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조각'을 지향하는 김영궁

[컬처]by 매일경제

김영궁은 대학 졸업 직후 돌 조각을 시작했으나 이내 목(木)조각으로 전환했다. 1998년 첫 개인전은,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비교적 거친 질감의 대형 작품 위주로 발표했다. 이런 흐름은 2002년 두 번째 개인전으로 이어진다. 그는 10년 이상 조경 디자인 회사에서 '의자가 된 사람'으로 살았다. 조형물 업계에는 철저한 상업적 논리가 작용한다. 공모 과정 등에서 최소한의 룰도 지켜지지 않는 장면이 허다했다.


순수 미술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직업과 업무 스트레스로 호흡기 장애가 왔다. 심신을 달래야했다. 조각을 전공한 부인도 작가로 되돌아가는 데 용기를 주었다. 그는 조각가로서 심장과 손, 감각을 되찾아와야 했다. 3년 동안 강화도에서의 모색은 그것들을 가져간 이와의 대화였다. 8년여 전 의왕시 학의동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에 매진할 수 있었다.


원목 소재를 '너무 만지다' 보니 공예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1999년, 자작나무 집성(集成) 합판 재료를 만났다. 90여 년 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시조인 알바 알토는 오코 코르호덴과 같이 자작나무와 너무밤나무 적층 성형 기술을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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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궁 작 `생명력`(원서갤러리, 1998)

김영궁은 원목 조각에서 재료의 한계에 맞부딪쳤다. 나무가 가진 직경 크기 자체가 작품의 한계로 작용했다. 원목은 오랜 건조 기간을 거처야 하고, 작품으로 완성된 후에도 터지고, 크랙 현상이 나타났다.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비중이 높은 흑단 같은 하드 우드(hard wood)는 원재료 자체로 확보하기 어렵고, 반제품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얕게 켠 합판을 마치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쌓아올리듯 하는 3차원 구조의 건축적인 스택(stack) 방식으로 붙여서 작품 크기를 확장하며, 형태를 만들었다. 나무의 물질성이 갖는 공간과 형태의 한계를 돌파해버렸다. 적층(積層)에서 오는 형태미 또한 원목이 갖지 못한 장점이다.


조각과 공예의 경계 또한 없어 좋았다. 작가는 특정 장르에 속하는게 옳지 않다고 본다. 동시대 미술은 포용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그가 경험했던 조형물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김영궁은 나무를 재료로 한 조형(造形)과 조각(彫刻) 차이를 깎느냐 깎지 않느냐로 본다.


김영궁은 메탈 등 다른 소재로 확장하는 데도 관심이 있으나 당분간은 나무를 재료로 하는 작업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회화를 병행하는 조각가도 있으나 조각 작업 전 단계의 드로잉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김영궁은 형태는 자연에서 취한다. 모든 것이 둥그렇고 곡면이며, 흐르는 원(fluid form)의 형태, 촉감조차도 그렇다. 곡선의 조형미를 추구했다. 그에게 직선은 인공으로 본다. 그는 생명, 자연을 주제로 유기적(有機的) 작업을 하면서는 직선 형태를 가미하기 시작한다. 그 직선은 집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에게 집은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그리움의 모체다. 집은 박공(∧) 모양의 지붕 형태로 조금은 과장되고 정형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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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궁 작 `부분과 전체`( 자작나무, 120x10x120, 2017)

초기 작업들이 재료 자체가 갖는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는 조각가의 본업에 충실하였고, 최근 작업은 형태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재료인 나무의 속성에 충실하면서도 재료에 매몰되지 않는다.


나무를 소재로 작업하는 조각가이기에 지구 생태의 일부였고, 직전까지도 생명이 있던 나무를 매일 접하는 사유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를 구성했고, 밑동이 잘린 후에는 돌이나 금속처럼 물질로 작가에게 재료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생명이 사라진 물질로서, 재료인 나무를 활용하여 정화를 통한 새로운 순환이 조각가의 임무로 본다.


두상 작품 의 모델은 자기 자신과 사회적 인간 관계이다. 인간 관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을 수도 있다. 작업의 주제로 천착하는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 전체와 전체 간의 유기적 '관계'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모발이 자라지 않는 그 머리에 끊어낼 수 없는 온갖 유기적 인간 관계가 들러붙어 있는 것처럼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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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궁 작 `얼굴-부분과전체`(자작나무, 90x80x115cm, 2019)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실내에 놓이는 크기로 제작되지만 실외에도 놓일 수 있는 대형 크기 작업도 모색하고 있다. 작품이 특정 공간에 놓이게 되면 주변 환경 분석에 들어간다. 주변 집이나 일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활동이나 삶의 방식에서 맥락을 찾고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의다. 소품 원본을 실리콘으로 떠서 주물(청동)로 이종 재료인 동(銅)으로 카피할 수 있다.


목가구 작가와 협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산행을 하다 불쑥 들어간 가구 공방에서 마침 이사할 곳을 찾던 작가를 만나 같은 곳에 작업실을 차렸다. 각종 장비 사용과 합판을 적층해나가는 기술적인 부문에서 도움을 받는다.


작가는 작업의 전 과정에서 소재로서의 대상, 완성품으로서의 작품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완성후 관리에도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한다. 조각의 무게를 이기는 방법을 연구했다. 조선 시대에 축조된 목조불상(木造佛像)은 속이 비어 있듯이 그의 작품들은 대개 보이드(void) 방식을 취한다. 작업장 내에서 이동하기 편해야 하며 전시 환경에 적응 가능해야 한다. 완성 후 온습도에 따른 터짐도 방지해야 한다. 건축적으로 보면 작품에 작은 아트리움(atrium)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는 이 아트리움이 보여지는 작품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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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궁 작 `욕망하는 인간`(지리산 현대미술관, 2020)

모든 조각가들의 롤모델인 브랑쿠시는 그의 작품 주제 '입맞춤'은 대지, '새'는 하늘로 확장되었다. 삶의 궤적과 지향점, 주제의 확장과 새로운 재료의 만남, 내면의 성찰은 조각가의 작품 스펙트럼과 깊이를 확장할 것이다.


[심정택 작가]

2020.10.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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