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고요하게… `슬로시티` 영월을 여행하는 법

[여행]by 매일경제

AGAIN 강원

 

단종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

이젠 고즈넉한 정취로 가득

 

ATV 바이크·동강 래프팅 등

자연 속 액티비티 체험도 풍부

밤에는 별마로 천문대서 별구경

매일경제

정신없이 살다 보니 감정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조급함에 밀려 사치가 되고 있었다. 그런 사치를 위한 여행지로 설렘과 신남,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영월을 택했다.

단종의 흔적이 자아내는 영월의 고요함

이상하게 영월은 고요했다. 영월 특유의 고요함은 평화로움과는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한데 고요한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대학교 2학년 때의 우리라면 이곳에서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존재였을 텐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월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단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 것이다.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두 살에 왕위에 올라 그 왕위 때문에 작은아버지에게 쫓겨나 죽음을 맞은 이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먹먹하다.


그가 17세 어린 나이로 스러진 삶을 마감했던 곳이 바로 영월이다. 단종이 생을 마감한 시기는 1457년이지만 1516년이 다 돼서야 왕릉 모습을 갖췄다. 다시 100여 년이 흘러 1698년이 돼서야 장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자그마한 동산 정도 되는 곳을 오르면 아담한 규모의 무덤이 있다.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 왕릉 구조와는 다르다. 조선 왕릉에서 발견되는 참도라는 구조에서 왼쪽은 신의 길인 신도를 의미하고 오른쪽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를 의미한다. 참도가 일반적으로 일자형으로 조성돼 있는 것에 반해 장릉은 'ㄱ'자형으로 꺾여 있다. 자그마한 규모의 무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까닭은 단종역사관에서 찾을 수 있다. 단종의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단종 관련 자료를 담아 놓은 공간이다. 에디터는 단종의 유배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던 전시가 가장 좋았다.


1456년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다. 박팽년, 성삼문 등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이들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돼 모두 죽음을 당한 사건이다.


이듬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다.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섬과 같은 곳이다. 이 적막한 곳에서 단종은 외부와 두절된 유배 생활을 했다.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청령포가 물에 잠겨 단종은 영월 동헌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청령포의 한 맺힌 세월은 소나무가 안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소나무 숲 사이로 담장에 둘러싸인 단종어소를 볼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는 관음송이라는 나무가 있다.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에 걸터앉었다는 전설이 있다. 단종의 유배 당시를 봤다는 의미에서 관(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음(音), 관음송이라 불린다. 단종의 쓸쓸함이 자아내는 정취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끊임없는 감정의 기복 속에서 일을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고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까마득할 때, 청령포는 차분히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같았다.

자연과 함께 즐기는 액티비티

영월에는 비글인 우리가 에너지를 쏟아낼 만한 액티비티도 많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푸른 산과 강을 끼고 신나게 ATV 바이크로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갈길이라기보다는 돌길에 가까워서 달리는 동안 조금 허리가 아플 수 있다. 그렇지만 눈에 담아가는 풍경은 다른 여행지에서 달리는 ATV 바이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체험해볼 것을 추천한다.


동강에서 래프팅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아직 강물은 차가웠고 물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동강 래프팅을 즐기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했던 래프팅은 물이 불어나 있어 급류와 여울이 많았던 것에 비해 동강 래프팅은 평화롭고 차분했다. 유람선의 자연 친화적인 버전이 동강 래프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물이 불어나면 불어나는 대로 여울과 급류가 있을 테니 6월 말에서 7월 초부터는 신나는 래프팅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월에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 별마로 천문대

영월을 가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뽑으라면 망설임 없이 별마로 천문대를 들 수 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산꼭대기에 별마로 천문대가 있다. 산 아래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매우 깜깜하고 높은 지대에 있어 춥다. 그러나 천문대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각종 아름다운 별이 수놓아져 있고, 어린 왕자 콘셉트 카페도 있다. 별마로 천문대의 백미는 따로 있다. 전문 해설사의 별자리 이야기가 끝나면 옥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아까 들었던 별자리에 대한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으면 별마로 천문대 돔 뚜껑이 열린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신기해했다. 시청각실에서 봤던 별자리를 모두 다 확인할 수 있었다.


영월의 밤은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단순히 별이 많이 보여서가 아니라 내가 밟고 있는 땅 말고도 세상이 얼마나 드넓은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불온전함은 온전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불온한 존재이기에 온전할 수 없다는, 온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불온전한 존재로서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별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 행운을 빌었고 여유롭게, 급할 것 없이 그 순간을 기억했다. '슬로시티 영월'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니까.


영월(강원) = 김아현 여행+ 인턴 에디터

2019.06.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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