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여행]by 걷기여행길

봄이 깊어진다. 이제 5월,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가장 빛나는 달이다. 이해인 시인은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이라고 했다.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월은 푸른빛으로 온 세상이 환해지는 달이다. 이른 봄 화려한 꽃잎을 자랑하던 친구들은 하늘하늘한 꽃이파리를 바람에 실어 모두 떠나보내고 연둣빛 새순을 내놓고 있다. 느긋한 친구들은 이제야 꽃봉오리를 활짝 열었다.

 

오래 전 김영랑 시인도 5월의 푸른 산에 푹 빠졌다.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어느 누가 곱게 단장한 푸르고 빛나는 5월 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으랴. 유혹에 빠지러 길을 나선다. 우리를 유혹하는 고운 길은 속리산 기슭의 기분 좋은 숲길, 오리숲길과 세조길이다.

속리산 기슭

속리산(俗離山). 최고봉은 해발 1,057m의 천왕봉이다.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산이고 우리나라 명산을 꼽으면 언제나 윗자리에 오르는 산이다. 나라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이 지나고 우리 땅 열세 개의 큰 산줄기 중 하나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벋어 내리는 산이다. 천년 고찰 법주사를 품고 있으며 한강, 금강, 낙동강의 물길이 나뉘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속리산 기슭에 걷기 좋은 숲길이 있다. 오리숲길과 세조길. 길 이름은 둘로 나누어서 소개하지만 하나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오리숲길이 끝나면 세조길인데 세조길을 걸으려면 어차피 오리숲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오리숲길은 속리산 버스터미널부터 법주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속리산과 법주사를 찾는 사람들이 걸었을 이 길은 거리가 약 2km 라서 십리 절반 오리숲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세조길은 오리숲길이 끝나는 법주사 앞부터 속리산 등산로를 따라 세심정 갈림길까지다. 등산로지만 오르막이 거의 없이 평탄하게 이어지는데 기분 좋은 숲길로 약 2.5km 정도다. 오리숲길과 세조길을 모두 걸으려면 편도 4.5km, 왕복 9km 다.

오리숲길

오리숲길은 속리산 버스터미널부터 시작한다. 잠깐 동안 상가 앞을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는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여행객을 맞는다. 둥치 굵은 소나무 사이로 전나무들이 비집고 들어섰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다. 그래서 몇 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발표했는데 나무로는 나라꽃인 무궁화와 소나무가 선정되었다. 소나무는 지구상에 대략 110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소나무, 곰솔이라고도 부르는 해송,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 이렇게 다섯 가지다. 우리의 산이 헐벗었을 때 많이 심었던 리기다소나무는 외래종이다.

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오리숲길은 둥치 굵은 소나무들이 길 안내를 한다.

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돌배나무에 꽃이 환하게 피었다-낮달은 어느 꽃잎에 싸여 잠이 들었을까?

소나무 숲길 저쪽에 하얀 꽃이 환하게 피었다. 무슨 나무일까 궁금해서 다가갔더니 돌배나무다. 귀티 나는 하이얀 꽃잎 다섯 장을 활짝 펼쳐 피었다. 저기 어느 꽃잎 사이에 낮달이 잠들었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으니 꿀벌만 찾아오지 않는다면 선잠 깰 걱정도 없을 터이다. 발소리 낼까 조심스럽게 물러나 소나무숲길로 돌아온다. 저 앞으로 매표소가 보이면 소나무 숲길도 끝이다. 조금 더 계속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매표소를 지난다.

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연둣빛 이파리 아래 재잘거리는 새싹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봄 풍경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식생이 달라진다. 소나무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 한 그루씩 보일 뿐이고 나머지는 잎이 넓은 활엽수들이 메웠다. 나무 아래는 산죽이라고도 부르는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걸음은 속리산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볼 수 있도록 꾸며진 속리산국립공원 자연관찰로를 따라가는데 걷는 길 왼쪽으로는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이 흐른다. 이곳의 나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둣빛 이파리들을 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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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숲길의 후반부는 잎이 넓은 활엽수들이 길을 안내한다.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난다. 호서제일가람. 충청도에서 제일가는 절집이라는 이야기겠다. 일주문은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여러 문들 중에서 제일 앞에 세우는 문이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한 줄로 되어있다고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한다. 일주문은 부처님의 나라와 속세를 나누는 경계이고 이곳부터 불국토가 시작되니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뜻으로 세우는 문이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법주사 경내다. 이곳에서 오리숲길은 끝나고 세조길이 시작된다. 법주사 답사는 세조길까지 모두 걸은 뒤에 한갓지게 하기로 하고 세조길로 입구로 들어선다.

세조길

세조길이라는 이름표가 달려있는 아치형 입구를 지나 본격적으로 속리산 품안으로 든다. 이 길은 속리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초입이기도 하다. 세조길이 만들어진 구간에는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널찍한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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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길 초입에서 여행객을 맞이하는 나무는 소나무와 형제인 잣나무다.

그러나 이 길은 주말이면 등산객, 휴게소를 찾는 행락객, 법주사 부속 암자를 찾는 차량들이 뒤엉켜서 혼잡함이 심했다. 이런 이유로 국립공원에서는 새로운 탐방로 세조길을 뚫었고 덕분에 차량과는 상관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세조길은 속리산 등산로이기는 하지만 오르막이 거의 없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더구나 찻길을 피해서 기분 좋은 숲으로만 걷게 되는데 울창한 숲이 그만이다.

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속리산은 남한강 지류중 하나인 달천이 발원하는 곳이다. 달천을 막아 생긴 저수지-물가의 벚꽃은 아직도 한창. 

‘세조길’ 이라는 이름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요양차 자신의 스승인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으로 순행 온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세조길 입구는 잣나무 사이로 길을 냈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어 올라간 나무가 싱그럽고도 건강해 보인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형제간이라서 비슷하기는 한데 그래도 쌍둥이는 아니라서 쉽게 구분이 된다. 우선 나무의 껍질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나무는 껍질이 얇게 일어나는 반면 소나무는 두꺼운 껍질을 가지고 있다. 이파리의 개수를 세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소나무는 바늘잎이 두 개이고 잣나무는 바늘잎이 다섯 개다. 외래종인 리기다소나무의 바늘잎은 세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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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 계곡을 따라가는 길에는 나무 데크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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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소-세조 임금이 이곳에서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길은 속리산 계곡을 막아서 생긴 저수지 옆으로 이어진다. 속리산 문장대나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지만 고도차를 거의 못 느낄 만큼 평탄한 길이다. 속리산 달천 골짜기를 넘나들면서 이어지던 길은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는데 난간에 ‘목욕소’ 라는 안내판이 있다. 내용은 피부병을 얻은 세조 임금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가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이야기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 관대걸이에 얽힌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인데 상원사 관대걸이에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는 문수동자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면 다시 세조길 아치가 있고 거기서 얼마간 더 오르면 세조길 종점인 세심정 갈림길이다. 이곳부터는 본격적인 산행길이 된다. 계곡에 놓인 너른 바위에서 한동안 쉬다가 다시 되짚어 올라온 길을 내려간다.

법주사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지만 세조길은 그런 기분이 들게 하지 않을 만큼 숲과 계곡이 잘 어울린 길이다. 세조길 입구에서 법주사 경내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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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앞의 건물이 천왕문이고 뒤의 건물이 우리나라 유일의 목탑인 팔상전이다.

법주사(法住寺)는 신라 진흥왕 시절인 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주사라는 이름은 의신조사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이곳에 절을 짓고 불경 즉 부처님의 말씀인 법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법주사는 호서제일가람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품에 안고 있는 문화재도 많다. 법주사 경내와 산내암자에는 국보 3점,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재 22점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또 법주사 자체도 사적 제 503호이고 법주사 일원이 명승 제 6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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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하게 핀 겹벚꽃 아래의 단란한 가족-아이야! 튼튼하고 총명하게 자라렴.

법주사 경내에만 하더라도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서 계획 없이 그냥 들어가면 두서없는 답사가 되기 십상이다. 금강문 바깥에 있는 안내판에서 법주사 배치도를 보면서 미리 동선을 그려보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현재 법주사는 금강문, 천왕문, 팔상전, 대웅보전 같은 건물이 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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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대웅보전- 겉모습은 2층집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위아래가 뚫려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은 금강문이다. 금강역사와 석가모니 부처님을 좌우에서 협시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안치되어 있다. 전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고 있는 천왕문에는 수미산 기슭에서 동서남북 네 곳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이 잡되고 삿된 것들을 걸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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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의 소원이 담겼을 오색등-부처님 바쁘시겠다.

천왕문을 지나서 바로 만나는 건물이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이다. 팔상전은 오층 목탑 건물인데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탑이다. 팔상전이라는 이름은 팔상도를 모신 건물이라는 뜻이고 팔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모습,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 궁궐의 네 문 바깥으로 나가서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설산에서 고행하는 모습,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는 모습, 성불한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모습,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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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금동미륵대불-용화정토에서 깨달음의 법을 설하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팔상전 북쪽에는 신라 석조예술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이 있고 그 뒤쪽에는 화창 사이 네 곳에 사천왕을 조각해 놓은 사천왕석등이 있다. 사천왕 뒤로 보이는 건물이 현재 법주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인데 특이하게 2층 건물이다. 경내에는 이 외에도 원통보전, 희견보살상, 석연지, 철당간, 무쇠솥, 마애여래의상 등 많은 유물들이 있어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코스요약

  1. 걷는 거리 : 편도 4.6km (왕복 9.2km). 오리숲길·세조길은 왕복 코스다.
  2. 걷는 시간 : 편도 1시간40분 (왕복 3시간 20분) (순 걷는 시간이며 답사시간, 간식시간, 쉬는 시간 등은 포함하지 않음)
  3. 걷는 순서 : 속리산 버스터미널 ~ (0.4km)오리숲길 입구 ~ (0.9km)법주사 매표소 ~ (0.8km)법주사, 오리숲길 끝, 세조길 입구 ~ (1.6km)탈골암 입구 ~ (0.9km)세심정 갈림길, 세조길 끝

* 법주사 매표소가 오리숲길 노선 상에 있고 속리산 등산이나 세조길 걷기를 하려면 매표소를 지나야 한다. 법주사 입장료는 일반 기준으로 4,000원이다.

교통편

  1. 찾아가기
    1. 서울(동서울터미널, 강남터미널, 남서울터미널), 수원, 대전, 청주 등에서 속리산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노선이 있다. 노선버스가 없는 곳이라면 대전이나 청주까지 먼저 가고 그곳에서 속리산행으로 환승하면 된다. 보은읍내에서 속리산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는 자주 있다.
    2. 속리산 관광단지 안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료는 승용차 기준으로 4,000원/일 이다.
    3. 법주사 입장료는 일반 기준으로 4,000원/명 이다.
  2. 돌아오기
    1. 찾아가기의 역순이다.

걷기여행 TIP

속리의 숲에서 찬란한 봄을 만나다
  1. 자세한 코스정보 http://www.koreatrails.or.kr/course_view/?course=1910
  2. 화장실 : 속리산 버스터미널, 오리숲길 입구, 법주사 매표소, 법주사, 세조길 입구, 세조길-찻길 교차로, 탈골암 입구, 세심정 갈림길
  3. 식당/매점 : 시작점은 관광단지라 음식점, 매점, 편의점 등 밀집지역이다. 세조길 중간, 세조길 끝나는 곳에 휴게소가 있다. 법주사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으나 마실 물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4. 숙박 : 걷는 길에는 숙박업소가 없다. 시작 지점인 속리산관광단지에 호텔, 모텔, 펜션, 민박 등 숙박업소가 많다.
  5. 코스문의 : 속리산국립공원 (043-542-5267)

글, 사진: 김영록 (걷기여행가/여행 작가)

2017.05.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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