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봄 여행] 섬과 섬이 손 꼭 잡고있는…통영의 설레는 봄

[여행]by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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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비진도 전경. 섬과 섬 사이가 백사장으로 연결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통영에서 뱃길로 40분 정도만 가면 비경을 만날 수 있다.

봄만 되면 이상하게 섬이 고프다. 화려한 꽃 잔치를 시작으로 온갖 생명이 소생하는 걸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기운이 뻗친다. 뻗치다 못해 자꾸 멀리 가려 한다. 봄만 되면 꿈틀대는 아이러니한 귀소본능, 아니 귀도본능이다.


섬 태생도 아니고 섬에서 일주일 이상 살아본 적도 없지만 왠지 이맘때만 되면 자꾸 섬이 당긴다. 평소엔 잘하지 않는 '짓'을 해보고 싶어서다. 이를테면 배를 타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섬에 들어가는 것 말이다. 날이 궂어 배가 안 뜨거나 섬 탐험에 흠뻑 취해 배를 놓쳐도 상관없을 것 같다. 뭍을 떠나는 순간 '될대로 되라지'라며 쿨하게 정신무장을 한다. 섬에 온 이유는 일상을 등져버리는 일탈을 위해서니까.


여행의 이유를 따라 봄과 섬 그리고 일탈의 상관관계까지 왔다. 스스로 밥벌이하고 사는 직장인에게 잠시나마 일상을 등지는 일은 이렇게나 심오한 고민을 수반한다. 얼마나 비우고 오려고 이러는지 출발 전부터 생각이 많다. 그래도 시작이 좋다. 날씨 운이 따라준다. 전날 풍랑주의보가 발령됐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날이 화창하다. 섬 여행에서 맑은 하늘은 필수조건. 날이 쨍하게 맑아야 물빛이 살아난다. 배가 뜨는 건 그다음 문제다.


뭍 날씨와는 일절 상관없다는 바다 상황도 완벽하다. 흔히 뱃사람들이 얘기하는 '바다에 장판이 깔린 날'이다. 파도 없이 잔잔하다는 뜻. 통영여객선터미널을 떠난 비진도행 '한솔3호'가 장판에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출항 후 약 40분, 비진도 내항에서 배낭을 진 무리가 내린다. 아마도 근처에 캠핑할 만한 곳이 있나 보다. 2012년 전 비진도에 처음 왔을 때 내항에서 내리는 사람은 주민 몇 명이 고작이었는데…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


더위가 초절정이던 7년 전 8월 땀을 뻘뻘 흘리며 비진도에 왔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처음 비진도의 존재를 알았고, 그 이후 가장 좋아하는 섬 여행지로 항상 비진도를 꼽는다. 2년 전 여름 날씨가 좋지 않아 섬에 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던 일도 생각난다. 세 번 시도해서 두 번 입도 성공. 나쁘지 않다. 비진도는 섬치고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통영항에서 약 14㎞로 멀지 않다. 하지만 섬이 사람을 가리는 걸까. 이번에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은 앞서 두 번을 실패하고, 세 번 만에 섬에 들 수 있었다.


내항에서 5분쯤 더 가서 비진도 외항에 내린다. 비진도는 모래시계처럼 생겼다. 섬 두 개를 모래사장이 잇고 있다. 위쪽을 안 섬, 아래쪽을 바깥 섬이라고 부르는데, 각각 내항과 외항이 위치한다. 내항에서는 캠핑 여행객이, 외항에서는 트레킹 여행객이 내린다. 외항에서 곧장 시작되는 비진도 산호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한 트레일로 총 4.8㎞, 3시간이 걸린다. 7년 전 비진도에 반한 것도 전부 이 길 위에서였다.


안 섬과 바깥 섬을 이어주는 모래사장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다만 경사가 가팔라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 7년 전 점심은 어느 민박집 안방에서 먹었다. 큼직한 전복과 각종 해산물이 들어간 해물뚝배기를 싹 비웠던 기억이다.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해물뚝배기 국물의 양만큼 땀을 흘렸는데, 이제는 그 집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비진도에 식당이 생긴 줄 모르고) 뭍에서 점심을 사들고 들어갔다. 메뉴는 통영 명물 '충무김밥'. 통영여객터미널 길 건너 서호시장에 충무김밥집이 모여 있다. 김밥과 곁들여 먹는 무김치와 오징어무침은 물론 시락국(시래기 된장국)까지 포장해 준다. 짊어진 배낭에서 구수한 시락국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른 완주하고 점심을 먹어야지'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말을 걸어온다.


"이것 좀 사가이소. 저 밭에서 직접 뜯은 기라예." 주름진 손에 두릅과 시금치가 들려 있다. 시금치 한 단을 단돈 1000원에 파는 할머니는 '시원한민박' 주인이다. "펜손(펜션)처럼 잘해놨으예." 난데없는 집 자랑에 다음번 여름에 꼭 다시 오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숲에 들어서고 미인전망대까지 급경사가 계속된다.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모르긴 몰라도 7년 전보다는 낫더라. 그땐 정말 무지막지하게 더웠는데, 이번에는 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어 그나마 견딜 수 있다. 이윽고 하늘이 열리고 별안간 전망대에 도착한다. "와." 살면서 외마디 탄성이 터질 일이 별로 없는데, 이날만 다섯 번을 내리 질렀다. 비진도를 '최애' 섬으로 꼽는 건 순전히 이 풍경 때문이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쨍하게 아름답다.


미인전망대 풍광을 보고 났더니, 선유봉(312m)에서는 감흥이 덜하다. 선유봉 이후는 초록색 잎이 반짝반짝 빛나는 녹음길이다. 자귀나무 자생지와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다가 별안간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쪽빛 바다와 싱그러운 녹음이 교차 편집되는 풍경에 온통 마음을 뺏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지키고 선 비진암을 지나면 바다와 딱 붙은 길 끝에 외항선착장이 보인다. 거리도 시간도 적당했다. 무엇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녹음이 좋았다. 뭍으로 돌아가서는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은 다음 저녁으로 도다리쑥국을 먹을 거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입에서 끝나는 통영에서의 봄맞이 의식이 완벽하게 마무리될 참이다.


통영 여행 제대로 하는 법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평일 하루 세 번, 주말 하루 여섯 번 비진도로 가는 배가 뜬다. 통영에서 비진도로 가는 티켓은 9600원, 비진도에서 통영으로 가는 티켓은 8800원이다. 표를 살 때, 승선할 때 두 번 주민등록증을 검사한다. 식당은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에 몰려 있다. 서호시장에는 봄 제철을 맞은 도다리쑥국과 통영 명물 충무김밥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고 중앙시장에는 횟집이 많다. 조용한 숙소를 찾는다면 미륵도로 이동하자. 통영 신흥 명소로 떠오른 루지체험장 근처에 통영 동원리조트가 있다. 온돌형 패밀리 룸은 물론, 싱글 침대 3개가 마련된 디럭스 객실 등 다양하다. 디럭스 주중 13만원, 주말 17만원부터.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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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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