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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기꺼이 이 아름다운 광장의 졸병이 되겠다”

‘광장극장 블랙텐트’에
참여하는 연출가 이윤택

by경향신문

‘광장극장 블랙텐트’에 참여하는 연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각종 지원에서 배제됐던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난 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블랙리스트 연출가’ 이윤택(65)이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로 간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6일부터 9일까지 굿극 <씻금>을 공연한다. 검열에 대한 저항, 연극의 공공성 회복을 선언하며 문을 연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지난달 16일부터 잇달아 공연을 올리고 있다. 이를 주도해온 연극인들은 주로 30~40대 젊은 층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윤택은 블랙텐트에서 공연을 올리는 최고령 연출가다. 

 

지난 3일 대학로의 30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영광스럽다”고 했다. “기성세대인 나에게 후배들, 후학들이 고마운 기회를 줬다”면서 “나는 ‘백발의 졸병’이 된 심정으로 광장에 나갈 것”이라고 했다.

 

“나이 든 놈은 한발 물러서서 멘토 역할이나 하면 된다는 사회적 통념이 분명 존재하죠. 하지만 나는 젊은 후배들이 나를 광장으로 불러준 것을 영예롭게 받아들입니다. ‘노병’의 역할도 있지 않겠습니까?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스페인에 가서 총을 들고 독재에 맞서 싸웠잖아요? 그중에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 지식인들도 있었습니다.”

 

- 촛불에서 블랙텐트까지,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의 광장은 혁명과 축제가 만나는 곳, 정치가 삶으로 수렴되는 공간이죠. 나는 5·16 이후의 뿌리 깊은 군부 문화가 이제야 제대로 무너지고 있다고 봅니다. 천박한 현실주의자들의 세상도 함께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에서, 검열로 탄압받았던 젊은 연극인들이 저항의 전위로 나섰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기 검열과 개인주의에 빠져 있던 예술가들이, 박근혜 정부가 지원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예술가들을 농락했음이 드러나면서, 이제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 발언하면서 저항하고 있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봅니다. 비로소 문화의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기꺼이 광장의 졸병이 되겠다”는 그는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평화적으로 데모를 하는 광장, 그 아름다운 광장에서 연극인들이 텐트를 치고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혹자는 이런 발언을 접하면서 이윤택에게 ‘진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 할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이들은 그의 연극이 추구해온 전통적 가치에 대한 희구를 떠올리면서 ‘보수’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윤택은 도리질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굳이 규정한다면 “회색인, 무정부주의자, 변방주의자, 성 밖의 사람”이라고 따발총처럼 빠른 속도로 말했다. 실제로 그는 서울에 주소를 둔 적이 없다. “나는 서울 사람이기를 거부한다”는 그는 “지금까지의 주소지가 부산, 김해, 밀양”이라고 했다.

 

- ‘이윤택의 연극적 형식’을 논하면서 ‘굿’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 블랙텐트에서도 역시 굿판을 벌이는군요. 

 

“아, 이번 공연뿐 아니고 제가 5월까지 계속 굿을 할 생각입니다. <씻금> <오구> <초혼>을 계속할 겁니다. <씻금>은 진도 씻김굿, <오구>는 동해안 별신굿, <초혼>은 제주도 무혼굿을 다룹니다. 그런데 요즘 희한한 사람들 때문에 굿의 가치가 완전히 오도되고 있잖아요? 사실 굿은 우리의 정신적 원류와도 같습니다. 시대를 외면하는 미신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죠. 저는 1987년 6월항쟁 때 부산시민대동제에서 굿판을 벌였어요. 신문사(부산일보) 다닐 때 노동조합 행사를 하면서 회사 옥상에서도 굿을 했다고요. 그중에서도 씻김굿은 맺힌 것을 푸는 굿이죠. <씻금>의 마지막은 ‘세월호’입니다. 말로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어요.”

 

-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광장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의 연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블랙텐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연극은 제자리를 지키면서 버텨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은 정치적이지만 정치에 들어가선 안돼요. 예술가의 인식이 정치적이어야 하고, 예술의 독자적인 형식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술이 정치에 복무하려 한다거나, 그 반대로 외면하는 것도 곤란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예술이 프로파간다에 빠지기도 했고, 그 반대로 순수 속으로 도피해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답이 아니죠. 우리는 끝까지 연극쟁이로 살아 남아야 합니다. 관객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고 신명과 안식을 줘야 합니다. 변화하는 시대를 형상화할 수 있는 새로운 미학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죠.”

 

마지막 질문은 국립극단에 대해서였다. 2004년부터 3년간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그는 “명동예술극장과 서계동 국립극단을 일원 통합한 것부터 잘못”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이원화해서 운영하는 게 맞습니다. 명동예술극장은 중산층을 위한 웰메이드 연극을 하는 곳, 중장년 배우들이나 원로배우들이 활약하는 곳으로 운영하는 게 적절합니다. 반면에 서계동 국립극단은 젊은 극작가들과 연출가들이 마음껏 연극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실패할 자유가 있는 곳이 돼야 합니다. 외국 연출가들도 이제 그만 와야 합니다. 국립극단은 더 젊어져야 합니다. 차기 예술감독은 40~50대에서 나오길 바랍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