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바람이고 싶어라

[여행]by 걷기여행길

지난 2월 28일 오전 11시 10분, 여수 비렁길 3코스 끝이자 4코스 시작인 학동마을 포구에서 나는 보았다, 샤넬백을 메고 트레킹에 나서는 한 중년 여성을. 샤넬백을 멘 여성이 트레킹을 오는 곳. 이곳이 현재 대한민국 트레일의 '끝판왕'이 아니고 무엇이랴. 백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요즘 가장 핫한 여수 금오도 비렁길 3코스 속으로 들어가 봤다.

그대의 늘 푸른 바람이고 싶어라 / 세상사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은

잠시잠깐 저 바다 파도 속에 묻어두고 / 한 점 무게도 실리 않는 마음

한없이 보드랍고 가녀린 몸짓으로 / 금세 알아듣고 금세 깔깔댈 수 있는

나이어린 풀잎 같은 즐거운 말투로 / 그대 살랑살랑 흔들어보고 싶어라

아니, 내가 먼저 흔들리고 싶다(김진수 '바람이고 싶어라')

금오도 비렁길 3코스 시작점, 직포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약 700m 정도 숨차게 걸어와 처음 만나는 칼바람통전망대. 봄을 담은 바닷바람이 볼을 스치는 가운데 시 한편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고 싶어라' 옥빛 바다와 은빛 너울, 살지게 부풀어 빛나는 동백나무 잎…육지에서 불과 1시간 떠나온 것뿐인데 꿈같은 풍경을 만났다. 그리고 '바람이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속삭임. 기막힌 조화다. 한편, 숨을 돌리고 삐딱한 시선으로 한 번 더 읽어보니 '내가 먼저 흔들리고 싶다'는 봄날의 춘정(春情)을 노래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만도 하다, 금오도 비렁길 칼바람통전망대에 서면 한번쯤 그런 마음이 선다.

 

3코스는 직포에서 시작한다. 직포로 바로 들어오려면 여수 화양면 백야도에서 배를 타야 한다.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한 배는 북서단 함구미에 8시에 닿고, 이후 8시 40분에 직포에 도착한다. 당일 여행이라면 이후 돌아가는 배편은 두 번 있다. 오후 12시 40분과 오후 4시. 서울에서 온 여행객이라면 후자는 너무 늦다. 여수 시내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출발하면 한밤중에 서울에 닿는다. 정리하자면 비렁길 3코스를 걷기 하기 위해 첫배를 타고 온 트레커라면 오후 12시 40분 배로 다시 돌아가는 게 낫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3코스 하나만 달랑 하기는 아쉽다. 그래서 3·4코스를 몰아서 했다. 각각 3.5km, 3.2km. 5.7km를 간 후 배를 타기 위해 다시 되돌아왔으니 4시간 동안 11.4km를 걸은 셈이다. 속옷이 젖어 있었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했다. 무장 산소가 피어나는 상록활엽수림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바람이고 싶어라

비렁길 3코스 시작점인 직포마을은 평화로운 작은 어촌마을이다.

햇빛 가리는 동백나무 숲 터널

직포에서 칼바람통까지는 온통 동백나무 숲이다. 가끔씩 보이는 소나무 숲이 생경할 정도다. 트레일 바닥엔 싱싱한 털머위가 푸른 숲을 덧칠하고 있다. 겨우내 푸른 털머위는 가을에 노란 꽃을 피운다.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은 또 어떠리.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을 붉은 꽃을 보니 두 손 움큼 모아 어루만져주고 싶지만, 감히 손대기 아까울 정도로 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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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들자마자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동백숲 터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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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떨기 붉은 동백.

나도 바람이고 싶어라

털머위 곁에 붉은 꽃잎을 떨군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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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 터널을 지나면 확 트인 칼바람통전망대가 나온다.

칼바람통전망대에서 매봉전망대까지는 업힐(Up-Hill)구간이다. 표고차는 약 200m 남짓, 30분 정도 서서히 오르면 벼랑 아래로 푸른 바다가 일망무제 펼쳐진다. 비렁길은 '벼랑'의 방언이다. 강원도는 '뼝대', 경상도는 '삐랑' 등으로 부르는 그 벼랑이다. 매봉 전망대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3코스 끝 지점 학동 포구가 모인다. 거북손처럼 갈기갈기 찢어 펼친 리아스식 해안도 한눈에 들어온다. 숨차게 오르막을 올랐으니, 잠시 쉬어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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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이정표. 간단하고 명료하다

수십미터 벼랑 보이는 출렁다리 아찔

매봉전망대에서 학동포구까지는 쉬운 길이다. 300m만 가면 비렁다리가 나온다. 절벽과 절벽을 이은 42.6m의 현수교. 사람이 통행하게 되면 출렁출렁 대 출렁다리로도 불린다. 특히 중간 지점 2개의 발판은 투명 플라스틱을 설치했는데, 발 아래로 수십m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찔하면서도 스릴 있다. 그러나 아이를 동반한다면 조심해서 걸을 필요가 있다. 좌우 난간으로 설치한 와이어 폭이 넓어 어린아이는 자칫 안전사고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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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빛 남쪽 바다가 펼쳐지는 매봉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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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앞으로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트레일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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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3코스의 하이라이트 비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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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손처럼 찢어진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진다. 그래서 비렁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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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비렁다리 스카이워크. 발아래 수십 미터 절벽이다.

금오도(金鼇島)는 '황금 거북(자라)의 섬'이라는 뜻이다. 숲이 우거져 섬이 검게 보인다고 하여 '거무섬'이라는 유래도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거마도(巨磨島)로 표기돼 있는데 이 또한 '거무섬'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출렁다리를 넘어오니 마침 금오도 거북을 노래한 시가 보인다.

 

거북등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뭍에 살던 큰 거북 한 마리 처음 바다로 나가던 그 날, 처음 붉은 해를 만나던 그 날, 그대로 섬이 되어버린 곳 해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모르지만 거북등을 타고 사는 사람들은 거북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 해가 뜰 때 마다 떠오르고 달이 질 때마다 가라앉는 따뜻한 거북등을 타고,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 별이 되고 섬으로 돌아와서 꽃이 된다(박혜연 '금오도 사람들')

 

소리 내어 수차례 읽어 보니 '거북 섬' 금오도의 전설이 솔솔 피어오른다. 아찔한 출렁다리 옆에서 '거북의 전설'을 놓고 상상력을 키워보면 좋을 성싶다. 비렁다리에서 학동까지는 한낮인데도 고글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울창한 동백나무 숲 터널을 이룬 내리막이 이어진다. 쉬엄쉬엄 가도 15분이면 학동에 닿는다. 3.5km 1코스는 빠른 걸음이면 1시간 이내로 마칠 수 있다. 빠른 걸음이라면 한 코스 더 욕심 내 곧장 4코스로 진입해야 문제없을 듯하다.

나도 바람이고 싶어라

학동포구 이정표

학동포구에서 쉬었다 다시 직포로 되돌아간다면 아주 느긋하다. 마침 매점도 하나 있다. 인기 있는 메뉴는 해물라면. 전복을 넣어 끊인 라면이 5000원이다. 구미가 당겼지만, 맛보다는 길이 더 당겨 4코스에 나는 듯 다녀왔다. 4코스도 길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남쪽이다 보니 동백꽃이 더 많이 핀 정도다. 3코스를 마치고 굳이 같은 길로 되돌아갈 필요는 없다. 섬 버스를 타고 직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동쪽 해안으로 건너가 해안가를 거닐다 섬 내 콜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일찍 직포로 되돌아 왔다면 마을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직포는 자그마한 고깃배 대여섯 척이 한가로이 떠 있는 조용한 포구 마을이다. 남해안의 포구마을이 그렇듯 방파제 너머로는 소나무 방풍림이 있으며, 그 안으로 민가가 10여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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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스 시작점인 직포로 바로 가는 배가 있는 백야선착장.

나도 바람이고 싶어라

백야도는 여수 서쪽 끝 육지에 붙어있는 섬이다.

코스요약

  1. 걷는 거리 : 3.5km
  2. 걷는 시간 : 쉬엄쉬엄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빠른 걸음이면 왕복 2시간 가능.
  3. 걷는 순서
    1. 일반 순서
      직포-갈바람통전망대(0.7km)~매봉전망대(1.1km)~비렁다리(0.3km)~학동(1.3km)
      * 역순으로 걸어도 무관.
    2. 추천 순서
      1. 직포↔학동 왕복 5.7km 왕복=쉬엄쉬엄 왕복 4시간 걷기에 딱 좋다. 같은 길을 돌아오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먼 길 달려왔으니 맘껏 비렁길을 걷겠다는 사람에게 추천.
      2. 직포→학동 걷기 후 버스로 직포 복귀=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버스 시간을 잘 체크하자.
      3. 학동→직포=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기에 좋다. 그러나 학동까지 가려면 역시다 버스나 섬 버스를 타야 해서 번잡하다. 길은 매 한가지다.
  4. 난이도 : 쉬움. 3.5km 구간 내에 업힐 구간이 두 군데 있다. 오르막 구간 호흡을 잘 조절하면 땀나지 않고 쉬엄쉬엄 갈 수 있다.

교통편

  1. 찾아가기
    금오도 가는 배는 3개의 노선이 있다. 2개는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며, 1개 노선은 화양면 백야선착장에서 승선한다. 여수시내에서 가까운 여객터미널에서는 금오도 북동쪽 여천항․함구미에 닿는다. 여수 서쪽에 있는 백야도에서 출발한 배는 북서단 함구미와 직포를 기항한다. 비렁길 3코스만을 목표로 한다면 백야선착장에서 직포행 배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섬 내 이동은 버스나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1.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여천항 6:20, 14:00
    여천항→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8:50, 16:50
    * 동계 4월 14일까지 적용. 한림해운 061-666-8092
  2.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함구미(1코스 시작점) 7:45, 9:10, 10:30, 12:00, 14:00, 15:50, 17:00
    함구미→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8:20, 9:40, 11:00, 13:00, 16:20, 17:30
    * 동계 4월 14일까지 적용. 한림해운 061-666-8092
  3. 백야선착장→직포(3코스 시작점) 7:30, 10:50, 14:20
    직포→백야선착장 08:50 12:40, 16:00
    * 동계․하계 무관 좌수영해운 061-665-6565
  4. 금오도 군내버스(동계 4월 14일까지)
    평일 / 여천항→함구미(1코스 시작점) 9:40,
    휴일 / 여천항→함구미(1코스 시작점) 9:20, 11:10
    여천항→직포(3코스 시작점) 10:00
    버스 문의=청지운수 061-665-9544, 남면 면사무소 061-659-1200, 여수시 교통과 061-659-4125
  5. 개인택시
    남면택시 061-666-2651, 010-8614-2651, 010-3608-2651

걷기여행 TIP

나도 바람이고 싶어라
  1. 자세한 코스정보는 이곳을 참조해주세요. http://www.koreatrails.or.kr/course_view/?course=208
  2. 화장실 : 3코스 시작점 직포와 끝인 학동에 화장실이 있다.
  3. 음식 및 매점 : 3코스 시작점 직포와 끝인 학동에 매점과 간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전복라면 5000원
  4. 숙박업소 : 3코스에 민박집이 많다.
    1. 비렁길옛구들장민박집(학동) 010-3643-0671
    2. 다도해민박(직포) 061-665-9677
    3. 보대민박(직포) 061-665-9857
    4. 소나무민박(직포) 010-3201-9811
    5. 직포식당(직포) 061-665-3134
    6. 친절민박(직포) 061-665-0464
    7. 금오도노을펜션(직포) 010-3546-4805
  5. 코스문의
    1. 여수시청 관광시설팀 061-659-3892
    2. 여수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ystour.kr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

2017.03.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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