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보다 미래 더 두려워”…쿠팡 앞, 코로나에 멍든 청년들

[트렌드]by 쿠키뉴스

쿠팡 물류센터 직접 일해보니…2030대 청년들 "돈 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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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7시께 충남 천안시 쿠팡 목천 물류센터 앞. 20명가량의 사람들이 이날 일용직으로 일하기 위해 등록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다수가 20대~3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갓 10대 티를 벗은 듯한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바닥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둔 듯, 줄 간격을 나눈 청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이후에도 몇 분간 근로자를 실은 셔틀버스가 물류센터로 들어섰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 감염 사태로 지원자가 거의 없을 것이란 예상과 반대였다. 5일 오후 7시부터 6일 오전 4시까지 오후조 근무를 신청한 기자도 이들 틈에 섰다. 마스크를 눌러쓰고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날 기자가 만난 대다수의 청년들은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취업 준비 중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쿠팡 목천 물류센터의 시급은 오후조 기준, 1만1450원. 올해 최저시급인 8590원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금액이다. 총 9시간 근무니 일급으로 따지면 10만원을 조금 넘는다. 여기에 연장근무와 주휴수당에 따라 급여는 더 뛸 수 있다.


25살 취업준비생 이모씨도 높은 시급을 보고 이날 근무를 지원했다. 그는 기자와 함께 트럭 트레일러에서 상품들을 내리는 하차 업무를 배정받았다. 처음엔 자신감이 넘쳤던 이씨는 작업 1시간 만에 '못 하겠다'라는 푸념을 터트렸다. 이씨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강좌 수강료와 시험비 등 돈이 부족해 일을 나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생각해 봤냐는 물음에는 '학원이나 식당은 시급이 낮을뿐더러 요즘 자리도 잘 나지 않더라'라며 '지금 만원가량의 시급을 주는 곳은 (물류센터가)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친구와 몇 주 동안 일을 해보려고 왔는데, 막상 해보니 버티지 못할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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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차 라인에서 만난 30대 김모씨는 경력 6개월의 나름 베테랑이었다. 다른 물류센터에서도 근무를 해봤다는 그는 '쿠팡 물류센터는 그나마 일하기 좋은 편에 속한다'라며 '타 물류센터 같은 경우는 분위기도 좋지 않고 악명이 높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몇 해 전 다니던 회사가 도산해 물류센터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중에는 돈을 모아 개인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도 들려줬다.


김씨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걱정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짝 돈을 벌어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감염보다 빈 통장이 더 무섭다'라며 '사실 내 자신이 감염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코로나19로 친형과 운영 중이던 가게가 망해 이날 물류센터를 찾았다는 청년도 있었다. 기자와 2시간가량 하차 작업을 진행한 강모씨는 '잘 될 땐 월매출 800만원을 올리던 호프집인데, 코로나 이후에는 100만원도 벌리지 않았다'면서 '형은 지금 다른 지인의 치킨 가게를 돕고 있고, 나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며칠 전에는 한 피자 프랜차이즈의 배달 기사 면접을 봤다고도 했다. 그는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할 것도 없고, 생각을 비우고 싶었다'라며 '코로나보다 다가올 앞날이 더 걱정이 된다'며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청년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채용을 줄이고 있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여의치 않다. 지난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실직자에게 주는 실업급여 지급액은 지난달 1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작년 동월(7587억원)보다 33.9% 늘었다.


통틀 무렵, 퇴근 시간이 되자 팔다리의 감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퇴근 셔틀버스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고단함이 묻어났다. 누군가는 버스에서 곧장 잠을 청했고, 어떤 이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이날 1시간 연장근무를 포함해 10시간을 일하고 번 금액은 총 11만3590원. 주머니 속 다 헤진 목장갑이 마치 청년들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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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2020.06.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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