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번 코스가 해파랑길 포항 구간에서 가장 메인이라고 생각되는 곳이다. 해파랑길 15번 코스 끝자락에 위치한 호미곶 때문이다. 호미곶은 우리 한반도 지형에서 호랑이의 꼬리 부분으로 특히나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매년 새해 해돋이로도 워낙 유명한 곳이다. 그만큼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 출발 전에 오랜만에 포식을 해보기로 한다. 확실히 강원도부터 계속 내려오며 먹었던 관광지에서의 물가에 비해 싸며 양이 많았다. “뭔가 제대로 회를 즐기며 먹는 것 같다, 코쿠야” “그러게요, 해파랑길 걸으면서 가장 많이 먹는 날이 될 것 같네요 ㅎ
어제에 이어, 오늘은 59코스다. 오늘도 역시 역방향으로 58코스를 향해 걸을 예정이다. 마을 풍경을 열심히 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다가오셨다. “어디서 왔나?” “서울에서 왔어요! 할머니 혹시 남파랑길 아세요?” “그 저 뭐 빨간거 파란거 붙어 있드만 그거가?” “맞아요! 제가 그 길을 걷고 있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신 빨간거 파란거는 남파랑길의 화살표인 듯하다. 남파랑길에서 동네 주민분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였던 것 같다. 하긴 이렇게 인적 드문 동네에 혼자 배낭 메고 다니면 궁
순천만습지로 본격 입장하는 다리에 발을 딛는 순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길게 뻗은 다리를 따라 양쪽으로 갈대가 감싸고 있었다. 마치 얼른 오라고 반기는 것 같이 말이다. 갈대들에게 환영받으며(?) 길고 긴 다리를 쭉 따라가니 내 마음도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나........" 이 말을 연신 내뱉으며 나는 다리를 더 건너지 못하고 카메라 셔터만 계속해서 눌러댔다. SNS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광경 그대로였다. '왜 더 진작 와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알았다면, 정말 매년 왔을 것 같다
서둘러 길을 나섰던 건 순전히 새벽녘의 공기가 나를 깨워서였다. 커튼은 단단히 여미어 두었지만, 창문을 열어두고 잠들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부쩍 차가워진 바람이 내 콧등을 툭툭 두드렸다. 시큰했다.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직 어둑어둑한 세상이 창문 너머로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새 밤이 꽤 길어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가을이었다. 이번 목적지는 전라남도 여수 호랑산이었다. 신라의 화랑들이 무예를 갈고닦았던 곳이라 하여 과거 '화랑산'으로 불렸던 곳이다. 지금도 정상부에서 호랑산성이라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 일대에서 삼국
기분 탓일까, 올해는 유난히 덥고 습한 계절이 빠르게 지나간 듯하다. 어느새 세상 곳곳에 조금씩 빠알간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여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함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금세 날아가 버렸고, 나는 이 풋가을의 쾌청함에 반가움을 표하기로 했다. 산책(散策). 일 년 중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나는 발갛고 노란빛으로 유명한 몇몇 여행지를 떠올리다, 국내 최고의 단풍 명소로 손꼽히는 내장산 자락의 정읍사 오솔길로 산책을 떠나기로 했다. 붉게 물든 단풍을 만나기엔 아직 조금
400여 년 전통의 도배례를 이어오고 있는 전국 유일의 촌장제 운영 마을인 위촌리. 이름이 참으로 정겹다. 부를 때도, 들을 때도 정감 어린 '바우'는 강원도에서 바위를 일컫는 사투리다. 강원도에서는 흔히, 강원도와 강원도 사람을 부를 때 감자바우라고 부른다고 했다. 바우길은 그러한 친근함이 묻어있는 길로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 굽어진 산맥과 강원도 거친 동해바다를 잇는다. 바우길을 크게 강릉 바우길 17개 구간, 대관령 바우길 2개 구간,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배우길, 아리 바우 길러 이루어져 있으며 총거리는 400km이다
정말이지, 파란 하늘은 오랜만이었다. 수십 일어나 비를 쏟아부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졌다. 야속한 하늘 같으니라고. 햇볕이 건네는 따스한 손길도, 등 뒤를 톡톡 두드려주는 바람도 반가웠다. 비와 구름 사이에 가려진 채 계절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던 게 문득 떠올랐다. 늦여름. 가을을 앞둔 전형적인 날씨였다. 아직 덥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마저 누리고 싶은 건 순전히 그 지긋지긋했던 비구름 때문이었다. 참으로 길고도 긴 장마였다. 세종호수공원을 찾았다. 날씨가 좋았고, 왠지 모르게 공원이 한적해 보였으며, 반나절 정도는
최근 몇 주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친구 하나는 나더러 넋이 나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일이 몰려들었고, 이사를 해야 했으며, 미뤄두었던 회의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러는 와중에 교통사고 당했으니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에게 "이번 일만 끝나면 잠시 사라질 거야."라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고, 겨우 시간이 났다. 그간 마음에 두었던 곳, 비수구미로 떠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은 없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져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이 개었다. 비구름은 온
첩첩산중에 계곡 소리가 우렁차다. 정겨운 시골 마을 길에는 고개를 우뚝 세운 벼가 바람에 나부낀다. 수염을 기른 옥수수가 가득한 밭, 하우스 안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가 춤을 춘다. 빼곡히 채워져 있는 부드러운 곡선의 고추 끝엔 투명한 아침 이슬을 맺혀있다. 강인한 생명력이 깃든 온갖 작물들을 마주하며 끝없이 길이 이어진다. 때로는 논과 밭을 지나고, 때로는 산을 오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저수지를 돌아도 본다. 수많은 생명을 마주하고, 새로운 풍경을 지나쳤건만 우렁찬 계곡 소리는 여전하다. 하늘에 닿을 듯 아찔한 높
여름이 왔음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청아한 계곡 물소리. 이맘때쯤은 여름을 느끼러 계곡으로 자주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는 물놀이는 하지 못할 테니 한적한 계곡에서 눈과 귀로 느끼고 싶어 오랜만에 길 위에 섰다. 유유자적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 오늘은 계룡산 국립공원 탐방로에 있는 수통골 코스다. 분명 아침부터 햇빛이 쨍쨍 내리비친다고 해서 일부러 오늘로 날을 잡았는데, 장마철 날씨는 종잡을 수 없는가 보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심상치 않더니 도착하니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먹구름만 가득했다. '그래. 길을 걷기엔 파란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