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절벽 따라 다채로운 울릉도의 비경을 걷는 길

[여행]by 걷기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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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신지?" 잔잔한 물결 위로 두둥실 떠다니는 한강의 유람선이 아닌, 중장비와 철골 자재들이 가득한 부두에서 올라타는 진짜 배 말이다. 나는 종종 세상에 오직 수평선만이 가득한 풍경이 그리울 때가 있다. 육지에서 망망대해로 넘어가는 두려움에 조금은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설렘이 있다. 나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울릉도로 향했다.

육지에서 울릉도로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2025년이면 울릉도에도 공항이 생길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동해안의 항구에서 배를 타는 방법밖에 없다. 강릉, 묵호, 후포(울진), 포항에 위치한 4개의 여객터미널에서 울릉도 배편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묵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전날 강릉에서 하루를 묵었다.

저 멀리 동해에 외로이 떠 있는 것은 비단 독도만이 아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를 더 가면 새들의 고향 독도가 있지만, 울릉도 역시 육지에 사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세 시간 가까이 동해의 호쾌한 파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바닥에 납작 눌어붙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때로는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미리부터 마셔 둔 멀미약이 아니었으면 상당히 괴로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 멀리 울릉도의 흐릿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도동항은 묵호, 포항에서 오는 여객선이 취항하는 항구이다. 현재는 섬 남서쪽에 사동항이 신설되어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도동항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항구 주변은 울릉도 주민들의 삶이 엿보이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갓 잡아 온 오징어를 손질해 빨래처럼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쿠리 가득 담겨있는 돌미역을 벅벅 씻어내고 있는 장면이 보이기도 한다. 도동항이 있는 도동마을은 울릉도 군청이 위치한 울릉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오늘 걸어 볼 행남해안산책로는 도동항에서 시작한다. 항구 바로 앞에 위치한 눈에 띄는 다리를 따라 올라가면 자연스레 산책로로 이어지기 때문에, 행남해안산책로는 울릉도를 찾는 대부분 여행객이 찾는 첫 번째 코스이다.

행남해안산책로 시작 지점에서 바라본 도동항 풍경

본격적으로 산책로를 걷기 전에 이 길에 대해 자랑하자면, 행남해안산책로는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이 선정한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중 하나이다. 해안누리길은 인위적인 보행길 조성이 아닌 자연 그대로이거나 이미 개발된 바닷길 중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우리의 해양 문화와 역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엄선해서 선정한다. 그중에서도 행남해안산책로는 화산작용으로 생겨난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행남해안산책로는 행남마을과 이어지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붙었는데, 행남은 살구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던 탓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2016년 12월 31일, 행남해안산책로의 일부분이 낙석으로 전체 유실됨에 따라 일부 구간이 폐쇄되어 있다는 점이다. 원래 산책로는 도동항에서 시작해 북쪽의 저동항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행남등대를 반환점으로 삼아 다시 도동항으로 돌아와야한다. 또한, 기상이 좋지 않아 낙석의 위험이 있을 경우 이마저 통제 될 수 있으니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울릉군청 홈페이지에서 미리 통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왕복 총 2.6km의 거리로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행남해안산책로의 시작

방파제 옆에 지어진 나무 데크를 걸어 내려가는 것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문득 세찬 바람이 불어와 하마터면 시작부터 모자가 날아갈 뻔했다. 평균 풍속 4.5m에 달하는 울릉도 바람의 거친 힘이 거짓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울릉도는 도둑, 거지, 뱀이 없고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다 하여 삼무(三無) 오다(五多)의 섬으로 부른다. 나는 모자 끈을 다시 조여 매고 계단을 내려갔다. 수많은 갈매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녔고, 갯바위엔 낚시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시작부터 파도와 바람이 깎은 동굴의 모습이 눈에 띈다.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이지만, 자연동굴의 내부가 어떻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울리는 파도 소리가 한층 깊게 느껴지고, 동굴이 만든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의 쪽빛 또한 실눈을 뜨고 바라보듯 선명하게 보였다.

계속해서 길을 걸어가 본다. 해안선을 따라 일정 높이로 암석을 깎아 만들어 놓은 산책로는 전 구간 안전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걷기에 안심이 된다. 가파르고 비탈진 해안의 화산지형 훼손을 최소화하여 만들어졌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길이 잘 조성돼 있다.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눈부시게 맑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때때로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다리 위를 걸을 때면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 낸 해식동굴 내부

거대한 절벽에 움푹 파인 해식동굴도 매력적인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해식동굴 안으로 바닷물이 철썩거리면서, 퍼렇게 빛나던 바다가 하얀색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며 부서진다. 그중에는 산책로가 관통하는 거대한 동굴도 있는데, 시커먼 암반이 높게 솟아 있는 풍경이 무척이나 위압적이다. 대부분의 해식동굴은 암석의 약한 부분이 파도에 의하여 깎여나가서 형성된다. 이곳에서는 뜨거운 마그마가 집괴암을 뚫고 올라와 식으면서 주변에 많은 틈을 만들었고, 암석에 생긴 틈이 파도에 의해 계속 깎여 나가서 동굴이 되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도 놀랍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길을 낸 인간 또한 놀랍게 느껴지는 길이다.

행남해안산책로 초입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간이 횟집도 있다. 산책로가 조성되기 전에는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와야 하는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화장터로 쓰이던 곳이다.

울릉도는 지질적으로 동해의 해중에서 솟아난 거대한 화산의 정상부에 해당한다. 그래서 섬 전체가 현무암, 조산암 들의 화산암으로 되어있다. 평지가 거의 없으며 해안선이 단조롭고 섬의 중앙부에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이 솟아있다. 행남해안산책로에는 화산섬인 울릉도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양한 암석과 지형을 볼 수 있다. 암석 표면이 풍화되어 벌집처럼 구멍이 생긴 타포니, 납작한 암석 조각들이 운반되어 퇴적될 때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물고기 비늘과 같이 일정하게 배열된 비늘 구조의 암석들, 용암이 빠르게 식어서 마치 검은 유리처럼 보이는 냉각대 등등.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판에는 자세한 형성과정을 포함한 해설이 붙어있어 이들을 찾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가 된다. 길에서 볼 수 있는 해안절벽은 화산활동을 관철할 수 있는 천연 지질박물관이다.

절벽의 굴곡을 그대로 닮은 길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지질학적 이야기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행남해안산책로는 기암절벽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맑은 동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걸을 가치가 있다. 보이는 곳마다 펼쳐지는 길들이 절경이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더욱이 평평한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계단을 올라가고, 다리를 건너거나 내리막을 내려가는 길이 나타나서 걷는 맛이 난다. 이 길이 나기 전에는 유람선을 타야만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었을 텐데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을 것이다.

너울성 파도가 일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걷고 있으니 나 또한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때때로 산책로 근처까지 높은 파도가 기어오르며 철썩였는데, 그 소리가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것들을 쥐죽은 듯 덮어버렸다. 부서지는 파도에 몽글몽글한 조약돌이 반짝였고, 파도에 씻긴 바위는 멀쑥한 얼굴로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로한 바위틈에도 새로 자라나는 생명이 가득했다.

바다 높이 지어진 구름다리는 출렁이는 바다를 한껏 느끼게 한다

절벽 길 해안산책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바다 높이 지어진 출렁이는 구름다리이다. 단단히 지어진 돌다리도 좋지만, 바다에는 역시 출렁다리가 어울린다. 다리에서 보는 바다 색깔은 시시각각 초록빛, 카키, 옥색, 비취색 등으로 반짝였다.

산길의 시작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며 절벽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행남마을에 도착한다. 몽돌 자갈이 깔린 해안에는 돌탑만 가득 쌓여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부터 등대까지는 바닷길이 아닌 산길을 걷게 된다.

행남등대로 걸어 올라가는 숲길

곳곳에 표지판이 있어 행남등대까지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다. 털머위 군락, 소나무 숲이 무성한 오솔길은 절벽에 지어진 바닷길과는 또 다른 위안을 준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울릉도 죽도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길이 다소 경사져 있어서 조금은 헐떡이게 된다.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간만에 바다의 풍경이 나타났다. 바다에는 북저바위가 외로이 떠 있고 그 뒤로 관음도와 죽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산길따라 30분, 정상에 도착하다

코로나-19로 입장이 불가한 행남등대

해변에서부터 산길 걷기 시작한 지 약 30분,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행남등대는 행남해안길의 가운데 위치한 무인 등대로 1954년에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004년에는 홍보관, 야외전망대 등을 신축하여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 다만 내가 방문한 시기에는 코로나-19로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행남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저동항과 촛대바위

다만 등대 뒤편으로 돌아가니 저동항의 아름다운 모습과 촛대바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근사한 전망대가 있어 다행이었다.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독도까지 보이는 때도 있다고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다.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 대부분이 취급되는 곳이며, 촛대바위는 저동항 방파제와 맞붙어 있는 바위로 울릉읍 저동리의 상징이다. 마치 촛대를 세워놓은 듯한 형상이라 하여 촛대바위로 불리는데, 조업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바다로 들어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효녀바위라고도 불린다. 야간에는 촛대바위 앞의 조명시설과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한데 어우러져 경관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 풍경이 울릉8경 가운데 하나인 저동어화(저동 야간 오징어잡이 배 불빛) 이다.

전망대에서 한동안 숨을 고른 뒤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도동항으로 돌아왔다. 낙석으로 유실된 구간의 재공사가 완료되어 저동항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나온 길을 다시 찬찬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 보는 풍경이 새롭고 놀라운 것이라면, 다시 보는 풍경은 그보다 익숙한 까닭에 마음이 편하고 위로가 된다.

울릉도 도동항에서의 일몰

행남해안산책로는 동해바다의 웅장한 힘을 몸으로 느껴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한 번 자연의 매혹에 깊이 빠져 본 사람이라면 그 힘이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잊지 못한다. 삶이 힘겨울 때마다, 거대한 자연에 혈혈단신으로 맞섰던 순간을 영원히 그리워하게 된다. 마치 그곳이 내 고향이라도 되는 것처럼.

걷기 여행 TIP

  1. 코스 경로: 도동항 - 행남쉼터 - 행남등대
  2. 거리 : 약 2.6km
  3. 소요 시간: 1시간 40분
  4. 코스 타입: 비순환형
  5. 난이도: 중
  6. 편의시설
    1. 화장실 : 도동항, 행남쉼터, 행남등대
    2. 식수 : 도동항 주변 편의점 등에서 미리 준비
  7. TIP:
    1. 출발지점에 따라 포항, 호포, 묵호, 강릉에서 울릉도행 배를 탈 수 있음 (공항은 2025년 완공 예정)
    2. 육지에서 출발하는 배 종류에 따라 도착하는 항구가 다르니 유의
    3. 해안누리길 행남해안산책로는 도동항 바로 옆에 위치
    4. 울릉도 내에는 7개 노선의 버스가 운행중이나 배차 간격이 긴 편이므로 울릉도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

글,사진: 박성호 여행작가


"해당 길은 2020년 7월 이달의 추천길로 선정되었습니다."

2020.07.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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