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나가보지 않고도 어떻게 달과 태양의 크기 계산했을까

[테크]by 경향신문

과학적 사고방식의 힘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지난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주도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에 한국이 참가하기로 해 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며칠 뒤에는 이른바 ‘슈퍼블러드문’이 떠서 많은 사람들이 달에 눈길을 돌렸다. 월식 때의 붉은 달을 보면 뭔가 불길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주 옛날에도 달을 보며 자연의 질서를 추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는 달과 태양이 지구의 몇 배인지를 계산해낸 사람이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을 이용했다.


헬레니즘 시대, 아리스타르코스

반달의 성질과 월식 현상 활용해

‘달과 태양, 지구의 몇 배일까’ 계산

실제와 차이가 있는 수치였지만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닌 ‘아이디어’


우선 반달의 성질을 이용하면 태양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태양빛을 반사한다. 그 결과 지구-달-태양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지구에서 보는 달의 모습이 달라진다. 반달은 지구-달-태양이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을 때, 즉 세 천체가 직각삼각형을 이룰 때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서 직각은 지구-달-태양이 이 순서로 이루는 각도이다. 이때 달-지구-태양이 이루는 각도를 재면 전체 직각삼각형의 모양이 결정된다. 왜냐하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고 달을 꼭짓점으로 하는 각은 90도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각삼각형의 모양이 결정되면 한 변에 대한 다른 변의 비율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반달일 때 달-지구-태양이 이루는 각도만 재면 똑같은 모양의 직각삼각형으로부터 지구-태양의 거리가 지구-달 거리의 몇 배인지를 알 수 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얻은 값은 약 19배였다(Aristarchus of Samos, Britannica).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놀라운 우연의 결과로 달과 태양은 지구에서 바라보는 겉보기 크기가 똑같다. 그 결과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라는 우주쇼를 감상할 수도 있다. 달과 태양의 겉보기 크기, 또는 시지름은 약 0.5도이다. 이 각도가 같다는 것은 태양이 달보다 멀리 있는 만큼 정확히 그 비율로 달보다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의 크기는 달의 크기보다 약 19배 더 크다. 이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치와 큰 차이가 있다. 태양까지의 거리는 달까지의 거리의 약 400배이고 따라서 태양의 크기도 달보다 약 400배 더 크다. 오차의 주원인은 달-지구-태양이 이루는 각도였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이 각도를 87도로 추정했다. 정확한 값은 89.85도이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달과 태양의 시지름도 실제보다 4배 가까이 큰 값을 쓰는 등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실재와 거리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아이디어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 측정

하짓날 정오의 태양빛으로 추정

자연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수학적으로 정리할 수만 있다면

앉은 자리서도 많은 것 알 수 있어


아리스타르코스는 월식 현상도 활용했다. 이를 이용하면 달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 기본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월식은 달-지구-태양이 이 순서로 일직선에 놓여 있을 때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현상이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기 시작해 완전히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달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한편 태양광이 평행하게 지구를 비춘다면 달이 지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해 다시 그림자 밖으로 나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지구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시간을 비교하면 달이 지구보다 얼마나 작은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는 태양광이 정확하게 평행하지 않다. 달이 관통하는 지구의 그림자는 지구의 실제 크기보다 작다. 반달일 때의 결과를 이용하면 달-지구보다 19배 먼 거리에 달보다 19배 큰 태양이 놓여 있다. 따라서 지구의 그림자는 대략 지구의 지름을 밑변으로 하는 이등변삼각형 모양이다. 이 상황에 약간의 기하학을 동원하면 달과 지구의 크기의 비율을 구할 수 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얻은 값은 달의 크기가 지구 크기의 약 0.3~0.4배였다. 실제 값은 약 0.27배이다. 이 결과에 따르면 태양의 크기는 지구보다 대략 6~8배 더 크다. 실제 태양의 크기는 지구의 약 109배에 달한다.


아리스타르코스는 그 시절에 태양중심설을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구보다 몇 배나 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보다 그 반대가 더 자연스럽기는 하다. 이는 코페르니쿠스보다 대략 1800년 앞선 것이다. 그러나 태양중심설이 받아들여지려면 결정적인 증거, 즉 ‘스모킹 건’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연주시차이다. 연주시차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같은 별을 하지 때 관측한 위치와 6개월 뒤 동지 때 태양의 반대편에서 관측한 위치는 다르다.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보자면, 서울의 강북에서 남산타워를 보면 그 뒤로 관악산이 보이겠지만 강남에서 남산타워를 보면 그 뒤로 북한산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아리스타르코스 시절에 연주시차를 관측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연주시차는 17세기의 갈릴레이를 논박하는 데에 동원되기도 했다. 당대의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를 옹호하던 갈릴레이를 반대했던 데에는 물론 종교적인 이유도 컸지만, 순전히 운동학적 측면에서 제기된 반론도 적지 않았다. 연주시차를 처음 측정한 것은 1838년의 프리드리히 베셀이었다. 아리스타르코스로부터 무려 2000년이 지난 뒤이다. 베셀은 지구에서 ‘겨우’ 11광년쯤 떨어진 백조자리 61을 관측한 결과 0.3초 각도의 연주시차를 얻었다. 고대 기준으로 보자면 별들이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어 미세한 연주시차를 관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달과 지구의 비율을 알아냈으니 이제 하나의 크기를 알면 다른 하나, 그리고 태양의 크기를 즉시 알 수 있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지구 크기를 추정해본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 주변에 잘 알려진 정보들을 모아 지구의 크기를 추정했지만 원래 지구의 크기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다. 그래도 옛날부터 똑똑한 어르신들이 많아 지구 크기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월식이라는 현상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달이 들어가는 현상임을 알았다. 이때 달을 가리는 지구의 모습이 둥근 것을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려 기원전 4세기의 일이다. 수많은 인공위성이 수시로 우주공간에서 지구 모습을 찍어대는 21세기에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타르코스보다 한 세대 정도 뒤를 살았던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용해 지구 크기를 계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일화는 거의 모든 과학교과서에 소개돼 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집트 남동부의 시에네(지금의 아스완)라는 지방에서 하짓날 정오에 태양빛이 우물 밑바닥까지 비춘다는 사실을 알고 이로부터 지구의 둘레를 측정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태양빛이 우물의 밑바닥까지 비춘다는 말은 태양의 고도가 90도라는 뜻이다. 시에네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살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와 비슷한 동경상의 남쪽에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짓날 정오 알렉산드리아에서의 태양고도를 측정해 (막대기를 세워 그림자를 이용했다는 일화도 있다) 시에네에서의 태양고도와 비교할 수 있었다. 태양이 충분히 멀리 있어 태양광이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에 평행하게 들어오고 지구가 완전한 구라고 가정하면 두 지역의 태양고도의 차이가 곧 두 지역의 위도의 차이가 된다. 위도의 차이란 지구라는 구의 중심에서 같은 경도 위의 두 지역을 바라보는 각도의 차이이므로 원의 성질에 따라 이 각도의 크기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에 정비례한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측정한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의 태양고도의 차이는 약 7.2도로 360도의 50분의 1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구 전체의 둘레는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거리의 50배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 둘레의 길이는 약 4만㎞이고 지구 반지름은 약 6400㎞이다. 에라토스테네스 시절의 길이 단위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의 결과를 실제 값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또한 두 지역이 정확히 같은 경도에 있지도 않기 때문에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면 지구 둘레를 측정할 수 있다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아이디어이다.


이제 지구의 절대적인 크기를 알았으니까 이로부터 달의 실제 크기도 알 수 있고 태양의 실제 크기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달까지의 실제 거리와 태양까지의 실제 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외로 쉽다. 달과 태양의 시지름이 0.5도라는 사실을 이용하면 된다. 달의 실제 크기를 아니까 이 값을 달까지의 거리로 나누면 그 결과가 0.5도이어야 한다. 0.5도는 전체 원의 한 바퀴인 360도보다 720분의 1이 작으므로 달의 크기는 달까지의 거리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주보다 720분의 1이 작을 것이다. 실제 달까지의 거리는 약 38만㎞이다. 지구 지름이 대략 1만3000㎞이니까 지구-달 사이에는 지구가 서른 개 정도 들어간다. 이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도 쉽게 얻을 수 있다. 태양은 달보다 약 400배 더 크고 거리도 약 400배 더 멀리 있다. 그 값은 약 1억5000만㎞이다. 이 값을 1천문단위(1AU)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잘 살펴보면 그 옛날에도 지구에 가만히 앉아 달과 태양을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 지구와 태양과 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 과정에서의 성과가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작용하는 것도 알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자연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이를 수학적으로 정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저 멀리 우주로 나가보지 않더라도 정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인 지식체계는 서로 얽히고설켜 새로이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도 내년이면 달 탐사선을 보낸다고 한다. 밝은 달을 바라보며 한번쯤은 선현들의 지혜를 따라가보자.


이종필 교수
경향신문
2021.06.21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