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의 유레카!] `테넷`속 시간역행 실제로 가능할까?

[테크]by 매일경제

★주의: 본문엔 영화 테넷의 줄거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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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유레카!-32] "에어로크를 나가면 적응 시간을 가져, 보이고 들리는 게 왜곡될거야"


흙먼지는 바람과 함께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 역)로부터 멀어지고, 새들은 뒤로 날아갑니다. 심지어 배도 물결을 가르며 '뒤로' 움직이죠.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주도자는 자신을 제외한 주변 사물들의 낯선 움직임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물리학)상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었죠.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테넷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 테넷은 현재와 미래 사이를 오가며 테러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도자와 닐(로버트 패틴슨 역)이 속한 비밀 조직 테넷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일행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이 '인버전'이라는 시간역행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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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속 인버전


테넷의 제작 소식이 알려진 뒤, 과학자들은 이 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구현한 '시간 역행', 즉 인버전이 실제 과학에 얼마나 근거하고 있냐는 것이었죠. 놀런 감독은 외신과 인터뷰에서 "킵 손이 영화 대본을 검토하며 오류를 바로잡았고, 콘셉트를 잡는 데 도움을 줬다"며 "(영화가) 완전히 정확하진 않더라도 과학(물리학)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은 앞서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 제작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여기서 놀런 감독은 테넷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모든 물리학은 대칭적입니다. 시간은 순행하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하고, 동시간일 수도 있죠. 이론적으로 어떤 사물의 엔트로피 흐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사물에 적용하는 시간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사실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긴 어렵지만, 이 설명이 영화 테넷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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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


영화 속 시간역행, 즉 인버전을 이해하려면 우선 엔트로피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물리학에서 엔트로피는 무질서를 나타내는 척도로, 자연의 변화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무질서)으로 흘러갑니다. 땡볕에서 얼음조각을 들고 서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녹아서 물이 돼버리겠죠. 모닥불에 장작을 넣으면 연소돼 재로 변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불 속에서 재가 장작이 되거나 햇볕 아래서 녹은 물이 다시 얼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립계에선 총 엔트로피의 변화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며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 이를 '열역학 제2 법칙'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보여주는 법칙이기 때문에 다른 말로 '시간의 화살'이라고도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테넷은 핵분열에서 발생한 역복사를 통해 엔트로피가 줄어들어 시간 또한 인버전이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총알을 쏘는 게 아니라 잡을 수 있는 것도 이 인버전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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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제로 총알 같은 물체의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게 가능할까요. 부분적으론 가능합니다. 클라우디아 드 람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이론물리학 교수는 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냉장고는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사물이 시원해지도록 만드는 장치"라며 "냉장고나 냉동고는 우리를 위해 엔트로피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장치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 엔트로피의 감소는 냉장고나 냉동고 안에만 해당됩니다. 냉장고 혹은 냉동고 전체로 보면 모터가 전기에너지를 받아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모터와 전기에너지 모두를 고려하면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합니다.


사람과 사물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테넷의 중심 이론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과 존 휠러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테넷에서 닐은 양전자(전자와 반대되는 입자로 전자와 같은 질량)가 시간 속에서 거꾸로 움직이는 전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반입자인 양전자는 물질에 대칭되는 반(反)물질로 알려져 있죠. 파인먼과 휠러는 전자에 대해 시간의 화살을 강제로 역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양전자처럼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워낙 어려운 개념인지라, 테넷은 자세한 설명보단 영상으로 바로 보여줍니다. 같은 장소에서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나(전자)의 시선과, 시간을 역행하는 인버전된 나(양전자)의 시선을 교차해 설명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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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속 회전문의 역할


테넷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악당 모두 시간역행인 인버전을 위해 '회전문' 장치를 드나듭니다. 주도자가 처음으로 회전문을 통과할 때 그는 문을 통과한 이후 정상적인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상대방과 상호작용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듣습니다. 전자와 양전자, 즉 물질과 반물질이 충돌하면 둘 다 사라지는 '쌍소멸'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버전된 주인공(양전자·반물질)이 과거로 돌아가 정상적인 시간 속 주인공(전자·물질)과 상호작용하면 둘 다 사라진다는(쌍소멸) 것이죠.


다행히(?) 주인공은 반물질로 변하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변했다면 문을 나서자마자 외부 세계와 접촉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죠. 루시안 할랜드 랭 옥스퍼드대 이론입자물리학 박사는 외신과 인터뷰에서 "주도자와 같은 몸무게 90㎏의 성인이 반물질로 변환된다면 그 폭발력은 약 TNT 3800메가톤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폭탄인 소련의 차르봄바가 50메가톤(히로시마 원폭의 3800배)인 것을 감안하면 3800메가톤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폭발력입니다. 악당 사토르(케네스 브래너 분)가 대량살상무기인 '알고리즘'을 얻기 위해 굳이 사서 고생하지 않아도 세상이 멸망하는 셈이죠. 할랜드 랭 박사는 영화 속에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회전문은 인버전된 사람만을 위한 폐쇄된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며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큰 우주와 반대되는,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작은 주인공 크기의 우주를 만들어준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회전문을 통해 '인버전'하는 것은 요즘은 흔히 보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보통 카세트테이프는 A면과 B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A면 재생이 끝나면 카세트테이프를 뒤집어 넣어 B면을 바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B면 재생이 끝나면 A면을 듣기 위해 다시 테이프를 뒤로 감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B면이 재생되는 동시에 A면이 되감기(즉 거꾸로 재생)가 됐기 때문입니다. 카세트테이프에 비유하면 A면에 있는 사람은 B면이 거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B면에 있는 사람이 A면을 봐도 마찬가지로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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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버전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닐은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일어난 일은 일어났어야만 했던 일"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러곤 '할아버지 역설'을 설명하죠. 과거로 돌아간 사람이 자신의 조상을 죽인다면 그 사람은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날 수 없는 사람이 과거여행을 할 수도 없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죠. 사실 '역설'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은 없지만 평행우주 이론으론 설명 가능합니다. 조상이 죽는 순간 내가 태어나지 않는 평행 우주가 하나 생긴다는 것이죠. 내가 출발한 곳(과거 시점 기준으론 미래)과는 다른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습니다.


테넷은 물리학 법칙에 기반해 상상력을 섞은 영화입니다. 현재 과학 기술론 엔트로피를 줄일 방법이 없어 시간역행은 실현 불가능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즐거운(혹은 머리가 아픈?) 경험을 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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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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