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나만 알고 싶은 島島한 휴가 `3섬`

[여행]by 매일경제

보기 싫다고 안 보고,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을까. 인연(因緣)은 따로 있다. 필연이나 숙명으로 의미를 확장하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만나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 최근 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본 사진은 스쳐 지나갔을 인연을 떠올리게 했다. 3장의 사진 따라 떠난 랜선여행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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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

첫번째 사진은 보라였다. 전부가 보라였다. 한마디로 보랏빛 천국이었다. 집도, 길도, 다리도, 사람도 보랏빛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지난 삶을 곱씹어 보니 보라색과 특별한 인연은 없다. 학창 시절 숱하게 들었던 가수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정도만이 떠오를 뿐. 하지만 사진 속 보랏빛 동네는 없던 인연을 끄집어낼 만큼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냐,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다. '행정안전부 선정 2020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3섬'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국내 섬이 3000여 개라고 하니 100대1을 뚫은 셈이다.


반월도는 섬의 생김새가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반달모양 같다고 해 붙여졌다. 본섬인 안좌도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자리한다. 이에 반해 박지도는 안좌도 남쪽 끝인 두리마을에서 약 600m 떨어져 있는데 2011년 길이 547m의 퍼플교가 완공돼 걸어 들어갈 수 있다. 퍼플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리가 온통 보라색이다. 더구나 나무다리라는 게 특별하다. 친환경을 고려했다는 얘기. 이 때문에 사람과 오토바이만이 통행할 수 있다.


퍼플교는 신안군 증도의 짱뚱어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본섬인 안좌도와의 사이에 강이 있어 물이 많이 빠져도 갯벌이 아니라 노둣길을 설치할 수 없었는데 다리가 생겨나 배를 타지 않아도 안좌도에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높은 곳에서 다리를 바라보면 마치 영문자 브이(V)자 모양으로 보여 이색적이다.


본격적으로 섬에 들어서면 보랏빛 천국이란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보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모든 것이 보라색이다. 이 섬에 보라가 상륙한 것은 사실 꽃의 영향이 크다. 라벤더나 수국 등이 탐스럽게 피면서 보라로 주제를 정해 온 마을에 색을 입혔다. 이 때문에 마을 곳곳이 인증샷 성지다. 어느 곳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도 SNS 좋아요를 부르는 사진이 찍힌다.


그렇다 보니 행안부는 이곳을 걷기 좋은 섬으로 꼽았다. 두리마을을 출발해 퍼플교, 어깨산까지의 반월도 트레킹 6.4㎞에, 해안산책로를 따라 박지산을 걷는 4.4㎞ 박지산 트레킹 등을 하고 나면 보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아니면 퍼플교를 건너자마자 반월도나 박지도 입구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니 두 바퀴로 달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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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 비진도

또 한 장의 사진은 화려한 색의 유혹이 아니었다. 철썩~ 사그락하는 파도의 몸부림 소리가 들리는 듯한 소리의 설렘이었다. 경남 통영 비진도의 몽돌해수욕장 풍광을 담은 사진에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파도와 몽돌이 부딪쳐 내는 특유의 사그락 소리, 거기에 고운 모래사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뽀드득 또는 스윽 하는 모래 소리가 눈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실제로 비진도는 예부터 가진 게 많은 동네였다. 섬의 형상이 마치 거대한 구슬 옥(玉) 자가 푸른 비단폭에 싸인 것처럼 보인다 해 이름을 비진도라 붙였다고 하고, 해산물 또한 그냥도 아닌 무진장 생산돼 보배로운 동네로 불렸다. 연중 평균기온도 복덩이급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14도로 포근하니 말이다.


비진도는 역시나 해수욕장이 압권이다. 해안선 길이가 550m나 되는 천연백사장은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얕다. 여기에 수온 또한 수영을 즐기기에 알맞아 여름 휴양지로 최적이다.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안섬과 바깥섬, 두 개의 섬이 아령처럼 연결돼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서쪽 해변은 잔잔한 바다와 모래가 덮인 백사장인 반면, 동쪽 해변은 거친 물살과 작은 조약돌로 이루어진 몽돌해변이라는 것이 이색적이다. 양쪽이 바다이기 때문에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백미 중 백미다. 아울러 주변에 찌만 던지면 낚인다는 낚시터도 있어 강태공을 비롯해 레포츠를 즐기는 이에게도 매력적이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비진도로 들어오는 배를 타고 오는 길에 해금강이나 십자동굴을 함께 구경할 수 있어 이국적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바닷물이 유난히 깨끗하고 파란색을 띠어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비진도 여행의 정점을 찍는 하이라이트 스폿은 남쪽 섬의 정상인 선유대다. 해발 311m 정상에 오르면 산호빛 해변이 가슴 속에 와닿아 답답한 도시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느낌이다.


선유대까지의 등산로는 남쪽 섬 정상을 바로 올라 서쪽 해안을 따라 돌아올 수 있다. 특히 1전망대와 정상, 해안의 절벽이 있는 일명 전망 좋은 곳 등에서 마주하는 절경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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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보길도

마지막 사진은 분위기에서 무장해제를 당했다. 흔히 누구를 또는 어떤 것을 봤을 때 주눅이 들 때가 있다. 무서움이나 실력행사 등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알듯 모를 듯한 상호 간의 기의 교감이라고 할까. 바둑이나 인터넷 게임에서 한 수 위의 상대를 만났을 때도 같은 느낌일 테다. 그런데 사진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할 말 다한 것 아닐까.


전남 완도의 보길도를 담은 사진이 그러했다. 언뜻 평범한 듯한 이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느 해변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돌의 크기다. 어린아이 머리만 한 돌이 여기저기 파도와 어울리고 있다. 이곳 해변 이름을 듣고 외마디 외침과 함께 박수를 쳤다. 공룡알 해변. 그랬다. 태초의 공룡이 알을 낳는다면 분명 저 정도 크기였을 것이다. 또 한낮인 듯한 밝은 모습인데 묘하게 운무까지 드리워 있다. 기가 막힌다. 공룡과 공룡알, 그리고 해변의 조화가 그만이다.


공룡알 해변을 중심으로 동과 서로 보길도 필수 방문 코스가 있다. 우선 동쪽으로 해안 따라 가면 만날 수 있는 예송리 갯돌해수욕장을 빼놓을 수 없다. 천연의 갯돌과 상록수림으로 이뤄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풍광 맛집이다. 서쪽으로는 예능 '1박 2일'에도 등장해 관심을 끌었던 곳인 망끝 전망대가 있다. 여기는 꼭 해가 질 때 가야 한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다른 곳과 비교를 거부한다.


사실 보길도에는 이보다 더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곳이 많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유적이 곳곳에 서려 있다. 이른바 가사문학의 산 교육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등지고자 제주도로 향하던 윤선도는 심한 풍랑을 만나 보길도 황원포에 상륙했다.


그는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눌러앉으며 여러 곳에 유적을 남겼다. 윤선도 말고 송시열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우암 송시열 역시 제주로 귀양을 가다 이곳에 머물며 보길도 백도리 끝 바닷가에 병풍처럼 생긴 바위에 탄식의 글을 새긴 것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보길도 여행을 떠나기 전 윤선도와 송시열의 발자취에 대해 조금 알아본다면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장주영 여행+ 기자]

2020.08.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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