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숲길에서 초록 물 들다 :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

[여행]by 걷기여행길

고창읍 고인돌 공원.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세​월은 한 해 가운데를 막 지나가고, 태양은 하늘길 가장 높은 곳에서 이글댄다. 유월 달력을 찢어내고 7월 달력과 마주한다. 달력 속에도 여름이 들었다. 하늘에서는 흰 구름이 속삭인다. “한 여름 숲속이 얼마나 좋은지 잊은 것은 아니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새로 장만한 등산화를 시험해야겠다. 주섬주섬 배낭 챙기고 카메라 확인하고 길을 나선다.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선운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꼽으면 언제나 한자리를 차지하는 곳이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선운산을 달리 도솔산으로도 부른다.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兜率)은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 정토를 의미한다.

고창군에서 운영하는 길 중에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이 있다. 고창읍에 있는 고인돌 박물관부터 고창천과 주진천을 따라가다가 선운산을 넘어 서해 갯벌에 이르는 길이다. 모두 4코스로 운영한다. 선운산 도립공원은 4코스 보은길 구간에 들어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송악이 절벽 바위면 전체를 덮어 버렸다

선운산 품속에는 천연기념물 셋이 있다. 송악, 동백나무숲, 장사송이다. 그중 하나 송악을 찾아보는 것으로 걸음을 연다. 관광안내소를 지나서 물가로 나가면 절벽을 온통 덮은 송악을 볼 수 있다. 이곳 송악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족보 있는 몸이다. 정식 이름은 ‘고창 삼인리 송악’이다.

선운사 승탑밭. 정갈한 승탑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늘 푸른 덩굴나무다.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바위나 다른 나무에 붙어 자란다. 서·남해안이나 섬 지방 숲속에서 만날 수 있다. 내륙으로는 이곳 고창 선운산 부근이 북방한계선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수백 년은 되었다고 본다.

선운산 생태숲을 돌아가면 선운사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부처님 나라와 속세를 나누는 경계다. 여기부터 부처님 나라가 시작되니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뜻으로 세운다. 일주문을 지나면 숲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내내 숲길에서 즐길 일만 남았다.

(왼) 백파스님 승탑비.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썼다. / (오) 승탑비 부분. 화엄종주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깊숙한 숲길 입구에 승탑밭이 있다. 승탑은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석조물이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승탑과 승탑비들이 여러 기 안치되어 있다. 그중에 백파스님 승탑비가 있다. 이 백파스님 승탑비 글씨가 추사 김정희 선생 글씨다. 글씨 품격을 논할 수준이 못 되는 막눈으로 보기에도 칼칼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선운사 가는 길은 물길과 나란히 가는 울창한 숲길이다.

선운사 가는 길은 숲길과 물길이 같이 한다. 냇물을 따라 느티나무며 단풍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햇빛 한줌 들어오지 못하는 울울한 숲길이다.

가을 선운사 길은 울긋불긋 고운 길이다.

이 길은 가을에 또 다른 성취를 보여준다. 선운사 애기단풍. 정말 곱다.

선운사 대웅보전과 만세루. 왼쪽이 대웅보전이고, 오른쪽이 만세루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 시절에 고승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진흥왕 시절은 신라와 백제 사이에 세력 다툼이 치열했던 시기다. 당시 이곳은 백제 땅이었다. 신라왕이 이곳에 사찰을 지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시대나 지리 상황으로 보아 검단선사 창건설에 무게가 실린다.

듬직한 만세루 지붕 위로 보이는 숲이 선운사 동백나무 숲이다.

사방에서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절 마당이다. 휑하게 넓은 마당 가운데에 근래에 만든 석등이 있다. 석등 뒤로 뒷모습을 보이며 듬직하게 서 있는 건물이 만세루다. 만세루 앞에는 몇 층인가 소실되어 육층까지만 남아 있는 석탑이 있다. 석탑 뒤 석축 위에 앉은 건물이 선운사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이다.

선운사 대웅보전과 배롱나무

만세루는 듬직한 모습만큼 사용한 부재도 눈길을 끈다. 기둥은 아름드리 통나무를 대충 다듬어 썼다. 두 종류 나무를 이어서 기둥으로 쓴 것도 보인다. 축대 위에 단정하게 앉은 대웅보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 맞배지붕집이다. 맞배지붕집이면서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장치가 있는 다포계 건물이다. 대웅보전 양쪽에는 시립하듯 배롱나무 두 그루가 섰다. 나이가 제법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다. 이리구불 저리구불 나무줄기도 힘이 느껴진다. 한 여름 내내 붉은 꽃을 쉼 없이 피울 것이다.

대웅보전 뒤쪽 푸른 숲이 선운산 두 번째 천연기념물인 동백나무숲이다. 정식 이름은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이고 천연기념물 제184호다. 아쉽게도 철이 아니라서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은 볼 수 없다.

낙조대 해넘이를 보신 적이 있나요

선운사부터 도솔암에 이르는 길도 울창한 숲길이다.

선운사를 두루 돌아 다시 천왕문을 나선다. 선운천 물길과 숲길은 계속 동행한다. 싱그러운 푸른 길을 기분 좋게 걷는다. 선운사에서 800m 정도 가면 갈림길이다. 물길도 갈리고 발길도 갈린다. 선운천은 가던 길로 이어지고 발길은 직각으로 꺾인다. 냇물과는 헤어지지만 작은 골짜기를 따라 푸른 숲길은 여전히 계속된다. 어렵지 않을 만큼 오르내림이 있는 길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계곡 숲길과 찻길이 만나는 곳에 선운산 세 번째 천연기념물인 장사송이 있다.

장사송. 나뭇가지가 부챗살처럼 퍼져 자랐다.

장사송은 소나무다. 나뭇가지가 부챗살처럼 퍼져 자랐다. 나무 높이는 23m, 가슴높이 둘레는 3m 정도다. 나무 이름은 장사송 또는 진흥송으로 부른다.

진흥굴. 장사송 바로 옆에 있는 굴이다. 진흥왕이 이 굴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장사송은 이곳 옛 이름이 장사현이었던 것에서 유래했고, 진흥송은 나무 옆에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어서다. 나라에서 붙여 준 정식 이름은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이다. 나이는 600살 정도로 본다. 천연기념물 제354호다.

나한전.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고 좌우에 아라한 경지에 이른 성자들을 모신 곳이다.

도솔암 내원궁.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머물고 계신 곳이다.

장사송을 뒤로하고 언덕을 오르면 도솔암이다. 도솔암은 이라는 이름은 도솔천에서 왔다. 도솔천은 불교 우주관에서 말하는 하늘(天) 중 하나로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정토다. 도솔천에는 내원과 외원이 있는데 미륵보살은 내원에 거주한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면 우리나라 불교 미술 중 걸작으로 꼽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볼 수 있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도솔천 내원에 머물고 있는 미륵보살이 훗날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도솔암 위쪽 절벽으로 올라가면 내원궁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대형 마애불이다.

도솔암, 내원궁, 나한전을 차례대로 찾아보고 동불암 마애불 앞에 선다. 거대한 절벽 거친 면을 다듬어 부처를 새겼다. 표준 화각 렌즈로는 다 잡히지도 않을 만큼 큰 마애불이다. 눈꼬리가 올라간 눈과 꽉 다문 입 등이 원만하기보다는 다부진 모습이다. 이 마애부처님 공식 이름은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다. 보물 제1200호다.

오른쪽 건물들이 도솔암. 왼쪽 가운데 절벽 오른쪽 바위에 마애불. 마애불 위 나무들 사이에 내원궁.

보통은 마애부처님을 뵙는 것으로 올라왔던 길을 내려간다. 그래도 왕복하면 9km를 걷게 된다. 등산 경험이 있고 기왕에 선운산에 들었으니 등산 기분이라도 내 보려는 사람들은 낙조대를 거쳐 참당암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한다. 그러면 11km 조금 넘게 걷는다. 험한 산길은 아니지만 계단을 힘들여 올라야 하는 구간이 있다.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 4코스 보은길도 낙조대 노선을 따라간다.

도솔암을 떠나 선운산 낙조대 등산길로 접어든다. 처음부터 계단길이다. 한참을 올라가야 하니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천천히 느긋하게 한발 두발 올라야 한다. 힘들여 오르면 땀 흘린 보상은 받는다. 능선에 올랐으니 시원한 바람은 기본이다. 조금 전에 떠나온 도솔암, 내원궁, 마애불이 저만치 아래에 있다.

낙조대에 오른다고 멋진 풍광과 고운 해넘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안개 때문에 시계가 제로다.

용문굴.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에 의해 쫓겨난 용이 급히 도망가다가 바위에 부딪혀 만든 굴이라고 한다.

낙조대에 선다. 고창군 해리면과 심원면 들판이며 그 너머 바닷가 풍광이 한 프레임으로 잡힌다. 낙조대라는 이름이 괜히 붙었을 리 없다. 낙조대에 섰다고 해서 언제나 서해 해넘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몰 시간을 맞춰야 하고 무엇보다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이름 있는 해돋이 해넘이 명소에 따라붙는 ‘삼대 적덕’은 낙조대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왼) 참당암길. 멀지 않은 곳에 참당암이 있다. / (오) 참당암. 선운사 산내암자로 조용하고 단출한 곳이다.

낙조대를 내려와 소리재까지 오면 다시 선택해야 한다.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 4코스 보은길은 가던 길인 견치산 방향으로 계속 가야한다. 보은길을 이어걷기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소리재에서 참당암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나머지 보은 길은 그늘 하나 없는 포장도로라서 한 여름 걷기에는 고역이다. 참당암쪽으로 방향을 바꿔 산길을 내려온다.

돌아오는 길. 답사객과 등산객이 다 빠져 나간 길은 조용하고 한가롭다.

푸른 숲속에서 한나절. 몸에도 마음에도 초록 물이 듬뿍 들었다.

걷기 여행 필수 정보

  1. 걷는 시간 : 5시간 (순 걷는 시간. 답사시간, 쉬는 시간 등은 제외)
  2. 거리 : 17.5km / 편도형
  3. 걷기 순서 : 선운산 주차장(선운사 버스정류장) ~ 선운사(1km) ~ 도솔암(3.7km) ~ 낙조대(4.3km) ~ 소리재(5.2km) ~ 심원면 연화리 연천마을(7.4km) ~ 신기 버스정류장(10.7km) ~ 명창 진채선 생가터(11.8km) ~ 고창군수협바지락가공처리장(13.3km) ~ 용기 버스정류장 (16.3km) ~ 좌치나루터(17.5km)
    1. 여름에 전 구간을 모두 걷는 것은 고행이다. 선운산 숲길을 벗어나면 심원면 연화리 연천마을이다. 이곳부터 마치는 곳인 좌치나루터까지 10km 정도는 제대로 된 그늘이 없다. 포장도로라서 지열 영향을 받는다.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전 구간을 이어걷기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선운산 숲길 구간만 걷는 것을 권한다.
    2. 부담 없는 걷기에는 도솔암 왕복코스가 좋다. 등산을 포함한 걷기라면 도솔암~참당암 코스를 추천한다.
    3. 도솔암 왕복 코스(9km) : 선운산 주차장(선운사 버스정류장) ~ 선운사 ~ 도솔암 ~ 도솔천 내원궁 ~ 도솔암 마애여래좌상 ~ 선운사 ~ 선운산 주차장(선운사 버스정류장)
    4. 도솔암~참당암 코스(11.2km) : 선운산 주차장(선운사 버스정류장) ~ 선운사 ~ 도솔암 ~ 도솔천 내원궁 ~ 도솔암 마애여래좌상 ~ 낙조대 ~ 소리재 ~ 참당암 ~ 선운사 ~ 선운산 주차장(선운사 버스정류장)
  4. 코스 난이도 : 보통

걷기 여행 TIP

  1. 화장실 : 선운산 주차장, 선운산생태숲, 선운사, 도솔암.
  2. 음식점 및 매점 : 선운사 주차장 부근, 신기버스정류장 부근, 진채선생가터 부근, 고창군수협바지락가공처리장 부근.
  3. 숙박 업소 : 선운산 입구 주차장 부근, 진채선생가터 부근.
  4. 선운산 입장료 : 어른 3,000원(단체 2,500원) / 청소년 2,000원(1,500원) / 어린이 1,000원(800원)
  5. 코스 문의 : 고창군청 관광개발팀 063-560-2954
  6. 교통편
    1. 찾아가기 : 1)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 흥덕터미널에서 선운사 가는 버스를 탄다. 군내버스 10회/일. 약 1시간 간격. 2)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고창공용버스터미널에서 선운사 가는 버스를 탄다. 군내버스 15회/일, 07시 ~ 19시 50분, 약 1시간 간격, 직행버스 4회/일, 08시 55분/09시 55분/14시 55분/16시 50분 (2019년 6월 현재 기준)
    2. 돌아오기 : 찾아가기의 역순이다.
    3. 주차장 : 선운산 입구에 주차장이 있다.
  7. 길 상세 보기 : 걷기여행 | 두루누비 전국 걷기여행과 자전거여행 길라잡이 www.durunubi.kr

글, 사진 : 김영록 여행작가

"해당 길은 2019년 7월 이달의 추천 걷기 여행길로 선정되었습니다"

2020.04.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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