입에 쏙 넣으면 불맛 나는 굴맛!

[푸드]by 경향신문

전남 장흥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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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장흥은 설국으로 변했고 다음 날 오일장은 취소가 됐다.

정확히 1년 만에 전라남도 장흥행이다. 작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완도 오일장 취재하러 가면서 장흥에 잠시 들렀다. 파일럿으로 제작하는 음식 프로그램에 자문을 맡아 식재료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장흥에서 나는 것 중에서 오직 장흥에만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소고기다. 누렁 한우든, 검무늬가 있는 칡소든 전국 어디서든 한우를 생산한다. 근데 장흥에만? 소고기가? 의구심이 저절로 든다. 장흥에만 있는 소고기는 곡물 사료를 먹지 않고 오로지 풀만 먹이면서 사육하는 한우다. 뭐 그게 별거인가 싶지만 막상 소고기를 먹어보면 별거 이상이다. 옥수수 등 곡물 사료를 먹지도 않거니와 운동장도 따로 있어 근육 내에 기름이 낄 틈이 없다. 마블링은 거의 없지만 소고기는 질기지 않다. 고기를 씹으면 어금니의 압력으로 고기가 덩어리로 부서진다. 덩어리는 더 작은 알갱이로 부서지고 부서지면서 품고 있던 육즙을 윤활유처럼 내준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란 속담에 딱 맞는 고기다. 마블링만 예쁜 소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풀로만 목장 010-4493-4507


장날 전날 서울서 출발했다. 장흥의 서쪽은 강진, 해남이다. 오른쪽은 보성과 바다 건너는 고흥이다. 한반도처럼 삼면이 바다다. 깊은 바다보다는 얕은 수심의 해안가인지라 지주식 양식법이 발달했다. 1월은 매생이, 김, 굴 수확철이기에 구경도 할 겸 미리 내려갔다. 아침 9시 정도 물때 맞춰 장흥 대덕읍에 있는 내저 매생이 마을에 도착했다.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바다에 나무 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대나무 발을 걸쳐 놓았다. 대나무 발을 얕은 바다에서 시월 즈음 갖다 놓으면 절로 매생이 포자가 달라붙는다고 한다. 매생이 포자가 달라붙은 발을 조금 바깥쪽에 설치한 지주에 옮기고 기다리면 매생이가 절로 자란다. 장흥 매생이는 생산성이 다른 지역보다 떨어진다. 지주식으로 하는 모든 수산물이 그렇듯 물이 빠지면 성장을 멈추기 때문이다. 대신 부드러우면서도 차진 식감을 얻는다. 그래서 상품 중의 상품으로 대접받는다.


장흥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소고기를 같이 먹는 삼합이 유명하다. 전국적 명물이 된 장흥 토요시장 근처는 한 집 건너 한 집 있을 정도로 식당이 몰려 있다. 전라남도 여수, 장흥 그리고 충청남도 오천 세 곳이 키조개 주산지다.


유독 장흥에서 삼합이 유행한 까닭은 오래전부터 장흥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해왔기 때문이다. 표고버섯 재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큰 시설을 지어 실내에서 배지로 키우거나 산이나 하우스에서 원목에 균을 접종해 양식하는 방법이다. 장흥은 배지보다는 원목 표고버섯 재배가 많아 향이나 식감이 좋다. 키조개 관자의 쫄깃한 맛과 잘 어울렸다. 여기에 소기름의 맛까지 더해지니 맛없으면 간첩이다. 이런 삼합도 사실 제철이 있다. 봄가을이 좋다. 그중에서 벚꽃이 질 무렵에서 6월까지다. 삼합 재료 중 표고 제철이기 때문이다. 배지에서 재배하는 것은 딱히 제철이 없지만 원목 버섯은 봄과 가을에 수확한다. 그중에서 질 좋은 버섯은 봄에 많이 난다. 키조개 또한 7~8월 산란을 앞두고 영양분을 축적하는 시기인지라 맛이 좋다. 한우도 매한가지다. 추운 겨울은 가축에게도 힘든 시기. 사료가 전부 살로 가지 않는다. 봄이 오면 체온 유지에 쓰던 에너지가 살로 간다. 꽃이 지는 시기가 삼합 맛이 피는 제철이다. 아니면 단풍이 화려하게 피어날 때이거나. 그래도 봄이 먼저다.


1월은 매생이, 김, 굴의 계절

장흥 매생이는 차지고 부드럽다

입천장 델까 천천히 먹는 그 맛


키조개 관자·표고버섯·소고기

장흥 ‘삼합’은 꽃 질 때가 제철

폭설에 취소된 오일장에서

아쉽게 발돌리며 생각한다

벚꽃이 질 때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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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매생이는 차지면서 부드럽다.

한겨울 장흥에 왔으면 매생잇국 한 그릇 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장흥 매생이는 차지면서 부드럽다. 부유물에 매생이 발을 띄워서 키우는 방식은 생산성은 좋아도 매생이 특유의 향과 맛은 떨어진다. 생산성이 좋으니 가격이 저렴하다. 매생이는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기왕지사 제대로 맛이 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매생잇국 먹을 때는 천천히 먹어야 한다. 방금 막 끓였어도 뜨거운 김을 품고 있지 토해내지 않는다. 지금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초창기 매생잇국을 모를 때는 입천장을 홀라당 데는 경우가 많았다. 김이 나지 않으니 식은 줄 알고 들이켰다가 빈번하게 사고 아닌 사고가 났다. 필자는 매생잇국을 대하면 숟가락은 잠시 내려놓는다. 젓가락으로 떡국과 매생이를 먹는다. 그래야 입천장 데는 참사도 막거니와 장흥 매생이의 맛을 오롯이 음미할 수 있다. 우물가에서 바가지에 이파리 띄워 급체를 막는 것처럼 몇 번 그렇게 먹다 보면 숟가락으로 먹어도 될 온도가 된다. 얼큰한 고추가 들어가 있는 매생이전과 함께하면 막걸리 한 잔 절로 생각난다. 운전만 아니었다면 자리 잡을 뻔했다. 끄니걱정 (061)862-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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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양식이 한창인 장흥 내포마을 갯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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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맛이 한껏 오른 각굴을 불 위에 올려 잘 익히면 껍데기가 부드럽게 떨어지고 뽀얀 속살이 나온다. 제 타이밍을 놓치면 향은 사라지고 맛은 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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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구이의 마무리로 제격인 굴라면.

일출과 일몰 풍경이 아름다운 소등섬을 품고 있는 장흥 내포마을. 소등섬 주변 갯벌에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에 돌을 던져 놓았다. 던져 놓은 돌에 굴이 달라붙어 성장한다. 갯벌을 찬찬히 보면 논둑, 밭둑처럼 돌로 둑을 쌓아 경계를 그었다. 육지의 밭처럼 소유가 정해진 갯밭이다. 관리와 수확에 대한 소유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 매해 겨울이 오면 수확한 것을 시장에 내다 팔거나 아니면 마을에 있는 두서너 곳의 식당에서 판다. 투석식으로 생산하는 굴은 모양새가 일정치 않다. 껍데기가 있는 각굴이라 하더라도 몇 개의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수하식이나 3배체 굴처럼 크지도 않고 깔끔함도 없다. 대신 보물찾기하는 재미가 있다. 각굴을 불 위에 올려놓으면 먼저 익는 곳부터 물이 나온다. 불이 먼저 닿은 거나 아니면 작은 굴이다. 그 부분부터 칼로 껍데기를 살살 달래면 바로 속살을 내준다. 덜 익은 것은 껍데기가 쉬이 열리지 않는다. 억지로 열면 굴 껍데기에 살이 달라붙어 버려야 한다. 그럴 때는 다시 불 위에 올려놓으면 잠시 후 긴 숨을 토해내듯 뜨거운 김과 물을 살짝 뿜는다. 바로 칼을 들면 불맛 살짝 나는 굴구이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굴구이도 먼저 입 벌린 놈부터 먹기 시작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짜고 향은 두어 발자국 달아나 있다.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면 껍데기가 부드럽게 떨어지고는 뽀얀 속살이 나온다. 고기 구운 판에는 볶음밥이 제격이듯 굴이 있는 곳에는 면이 제격이다. 떡국도 있지만 굴 넣고 끓인 얼큰한 라면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남포석화 1번지 (061)863-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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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과 달리 전분기 없이 매콤한 양념장과 채소를 넣고 볶아낸 아귀 불고기.

장흥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긴 형태다. 삼면이 해안선이기에 아름다운 해안 길이 곳곳에 있다. 그중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길은 장재도에서 연륙교 건너 수문항을 지나 보성 율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장흥의 서쪽 마량에서 동쪽 안양면까지 해안도로를 다니다가 읍내에 숙소를 잡았다. 사전정보 없이 읍내를 어슬렁어슬렁 다녔다. 오로지 촉과 당기는 감에 의해 식당을 선정하곤 한다. 식당에 대한 사전정보는 없다. 다만 제철에 대한 식재료 정보는 있기에 제철 식재료만 보고 결정한다. 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닐 때도 있다. 복불복이다. 식당을 다니다가 두어 곳에서 혼자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혼자 여행이 불편해지는 순간이다. 군청 소재지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아귀 불고기가 날아와 눈동자에 꽂혔다. 복 불고기는 마산편에서 참 맛나게 먹은 메뉴인데 아귀 불고기는 어떤 형태로 나올지 궁금했다. 계절은 겨울이니 웬만한 생선은 다 맛있을 때라 감을 믿고 결정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몇 분이요?” “혼자인데요.” “혼자요!?” “네, 아귀 불고기 작은 거 주세요”하고 쭈뼛쭈뼛 서 있으니 “혼자 여행 오셨소? 거 앉으소” 한다. 아귀 불고기는 찜과 달리 전분기가 없는 모습이다. 아귀를 물 넣고 볶아 익히다가 나중에 채소와 양념장을 넣고 마무리로 볶아낸 음식이다. 불고기보다는 볶음이 어울리지 않나 싶다. 매콤한 맛이 꽤 좋았다. 종일 장흥에서만 200㎞ 정도 운전하고 다닌 피곤함을 매콤함이 밀어냈다. 그 자리에 식욕이 자기 자리를 찾았다. 가만히 쫄깃한 아귀 불고기 한 점 먹으니 부족함이 있었다. 한 잔의 소주였다. 매콤한 아귀 불고기를 먹고 나오면 바로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이 있다. 텀블러가 없으면 1000원을 더 받는 곳이다. 커피 맛이 좋다. 다복찜전문점 (061)863-0015, 까페 물고기의 숲(전화 안내는 없다)


이번 장흥 편에는 시장 이야기가 없다. 장흥읍에는 두 개의 장이 선다. 토요일에만 서는 토요장과 2, 7일이 든 날에 서는 오일장이다. 지난 1월6일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장흥에 눈이 많이 왔다. 평소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장흥은 설국으로 변했고 다음 날 오일장은 취소가 됐다. 대설주의보 덕에 오일장 이야기는 눈속에 파묻혔다. 그 덕에 벚꽃이 질 때 다시 한번 갈 생각이다. 꽃이 지면 장흥은 또다시 맛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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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품MD

2021.01.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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