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땐 설렌마음 울렁울렁, 나올때는 벅찬마음 울렁울렁…독도를 만나다

[여행]by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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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아니 독도를 가게 될 줄이야."


30년 가까운 인생 동안 울릉도를 여행지로 고려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쁜 바다가 있는 섬에 가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제주도를 택했을 것이고, 한적한 곳에서 쉬길 원했다면 몸도 맘도 편안한 호캉스를 갔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내게 울릉도 이미지는 호박엿, 오징어, 그리고 독도 옆 섬 정도로 한정적이었다. 그런 내게 찾아온 첫 출장이 울릉도와 독도라니. 배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이 울렁울렁거렸다. 설렘이 반, 미지의 세계로 가는 두려움 섞인 떨림이 반이었다.

연중 50일만 '허락'하는 섬, 독도를 가다

밤새 나를 태운 고속버스는 후포항으로 내달렸다. 울릉도까지는 후포항을 포함해 속초, 묵호, 포항까지 4곳에서 갈 수 있지만 최단 시간에 가는 길이 바로 후포항이다. 다른 항구에서는 3시간 이상 소요되지만 후포항에서 울릉도 사동터미널까지는 2시간30분이 걸린다. 울릉도까지 여정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뱃멀미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이킹의 후예도 참지 못하고 구토했을 정도니 울릉도 뱃길의 위용은 어마어마하다.


울릉도 도착을 본능적으로 알게 한 것은 은은히 풍겨 오는 바다 내음 때문이었다. 잠들어 있던 후각세포를 비릿한 냄새가 흔들어 깨우고 연이은 뱃고동 소리와 창밖으로 비치는 파도까지 울릉도의 모든 것이 기민하게 감각을 건드렸다. 배의 출렁임이 잦아들 때쯤 실감이 났다. 내가 울릉도에 왔구나.


터미널에 도착해 잠시 한숨을 돌리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독도로 들어가려면 무려 1시간 30분이나 더 배를 타야 한다는 것. 물론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시간을 합하면 3시간이다. 순간 '이건 출장이 아니라 고행'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독도는 1년 365일 중 50일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예민한 섬인 데다 살면서 독도 한 번쯤 가봐야 진정한 애국자라 자부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애국심 폭발한 김에 사동터미널에서 파는 1000원짜리 태극기까지 사서 가슴에 품었다. 후포항에서 마신 멀미약의 약발이 3시간만 더 버텨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독도행 배에 다시 몸을 맡겼다. 물길이 거세다더니, 울릉도로 들어오는 길보다 몇 배는 더 출렁거림이 심했다. '워터파크의 파도풀이다' '테마파크의 롤러코스터다'라며 몸과 마음을 달래 봤지만, 뇌가 가장 멍청한 기관이라 속이기 좋다던 어느 연구 결과는 순 엉터리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진화한 탓에 겪고 느끼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반응했다.

30분 내린 독도…30년 이어질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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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해안도로.

울릉도 동남쪽으로 뱃길 따라 200리(약 87.4㎞)를 달린 끝에 드디어 독도에 닿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현실이었다. 고생을 알아주기라도 한 것인지 독도의 하늘은 너무나 맑고 쾌청했다. 바다 위에서 눈부시게 쪼개지는 햇살이 약 5시간의 뱃멀미를 보상해 주듯 반짝거렸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를 볼 수 있다던데, 이렇게 날씨까지 좋다니 조상님들의 은덕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독도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접안 시간과 배를 빼는 시간을 포함해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구경할 수 있는 구역도 한정적이라 빠르게 이 섬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찬 기운을 머금고 있는 독도의 뺨을 가만히 쓸어 보니 다른 감정보다도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혼자, 몇십 년 동안이나 말도 안 되는 영토 분쟁으로 얼마나 지쳤을까. 안간힘을 쓰듯 버텨 주고 있는 독도는 '홀로 독(獨)' 자를 써서 그런지 이름부터 어딘지 모르게 애틋한 구석이 있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그랬다. '홀로 아리랑'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니 독도에 온 것이 두 배로 실감 났다.


"승선하세요!" 30분은 금세 지나갔다. 다시 배에 타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그날따라 더 맑은 하늘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마치 유학 보낸 막냇동생 뒷모습을 지켜보는 언니의 안쓰러운 마음으로 하염없이 독도를 바라보다가 조그만 두 얼굴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짧았던 30분, '30년짜리' 감동을 안고서.


1시간30분 다시 배를 타고 사동항으로 돌아오니 렌터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울릉도에서는 렌터카 이용이 필수적이다.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려 반세기 만에 개통한 울릉도 해안 일주도로를 빼놓을 수 없어서다.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리는 해안도로는 낭만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도로가 조금 울퉁불퉁해 다시 한번 멀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이미 먹은 멀미약의 지속적인 효과를 믿어 보며 울릉도에 도착하면 무조건 달려야 한다.


울릉도 해안도로는 결국 내 인생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끝을 모르고 펼쳐진 하늘과 햇살을 받아 레몬빛으로 찬란한 울릉도의 바다 풍경은 여전히 기억 한편에 남아 있다. 왜 우리나라 고화에 자연을 담은 그림이 많은지, 왜 우리나라 고시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시인이 많은지 절로 깨닫았다. 그날부터 난 내 머릿속 울릉도 연관 키워드에 '아름다운 드라이빙 코스'를 새겼다.

울릉도·독도 100배 즐기는 법

  1. 평소에 뱃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울릉도행 배를 타기 전에 꼭 멀미약을 먹거나 패치를 붙이는 걸 추천한다. 멀미약은 승선 50분 전에 먹어야 효과가 있다.
  2.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제이에이치페리의 씨플라워호가 오간다. 작년부터 10월 25일 '독도의 날'에 무료 승선 이벤트를하고 있다.
  3. 울릉도에 자차를 가져가려면 편도 20만원, 왕복 40만원을 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중형차 기준 하루 8만원 정도인 렌터카를 빌려 타는 것이 효율적이다.

※ 취재 협조 = 제이에이치페리

울릉도·독도(경북) = 박지우 여행+ 인턴기자

2019.11.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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