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최강야구’가 주는 몇가지 불편함[위근우의 리플레이]

[연예]by 경향신문

‘혹사와 야신’의 간극…‘신화의 복권’만 그린다면 환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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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난 4월10일 방영된 JTBC <최강야구> 2023시즌 첫 회차에는 기아 타이거즈에서 데뷔하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은퇴한 왕년의 국가대표 투수 한기주가 은퇴한 프로야구 레전드 중심으로 구성된 최강 몬스터즈 합류를 위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방송 내내 자막으로 강조했듯 그는 고등학교 시절 시속 158㎞ 강속구를 던지기도 했던 당대의 파이어볼러였다. 최강 몬스터즈 합류 여부와는 별개로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오르고 싶었다는 그의 온 힘을 다한 패스트볼 구속은 120㎞대 초반. 세 번의 수술과 함께 강점인 구속을 잃은 그를 보며 최강 몬스터즈 멤버인 박용택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안쓰러울 수도 감동적일 수도 있는 장면. 하지만 마냥 감상에 젖기 어려웠다. 현재 최강 몬스터즈 감독으로서 심사를 보는 인물이 김성근 감독이기 때문이었다.


고교 시절에도 프로 입단 후에도 혹사당하며 팔꿈치가 망가져 은퇴한 투수,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평가하는 혹사의 대명사 김성근 감독이 번갈아 비쳐질 때의 어색함. 물론 한기주를 혹사시킨 것은 기아 타이거즈의 서정환, 조범현 감독이다. 하지만 김성근 역시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에서 전병두, 권혁, 송창식, 김민우 등을 혹사시키며 선수 생명을 위협했던 바 있다. 김성근이 한기주를 심사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기주의 사연은 그것대로 감동으로 써먹으며, 김성근에 대해서는 이미 야구팬 사이에선 깨진 ‘야신(야구의 신)’ 캐릭터로 활용하는 <최강야구>의 행태가 문제일 뿐이다.


최강 몬스터즈의 감독이던 이승엽이 두산 베어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며 그 빈자리를 김성근이 채웠을 때의 걱정은 단 하나였다. 근성과 무조건적인 고강도 트레이닝을 강조하던 구시대적 야구관과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성근 신화가 혹여 부활하는 것. 최강 몬스터즈 멤버들이 혹사당할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지옥훈련의 신봉자라 해도 당장 은퇴한 노장들에게 방송에서 오버트레이닝을 시킬 이유는 없다. 이번 시즌 예정된 총 경기 수가 프로야구 한 시즌 144경기에 훨씬 못 미치는 31게임에 총 엔트리도 21명으로 지난 시즌보다 늘었으니 한 선수가 이닝을 무리하게 소화할 일은 애초에 없다. 물론 과거 이승엽 감독 체제에서의 비교적 느슨한 분위기와 비교해 선수들을 좀 더 긴장시키는 면이 있지만, 그것도 괜찮다. 비록 은퇴했지만 야구를 손에서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웬만한 아마추어 야구 강호 정도는 한 수에서 두 수 위 실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최강 몬스터즈 멤버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이 긴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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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병장과 주임원사의 조합은

예능을 뛰어넘는 절실함으로

많은 순간 뜨거움을 안겨주지만

김성근의 상징 같은 지옥훈련을

‘밈’처럼 재현하는 편집은

어느 정도 자기제한이 필요하다

최강 몬스터즈에 좋은 처방이

삶의 다른 곳엔 해법이 아니기에


아무리 예능보다는 다큐에 가깝다는 <최강야구>라지만 태생이 말년 병장에 가까운 멤버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기에, 지옥에서 온 주임원사 김성근과의 조합은 나쁘지 않다. 그러니 적당히 선수들을 긴장시켜 승수를 쌓아 선수도 방송도 김성근 본인도 만족할 행복 야구를 하면 그만이다. 트라이아웃 에피소드와 같은 회차에서 ‘지옥의 스프링캠프’로 명명된 김성근의 훈련 자체는 선을 넘지 않았다. 와이번스와 이글스에서 김성근과 함께한 애제자 정근우가 다른 멤버에게 겁을 잔뜩 주긴 했지만, 지난 시즌보단 더 강한 상대들인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선수들과의 대결을 앞두고 목표인 승률 7할에 도전하기 위해선 노장들을 위한 체력 훈련이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훈련 목표의 합리성과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야신’ 김성근이 지옥훈련으로 선수들의 실력을 끌어올린다는 오래된 신화를 일종의 ‘밈’처럼 재현하는 구성과 편집이다.


유튜브의 <최강야구> 하이라이트 영상엔 ‘군대 프로그램 아님. 야신 김성근의 지옥(=스프링캠프)에 놀러 온 몬스터즈 환영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과장된 표현으로 웃어줄 수도 있다. 김성근이 무분별한 특타와 벌투 등 구시대적인 훈련으로 선수들을 혹사시키던 한화 이글스에서의 기억이 없었다면. 시즌 중에도 야수의 체력과 회복력을 갉아먹는 야간 특타로 오히려 팀의 장기 레이스에 타격을 주고 체벌성 특타 논란까지 있던 과거는 묻어두고 ‘☆특타 800개 달성☆’이라고 장난스러운 자막을 달아도 되는 걸까. 심지어 그 대상이 LG 트윈스 입단 직후 당시 감독이던 김성근의 혹독한 마무리 캠프 훈련으로 어깨 부상을 입었던 박용택인 상황에서? KT 위즈 퓨처스팀과의 경기가 진행된 시즌 세 번째 회차에서 선수들이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치 특타나 풋워크 훈련을 받으리라 장난스럽게 자막을 다는 제작진은 순진할 정도로 과거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김성근을 복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후자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앞서 말했듯 <최강야구>에서는 단지 말년 병장들을 통제할 주임원사가 필요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다시금 과거를 미화할 기회를 얻은 게 우연은 아닐 게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 전설처럼 남은 오대산 극기 훈련 에피소드는 유재석 말대로 지금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고릿적 해프닝이라 치자. 가장 최근 부임했던 이글스에서의 특타, 벌투, 혹사, 선수 탓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마치 그 사이 다 반박이라도 된 듯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연습으로 오늘 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선수도 마음이 편하다고 말할 때 MC들이 할 수 있는 건 명언이라도 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다. 이처럼 과거의 한 시기를 통째로 삭제해야만 <최강야구> 유튜브 영상에 ‘김성근이 왜 야신인지 증명됐다’ ‘이게 감독이고 전략이다’ ‘야신 감독님의 용장, 지장, 덕장을 보면 진정한 리더십을 몸소 배울 수 있다’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이런 정신과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찬사의 댓글이 달릴 수 있다.


최강 몬스터즈 시청자나 팬덤이 자기 팀 감독을 명장으로 존경하고 그의 경기를 사랑하는 건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누렸고, 다시 방송을 통해 부활하는 리더십의 신화가 현재 한국 야구에 대한 실망감을 해결해줄 처방처럼 이야기되는 건 난센스다.


김성근의 야구 철학은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J K 시몬스)처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리더와 그걸 수행하는 조직만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선수들에게 좀 더 절실함이 있었더라면 지난 3월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좀 더 좋은 성적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WBC 일본전 참패 이후 일본에 오타니가 나오는 동안 우리 준비가 미흡했다는 김성근의 지적이 유의미한지는 모르겠다. 당장 오타니와 오타니 이상의 강속구를 뿌리는 사사키 로키는 모두 에이스 혹사로 유명한 일본 고교야구에서도 감독의 배려로 투구수 관리를 받고 건강히 성장할 수 있었다.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말을 하던 김성근의 야구 철학이 한국의 오타니를 만들 수 있을까. WBC 직전 “요즘 일본 선수들은 안 좋은 점이 있어도 피곤하다면서 훈련을 마치려고” 하는 게 약점이라 말하던 그가? 오히려 사사키가 투구수 관리를 받던 당시 일본 야구 원로인 장훈이 “서양에선 어깨를 소모품으로 여기지만 동양에선 던질수록 단련된다”고 김성근과 대동소이한 야구 철학으로 감독을 비판하자 일본인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는 자신에게 드래곤볼이 있다면 장훈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없애고 싶다고 반박한 바 있다. 정체된 한국 야구나 나태한 조직엔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김성근 신화로의 퇴행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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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칼럼니스트

<최강야구>는 분명 어떤 종류의 절실함을 보여주며 예능을 뛰어넘는 벅참과 뜨거움을 많은 순간 보여준다. 그리고 김성근은 그런 절실함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능숙한 지도자다. 방송이 이러한 시너지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단지 어느 정도의 자기제한이 필요하다. 현실의 김성근은 최강 몬스터즈의 좋은 처방전일 수 있지만, 과거 그 자신과 언론을 통해 그리고 다시 <최강야구>와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미화된 버전의 김성근의 철학은 삶의 그 어느 곳 어느 순간에도 좋은 처방이 될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누군가는 혹사로 시달렸던 선수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기회를 바랐고 또 여전히 김성근에 대한 존경심을 밝히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하고 싶을 수 있겠다. 그게 정확히 본인이 원하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게 해줘야 한다던 후보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 발언의 또 다른 버전이다. 은퇴했음에도 여전히 야구에 대한 절실함을 보이는 선수들을 보며 감동받고 대리만족할 수도 있다. 실제 프로 경기에서 더 많은 절실함을 보고 싶고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절실하다면 극한의 자기착취를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돼도 어쩔 수 없다는 철학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야구선수 다음 차례는 당신이 될 것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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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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