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장고에서 오래 묵은 공깃밥은 사양할게요···밥에 진심 담은 솥밥이 뜬다

[푸드]by 경향신문
경향신문

오직 나만을 위해 갓 지은 든든한 한 끼. 솥밥이 요즘 외식업계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용감한까치 제공

갓 구워낸 생선부터 보글보글 뚝배기 찌개, 제철 나물무침까지 입맛 돋는 상차림을 받자마자 기대에 가득 차 밥뚜껑을 열었는데, 지은 지 반나절은 지난 듯한 밥이 들어있다면? 이보다 김빠지는 일이 있을까. 식품MD 김진영씨는 “밥집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밥”을 두고 “온장고에 층층이 쌓여 숨이 죽은 채로 끌려 나와 손님상 위에 오른다”고 표현했다.


밥에 진심을 담은 솥밥을 간판으로 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주문과 동시에 밥을 짓느라 기본 10~15분 이상 소요되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 새로 지은 밥을 먹기 위해 빠듯한 점심시간에도 직장인들은 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솥밥을 받으면 일단 뚜껑을 열고 막 지은 밥 향기를 음미한 뒤, 함께 나온 빈 그릇에 당장 먹을 밥을 덜어낸다. 누룽지만 남은 솥에는 따뜻한 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둔다. 김치볶음밥의 반찬으로 김치를 먹듯, 밥을 먹은 뒤에 잘 우러난 누룽지 숭늉을 디저트로 먹어야 비로소 한국의 솥밥 ‘완식’이다.


전복, 굴, 소고기, 버섯, 고등어, 뿌리채소 등을 올리는 것이 전통의 솥밥 조리법이라면, 최근 강자들은 스테이크, 금태(눈볼대), 장어 등 고급화로 차별화했다. 가지, 초당옥수수 등 제철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경향신문

누룽지 숭늉까지 ‘디저트’로 먹어야 한국인의 솥밥 ‘완식’이다. 용감한까치 제공

푸드칼럼니스트 정동현씨는 “일본식 덮밥인 돈부리와 같이 장어와 같은 토핑을 올린 솥밥을 내놓는 집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지난 6월 문을 연 솥밥전문브랜드 솥내음은 일본식 돼지고기덮밥인 직화 부타동 솥밥부터 양념꼬막 솥밥, 곱창솥밥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추가 비용을 내면 다른 메뉴의 토핑을 추가할 수 있다.


코스 요리를 내놓는 고급식당들도 솥밥을 추가하는 추세다. 육회부터 다양한 부위 등 한우 코스를 취급하는 이속우화는 마무리로 한우솥밥을 준다. 일본식 닭꼬치 코스를 내는 합정동의 야키토리 나루토 오모테나시의 고등어 가마솥밥은 손님들이 배가 불러도 거부할 수 없는 메뉴다.


도미와 전복솥밥으로 유명한 도꼭지는 국내산 제철 식재료로 솥밥을 만든다. 계절솥밥과 함께 생선구이와 제육볶음 등을 주문할 수 있어 풍성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한식공간 조희숙 셰프가 총괄 디렉팅을 맡은 한국인의밥상은 누룽지삼계솥밥, 우렁꽃나물두부솥밥, 콩나물오징어솥밥 등 한식 솥밥을 취급한다.


솥밥 마니아라면 가마메시야를 표방한 일본식 솥밥집을 손에 꼽는다. 장어솥밥 맛집으로 잘 알려진 쥬안은 겨울이면 통통한 대게살과 대게 내장을 얹은 대게솥밥을 판매한다. 여의도의 울림은 저녁 시간 판매하는 코스 요리의 식사로 해삼내장(고노와다), 와규 등을 올린 일본식 솥밥을 고를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인근 직장인들에게 고등어솥밥 맛집으로 인기다. 솥밥 하면 역시 쌀이 중요하다. 솥밥 전문 요리 유튜버 최윤정씨는 “셰프의 어머니가 직접 재배하고 갓 도정한 쌀로 만들어 더욱 특별하다”며 미쉐린1스타 미토우의 제철 솥밥을 꼽았다. 코스 마지막에 나오는 솥밥은 봄에는 봄나물, 여름엔 죽순, 가을엔 버섯, 겨울엔 도미로 다양하게 변주된다고.

경향신문

‘흔한’ 채소 가지를 얹어 지은 매콤가지솥밥. 용감한까치 제공

‘2인 이상’ 주문이 필요한 전골이나 탕과 달리 1인 차림을 기본으로 하는 솥밥은 위생을 중시하고 ‘혼밥’이 대중화된 코로나 시대에 환영받았다. 최윤정씨는 한 끼라도 제대로 먹고 싶은 현대인에게 고기, 생선, 채소 등으로 속까지 든든하게 채워줄 수 있는 솥밥이 환영받는 듯하다고 말한다. 또한 “선홍빛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 선명한 노랑의 계란 노른자, 푸릇푸릇 향긋해 보이는 쪽파가 아름다운 스테이크 솥밥”처럼 “눈으로 보며 즐길 수 있는 점도 솥밥이 트렌디해진 이유”로 봤다.


한편으로 갈수록 고급화되는 솥밥 트렌드를 두고 “밥이 더는 주식이 아니라는 방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빵과 면이 주식의 자리를 넘보면서 평범한 가정식 ‘백반집’은 오피스 밀집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정동현씨는 “밥이 가끔 먹는 음식이 된 만큼 평범한 쌀밥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고 특별하게 먹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집에서 만드는 솥밥 실전

경향신문

집에서 만드는 솥밥은 냉장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두부와 버섯을 들기름에 볶은 뒤 밥을 지어 맛은 물론 칼로리 걱정까지 잡은 들기름두부버섯솥밥. 용감한까치 제공

“밥물 끓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밥 냄새가 집 안 가득 솔솔 풍기는 일상”이 좋아서 전기밥솥을 없애고 7년째 매일 솥밥을 짓는 최윤정씨는 <사계절 맛있는 솥밥 보양식>(용감한 까치)을 통해 따라 하기 쉬운 솥밥 레시피를 공개했다. 버섯, 애호박, 콩나물같이 구하기 쉬운 재료 위주로 솥밥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토핑을 강화한 식당 솥밥 가격은 보통 2만원대에서 5만원대에 육박해 자주 가기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화려한 토핑이 솥밥의 핵심은 아니다. 최씨는 “냉장고에 남아있는 자투리 채소를 잘게 다져 들기름에 볶은 뒤 쌀 위에 얹어 밥을 지으면 채소의 깊은 감칠맛이 쌀알에 스며들어 훌륭한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두부나 나물 등 채소를 듬뿍 넣고 쌀 양을 조절하면 칼로리 걱정을 덜어내고 즐길 수 있다.


“예전에는 그냥 쌀과 물로만 솥밥을 짓고, 다 된 밥에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 식이었다면, 최근엔 채소육수, 멸치육수, 고기육수 등으로 밥물을 잡고 고기나 생선을 올려 밥을 짓는 솥밥으로 변화했어요. 여기에 소금과 맛간장으로 미리 간을 해서 쌀 자체에 감칠맛이 배게 하면 별도의 양념장이 필요 없이 솥밥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을 낼 수 있어요.”


솥밥은 바로 먹는 맛이라 딱 한 끼 먹을 용량만 짓는 것이 기본이다. 쌀양이 줄면 그만큼 끓이고 뜸 들이는 시간도 짧아진다. 압력 냄비를 활용하면 잡곡 불리는 시간이나 밥 짓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경향신문

명절에 받은 참치통조림도 양파를 더하면 좋은 솥밥 재료다. 토핑이 알찬 솥밥은 반찬이 크게 없어도 아쉬울 것 없는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용감한까치 제공

최씨는 주부들이 솥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갖은 재료를 올린 솥밥에는 굳이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짭조름한 절임이나 제철나물 한두 가지만 곁들여도 풍성한 한상차림을 낼 수 있다. 최씨는 “처음에는 솥밥 자체의 맛을 만끽하다 두 번째 그릇부터는 톡톡 터지는 매콤한 청어알젓,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매력적인 우엉피클, 두꺼운 곱창김 등으로 변주를 주면 한 솥을 싹 비울 수 있다”고 전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일본을 오가며 생활한 최씨는 유튜브 채널 류니키친을 통해 한식과 일식 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솥밥 제작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매콤가지솥밥과 차돌박이부추솥밥이다. “가지를 전분에 묻혀 기름에 한 번 지진 뒤 쌀 위에 얹어 밥을 짓기에 쫀득한 가지의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입에서 가지가 버터처럼 사르르 녹는 맛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한다. 매콤한 두반장을 양념장으로 활용한 것도 차별점이다. ‘차돌박이부추솥밥’은 “기름기가 차르르 도는 차돌박이와 알싸한 향이 매력적인 영양부추의 어울림이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맛”이라고 말한다. 무염 버터와 일본식 맛간장인 쯔유로 맛을 입힌 쌀로 밥을 지은 뒤 구운 차돌박이와 송송 썬 영양부추를 듬뿍 올린 솥밥이다. 특별한 날 손님초대 요리로도 추천한다. 샴페인이나 레드와인과도 잘 어울린다고.


참치통조림도 솥밥의 좋은 재료다. 쯔유와 참치액으로 간한 쌀로 5분간 밥을 짓다가 채를 친 양파와 기름 뺀 참치를 올린 뒤 10분을 더 끓이는 게 포인트. 마요네즈를 살짝 곁들여 김에 싸 먹으면 고소한 참치김밥을 먹는 듯하다. 제철 식재료 굴은 맛이 오른 겨울 무나물과 함께 솥밥으로 내기 좋은 조합이다.

경향신문

류니키친이라는 이름으로 솥밥 전문 유튜버로 활동 중인 최윤정씨는 가정식 솥밥 레시피를 담은 <사계절 맛있는 솥밥 보양식> 를 펴냈다. 용감한까치 제공


솥밥 초보를 위한 최윤정의 노하우


1. 바닥이 두껍고 뚜껑이 무거운 무쇠솥이나 도기솥을 활용해 찰지고 윤기 나는 밥을 지을 수 있어요. 보유한 솥 중 바닥이 두꺼운 냄비나 무쇠 냄비로 솥밥을 지어보세요.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통 3중 혹은 5중 스테인리스 냄비도 가능해요.


2. 무엇보다 중요한 건 쌀이에요. 어떤 품종의 쌀을 사용하느냐, 도정한 지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밥맛이 확 달라지거든요. 혼합미보다는 단일미, 도정한 지 보름 이내 쌀이 밥맛이 좋아요.


3. 솥밥의 감칠맛은 육수에서 비롯돼요. 육수를 따로 내기 힘들 때는 국물용 뿌리 다시마 한 장을 불에 살짝 그슬려 쌀 위에 올려 밥을 지어보세요. 다시마의 깊은 감칠맛이 쌀알에 녹아들어 따로 육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맛있는 솥밥을 만들 수 있어요.


4. 쌀과 물의 비율은 기본 1 대 1(마른쌀 기준)입니다. 물기가 많은 버섯이나 굴 같은 식재료를 올려 솥밥을 지을 때는 재료가 익으면서 나오는 수분을 감안해 밥물을 덜 잡아야 합니다.


5. 남은 솥밥은 주먹밥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다음날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보세요. 밥 자체의 고소함이 배가돼요. 마른 팬에 볶음밥처럼 볶아 계란프라이를 얹으면 새로운 요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2023.02.08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